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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지대] 옥춘당이 데려온 사람

2026-10-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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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숙 산학연구원 기획실장·대구대 회계학과 겸임교수

이향숙 산학연구원 기획실장·대구대 회계학과 겸임교수

손두부를 사러 서문시장에 들렀다가 발길이 종로 골목으로 이어졌다. 종로에는 폐백과 이바지 음식 가게들이 즐비하다. 윤기 도는 갈비찜과 큼직한 문어, 갖가지 전과 구절판이 어느 종갓집 잔칫상을 옮겨놓은 듯했다. 갓 부쳐낸 전과 참기름을 바른 달큰한 떡 내음이 골목을 가득 메웠다. 그 냄새에 나도 모르게 걸음을 늦췄다.


그렇게 천천히 걷다 보니 알록달록한 사탕이 층층이 쌓인 가게 앞에 발길이 멈췄다. 옥춘당이었다. 오래전 외갓집 벽에 걸린 회갑연 사진 속에도 있었다. 상 앞에 탑처럼 높이 괴어 올린 그 사탕이 어린 시절 내 눈에는 유난히 크게 보였다. 그 사탕 하나를 얻어먹겠다고 엄마 치맛자락을 붙들고 졸랐던 기억이 난다.


빨강, 노랑, 흰색, 초록빛이 섞인 동그란 옥춘당은 입에 넣으면 진한 단맛 뒤로 박하 향이 희미하게 돌았다. 조상님 오시는 길을 환히 밝히는 등불 같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내게 옥춘당은 무엇보다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였다.


외할머니의 방 한쪽 벽에 나 있던 벽장, 우리는 그걸 '장빵'이라 불렀다. 장빵 문을 열면 눅눅하면서도 서늘한 공기가 먼저 닿았다. 오래된 벽지와 음식 냄새 사이로, 할머니의 참빗에 밴 동백기름 향도 은은히 따라왔다.


매일 아침 외할머니는 벽에 기대 세운 긴 거울 앞에 앉아 동백기름을 손바닥에 덜어 천천히 비볐다. 머리에 정성껏 바른 뒤 참빗으로 곱게 빗어 내렸다. 마지막으로 은비녀를 꽂고 나서야 하루가 시작됐다.


겨울이면 두툼한 밍크 이불 속으로 저마다 시린 발을 밀어 넣었다. 이불은 어찌나 묵직했던지 덮고 누우면 온몸이 눌리는 듯했다. 불을 세게 땐 날이면 아랫목이 어찌나 뜨거웠던지 엉덩이를 좌우로 굴리며 밤을 보내야 했다. 방바닥 한쪽은 그을려 까맣게 변했고, 이상하게도 그 자리에서 달큰한 냄새가 났다.


외할머니의 살림을 떠올리니 박완서의 글이 생각났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는 한두 사람분의 쌀에도 물을 듬뿍 붓고 우거지와 푸성귀를 더해 여러 사람이 먹도록 늘리던 옛 어머니들의 솜씨를 '요술'이라 표현한 대목이 있다.


생각해 보면 외할머니도 그런 요술을 부리던 사람이었다. 일곱 남매의 밥상을 차려야 했던 외할머니에게 적은 것을 넉넉하게 만드는 일은 살림의 기술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외할머니 손을 거치면 목단꽃이 화려하게 그려진 둥근 양은 밥상이 이내 풍성해졌다. 누가 한 사람 더 찾아와도 숟가락 하나 놓을 자리는 생겼고, 적은 반찬도 고루 돌아갔다. 작가의 말처럼 그 한 그릇에는 영양가 이상의 것이 담겨 있었다.


"이 세상에 섬길 어른이 없어졌다는 건 이승에서의 가장 처량한 나이다."


지난 주말, 구순(九旬)을 맞은 시아버님과 가족들이 청남대를 찾았다. 카메라 앞에 나란히 서니 한 장의 사진 속에 한 시절이 담기는 듯했다. 외할머니는 이제 옥춘당의 단맛 속에서 만나지만, 내 곁에는 아직 양가 어르신들이 있다. 옥춘당 하나가 외할머니를 데려오듯, 언젠가 오늘의 시간도 어떤 맛과 향기 속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아직 내 정수리 위에 어른의 온기가 남아 있어 새삼 감사하다. 당신에게도 문득 한 사람을 불러오는 맛과 향기가 하나쯤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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