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61101024412362

[단상지대] 소소한 직업병

2026-11-02 06:00
  • 가
  • 가
  • 가
  • 가
  • 가
이은미 변호사

이은미 변호사

다들 직업적인 습관이 있을 것 같다. 예전에 유퀴즈를 보다 보니 교도관이 나와서 자신은 자꾸 사람의 숫자를 세는 직업병이 있다고 했다. 교도관은 도주 혹은 탈옥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하는 일에 종사하다 보니 어느 장소에 가든 자기도 모르게 사람의 숫자를 세는 것이다.


나는 사선 변호사일 때부터 형사사건을 많이 했다. 그리고 국선전담변호사가 된 이후에는 오로지 형사사건만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일을 목격하거나 이야기를 들을 때, 책을 볼 때, 가요를 들을 때 자꾸 죄명이 떠오른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동화책을 많이 읽어주었는데, 흥부와 놀부를 읽으면서는 놀부 아내가 흥부의 뺨을 주걱으로 때리는 장면에서 '특수폭행죄',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마지막 장면에서 왕자가 일면식도 없는 공주가 의식 없이 있는 것을 보고 키스하는데 '준강제추행죄'가 떠올랐고 백설공주 새엄마는 아동복지법위반에 강력범죄의 미수가 떠올랐다.


헨델과 그레텔에서는 주인공인 촉법소년 남매가 마녀를 살해하는데, 너무 끔찍하고 죄의식이 없어서 죄질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래동화와 명작동화들은 하나같이 주인공들이 죄의식도 없이 가만히 있는 거인이나 마녀를 선제공격하고 폭력적인 행위들을 했다. 아이에게 읽어주면서 과연 전래동화와 명작동화를 꼭 읽혀야 하는지 의문이 들어서 나중에는 좀 긍정적인 내용의 창작 동화를 찾아서 읽어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직업병이라고는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매일 출근할 때 운동 겸 걸어서 출근하면서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최신가요부터 트로트까지 알고리즘에 따라서 그냥 계속 들으면서 걸었다. 그런데. 아름다운 목소리의 발라드와 절절한 음악 속에서 가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헤어졌는데 왜 집 앞에서 무작정 무한정 기다리지?', '이별했는데 왜 자꾸 전화하지?', '그냥 걸긴 뭘 그냥 걸어. 싫다는데.', '안 만나주는데 왜 자꾸 찾아가고 이름을 부르지? 그리고 며칠만 사귀자고 조르는 건 뭐지…'. 심지어 이별한 연인이 안 행복하거나 덜 행복했으면 좋겠다거나 다른 사람 만나도 평생 날 잊지 말라고 하거나 제발 돌아와 달라며 전화하고 찾아가고 주변 사람에게 알아보고….


자꾸만 스토킹처벌법위반죄가 떠올랐다.


직업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취미 때문에 난감했던 적이 있다. 나는 '민화 그리기'가 취미이다. 민화를 배운 지 몇 년 되었다. 잉어를 많이 그리다 보니 물고기 그림을 보면 유심히 본다. 그런데 어느 날 구속 피고인 접견을 갔는데 피고인이 가슴을 풀어헤치듯 수용복 단추를 열어놓았고 그 사이로 목부터 이어지는 비늘과 꼬리 같은 것이 보였다. 거대한 잉어였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피고인의 목과 가슴 쪽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피고인은 나를 경계하듯 옷깃을 여몄다. 그리고 왜 남의 몸을 훑어보느냐는 식의 눈빛을 보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민화가 취미라고 했다. 피고인은 "예? 민화요?"라고 하더니 크게 웃었다. 멋쩍어서 문신을 그렇게까지 거대하게 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는지 엉뚱한 질문을 했다. 피고인은 구속 전에 어떤 어린이가 다가와서 피고인 팔을 뒤덮은 문신을 손가락으로 문질문질하더니 "이거 안 지워져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럴 때면 후회되고 창피하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도 직업이나 취미 때문에 생긴 습관이 있는지 궁금하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사회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