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아 판소리제작소 소리담기 대표
"판소리는 어렵지 않나요?" 소리꾼이라고 소개하면 종종 듣는 질문이다. 낯선 발성과 긴 공연 시간, 알아듣기 어려운 사설을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막상 한 대목을 들려주면 표정이 달라진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숨을 죽인다. 오래된 이야기 앞에서 오늘의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이다.
판소리는 한 사람이 여러 인물의 삶을 넘나들며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예술이다. 춘향의 당당함, 흥보의 고단함, 심봉사의 절절한 슬픔은 옛날에만 머물지 않는다. 부당함에 맞서는 용기와 가족을 향한 애틋함은 지금 우리도 겪는 감정이다. 시대의 옷은 바뀌어도 사람의 속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판소리가 지닌 힘은 낯선 가락 너머에서 자신의 삶과 닮은 누군가를 발견하게 하는 데 있다.
필자가 오랫동안 공부해 온 보성소리 '심청가'는 이를 거듭 일깨운다. 흔히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거나 심봉사가 눈을 뜨는 대목을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꼽는다. 그러나 소리를 거듭할수록 내 마음에 깊이 앵기는 것은 오히려 심봉사의 이야기다. 겉으로 평온해 보여도 마음속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쁨과 슬픔,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우리 삶과 닮았다.
올해 2학기 대구효성초 4학년 학생들에게 '심청가'의 '시비 따라'와 '아버지 듣조시오' 대목을 가르친 적이 있다. 이야기를 동화처럼 들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소리를 반복해 부르며 사설의 뜻을 함께 짚었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아이들도 부모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반포지효'의 의미를 알고 나자 어려운 노랫말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한 학기 동안 대목을 외운 아이들은 학급별 합창으로 무대에 섰다. 소리의 뜻을 알아가는 일이 곧 마음을 알아가는 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아이들에게 판소리는 외워야 할 옛 노래가 아니라, 스스로 이해하고 함께 목소리를 낸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필자는 전통 판소리를 익히는 한편 재즈와 블루스, 보사노바의 리듬에 우리 소리를 실어 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묻는다.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일까. 옛 소리의 결을 깊이 이해하고 전하는 일은 중요하다. 동시에 오늘의 감각과 만나 새로운 귀를 얻는 일도 전통을 살아 있게 한다. 뿌리를 지킨다고 가지의 성장을 막을 필요는 없다. 전승과 창작은 서로 반대편에 선 일이 아니라, 오래된 소리를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두 가지 방식일 것이다.
판소리는 오래되어서만 귀한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사람을 울리고 웃게 했기에 귀하다. 모든 사설을 처음부터 알아들을 필요는 없다. 한 대목의 떨림에 마음이 반응한다면 이미 소리의 문턱을 넘은 셈이다. 오래된 소리가 오늘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이유는 그 안에 여전히 우리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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