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릭 르갈레스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교수 현지 인터뷰
“유럽의 메가시티 프로젝트 명암(明暗)…성공 조건 일반화는 어려워”
“실제 협력·실행력이 통합 성공 관건, 조직간 권한배분·예산구조 등 설계 중요”
파리정치대학 파트릭 르갈레스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가진 인터뷰 중 유럽의 메가시티 프로젝트, 그랑파리 메트로폴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노진실 기자
최근 대구경북을 비롯해 광주전남, 대전충남 등 대한민국 전역에서 '초광역 행정통합(메가시티)' 논의가 뜨겁다. 실제 광주전남은 지난 7월 행정통합과 함께 전남광주통합특별시를 출범시켰다. 이 같은 움직임은 수도권 일극 체제에 맞서 지방의 생존 전략으로 덩치를 키우고 권한을 확보하자는 취지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먼저 행정구역 개편과 광역화를 경험한 유럽의 사례는 우리에게 어떤 힌트를 줄 수 있을까.
취재진은 지난달 프랑스 현지에서 도시 거버넌스와 국가 공간 재구조화, 공공 정책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파트릭 르갈레스(Patrick Le Galès)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시앙스포) 비교정치학 교수를 만나 행정통합과 유럽의 메가시티 프로젝트, 그랑파리 메트로폴(프랑스 파리와 그 주변 기초자치단체들을 하나로 묶어 출범한 광역 행정기구) 등을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행정통합에 있어 '무조건 성공하는 마법의 공식'은 없다"면서도, 프랑스 수도권 통합 프로젝트의 명암과 지방 도시들의 성공 사례를 통해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오랫동안 도시 거버넌스를 연구한 학자로서 광역정부 통합에 대한 시각은.
"광역지방정부(Metropolitan Government)를 만드는 문제는 유럽에서 매우 오래된 논쟁이었다. 실패한 사례도 있고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중요한 점은 '어떤 방식이 항상 성공한다'는 일반적인 법칙은 없다는 것이다. 지역의 역사와 정치·사회적 맥락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프랑스의 지역간 광역 협력의 역사는. 파리라는 도시와 인근 지역과의 관계는 어떠했나.
"프랑스 다른 지역에서는 분권화 이후 스트라스부르, 렌, 낭트, 몽펠리에 등에서 광역 협력이 비교적 잘 발전했지만, 파리는 뒤늦게 시작했다. 파리는 독특한 사례다. 파리의 통합 프로젝트를 이해하려면 다음과 같은 역사적 맥락을 봐야 한다. 첫째, 프랑스는 오랫동안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였고 파리는 그 핵심이었다. 둘째, 과거 중앙정부는 파리 외곽 권력이 비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른바 '분할 통치' 전략으로 주변 코뮌(Commune·기초자치단체)들을 쪼개 분절된 상태로 유지해왔다. 셋째, 파리시는 약 200만 명의 인구에 비해 막대한 재정과 행정 능력을 가진 매우 강력한 도시다. 고위 관료와 인력, 자원이 집중돼 있어 주변 코뮌과의 격차가 다른 프랑스 도시보다 훨씬 크다."
▶출범 10년이 된 그랑파리 메트로폴에 대한 평가를 하자면.
"그랑파리 메트로폴은 한 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정치적 프로젝트의 타협이었다. 지난 2016년 파리와 주변 코뮌들을 모두 포괄하는 메트로폴리탄 행정 기관인 '메트로폴 뒤 그랑 파리'가 공식 출범했다. 지금 그랑파리에 대해서는 두 가지 평가가 있다. 우선, 비관적인 해석이다. 그랑파리의 정치적·공공정책적 영향력이 매우 약한 상태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즉, 전반적으로 존재감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반면에 점진적 발전이라는 해석도 있다. '하나의 거대한 제도가 제자리를 잡고 문화를 형성하는 데는 최소 30년이 걸린다'고 보는 시선이다. 개인적으로는 비관적인 입장에 좀 더 가깝고, 그랑파리가 폐지되거나 다른 형태로 대체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 상황만으로 '완전한 성공'이나 '완전한 실패'라고 정의하긴 어렵다."
▶긍정적인 해석과 부정적인 해석이 공존하는 것 같다. 부정적인 해석이 나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요인이 존재한다. 그랑파리의 가장 큰 문제는 비효율적인 '옥상옥' 구조라는 점이다. 정치적 타협의 결과로 처음부터 잘못 설계됐기 때문에 그런 구조를 띠게 됐고, 이후에도 제도적 동력 회복이 어려웠다. 그랑파리가 각종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권한도 실제로는 약한 편이라는 게 두 번째 문제점이다. 주택정책을 예로 들어보면, 광역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지만 여전히 많은 주택정책이 코뮌별로 추진돼 전체적인 조정이 부족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 '그랑파리 메트로폴' 및 '그랑파리 익스프레스'의 상징과도 같은 생드니 플레옐(Saint-Denis Pleyel) 역으로 들어가고 있는 사람들. 노진실 기자
▶성공적인 부분도 있다고 했는데.
"그랑파리의 가장 성공적인 부분은 '교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민들에게 그랑파리라는 제도, 기관 자체의 의미는 약하지만, 교통 분야에서는 매우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랑파리 익스프레스'(프랑스 파리와 그 주변 수도권 지역을 연결하는 전철·광역 교통망 건설 프로젝트)가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고, 지하철 노선 연장 등 대대적인 교통 인프라 확충 덕분에 파리 시내와 교외 지역 간 이동이 쉬워졌다. 이 때문에 과거에 존재하던 '파리와 교외 사이의 경계'가 실제 생활에서 점점 흐려지고 있다. 파리의 높은 주택가격 때문에 사람들이 교외로 이동해 살게 됐고, 지하철이 연결되면서 교외도 사실상 파리 생활권의 일부가 되고 있다. 그랑파리가 불러온 또 하나의 긍정적인 사례로 대기오염 저감정책을 들 수 있다. 파리시가 먼저 자동차, 특히 디젤차와 오래된 오염 차량을 규제하기 시작했고, 이후 이러한 정책이 그랑파리 전체로 확대됐다. 동시에 자전거 이용도 확대됐으며, 파리의 자전거 시스템 역시 그랑파리 전체로 확장됐다. 이 밖에 파리 올림픽과 같은 큰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그랑파리가 역할을 한 것도 하나의 상징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지역 간 연합이나 통합에 있어 상대적으로 모범 사례를 프랑스에서 찾을 수 있을까.
"프랑스의 지방 대도시들, 예를 들어 스트라스부르, 렌, 낭트, 리옹 등을 깊이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이 지역들은 중심 거점 도시와 주변 지역들이 매우 의미 있는 시너지를 내는 '연합'을 이뤄냈다. 이들 지역의 중요한 특징은 지역 내 불평등이 파리만큼 크지 않고, 중심도시 시장들이 역사적으로 교외의 시장들과 협력해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갈등이 상대적으로 적고 서로 다른 지역의 요구를 협상으로 교환하는 '윈윈' 구조를 만들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다. 물론, 이러한 도시들은 20~40년에 걸친 광역협력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파리와 다른 점이다."
파리정치대학 파트릭 르갈레스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갖고 유럽의 메가시티 프로젝트, 그랑파리 메트로폴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노진실 기자
▶지방 소멸 위기 등을 극복하기 위해 거대 지자체들을 하나로 합치는 '행정통합' 논의가 현재 한국에선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그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면.
"처음부터 제도를 제대로 설계해야 한다. 대규모 광역정부를 만들 때 기술관료적이고 지나치게 복잡한 제도를 만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제도가 처음부터 잘못 설계되면 나중에 제대로 작동하도록 수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광역정부와 관련 지자체·조직간 권한 배분, 예산 구조를 처음부터 명확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모든 문제를 거대한 하나의 조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합리화의 환상'도 피해야 한다. 또한 광역정부의 핵심은 전략보다 '실행'이다. 전략을 세우는 것은 광역정부가 잘할 수 있지만, 실제 정책을 시행하려면 각 지자체의 동의와 협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좋은 계획을 만드는 것보다 실제로 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정치적·행정적 구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프랑스 파리에서 영남일보 노진실 기자, 광주일보 도선인 기자, 충청투데이 권오선 기자·최광현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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