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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새우잠 익숙 이젠 의지도 가출"

2011-01-07

■ 대책없는 삶, 노숙인의 대책도 없다
역사·지하상가서 힘겨운 겨울나기
영양결핍·저체온증으로 잇단 사망
행정당국, 실태조사·전담인력 뒷짐
쪽방촌 거주자, 노숙인 전락 우려도

5일 오후 대구시 중구 대구역 광장 무료급식소에 노숙인 200여명이 줄지어 서있다. 이곳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이들은 대구역 등을 찾아 긴 겨울밤을 보낸다.

'노숙인'들이 사회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는 대구시의 노숙인 대책이 생산적 복지가 아닌 소모적 복지에 머물러 있는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냉정하게 지적한다. 이들은 단순히 노숙인들에게 빵 한덩이를 주는 식의 대책에 머무르지 말고, 노숙인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의지를 갖도록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쓸쓸한 죽음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지난해 11월11일 오전 8시쯤.

영하를 오르내리는 대구 달성공원의 야외화장실에서 한 60대 남성 노숙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오랜기간의 노숙생활로 인한 영양결핍에다 저체온증까지 겹쳐 화장실에서 잠을 자다 쓸쓸히 숨진 것이다.

경찰조사 결과, 이 노숙인은 K씨(66)로, 수십년전 이혼한 뒤 노숙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가족이라고는 이혼한 아내 사이에 둔 아들 한명이 있었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시신 인도조차 거부했다. "어차피 수십년간 아버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게 사체 인도 거부의 이유였다.

이보다 하루전인 10일 오전 6시쯤에는 대구 반월당 지하도에서 노숙인 P씨(71)가 영양결핍과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으며, 행인들에 의해 발견됐다. 당시 사망한 P씨는 신원파악 결과 가족은 없었고, 피붙이라고는 동생 한명이 전부였다.

경찰 관계자는 "도대체 어디서 얼마나 노숙생활을 했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고 혀를 찼다.

◆"이젠 노숙생활이 익숙해"

지난 5일 밤 11시30분쯤 대구 중구 반월당역 만남의광장 일대.

지하철 운행이 끝나는 시간이 가까워지자 노숙인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잡았다. 두툼한 겨울 파카를 입고 모자로 얼굴까지 가린 노숙인들은 벤치에 한명씩 자리를 잡고 잠을 청했다. 지하철 운행이 끝나는 자정이 가까워지면서 지하상가들의 불이 하나 둘씩 꺼지자, 정적이 찾아오면서 몇몇 노숙인들의 코고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한 노숙인은 벤치에서 새우잠을 자는 게 영 불편했는지 아예 구석 바닥에 드러눕고는 이내 잠에 곯아 떨어졌다.

이곳은 최근 새로운 노숙공간으로 변했다. 무료급식소가 있는 대구역과는 얼마간 떨어져 있지만, 대구역이나 동대구역보다는 상대적으로 따뜻하기 때문이다. 매일 자정이 되면 지하철 입구는 문이 닫히지만, 지하상가 입구는 항상 열려 있어 이곳을 통해 들어올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난 50대 노숙인 A씨는 "노숙한지 얼마나 됐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얼마전까지 노숙인쉼터에 머물다 답답해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며 "처음에는 '이러면 안되지'하면서도 노숙생활을 했는데, 이제는 익숙해져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도 힘도 없는 상태"라며 먼 곳을 쳐다보며 눈물을 지었다.

비슷한 시각, 대구역에도 노숙인 20여명이 의자에 모여 앉아 잠을 자고 있었다. 이곳은 밤이 되면 난방이 되지 않기 때문에 좀 추운 것은 사실이지만, 무료급식소와 거리가 매우 가까워 노숙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다. 피로와 추위에 지친 노숙인들은 의자에 등을 기대자마자 곧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졌다.

이들을 뒤로하고 대구역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들어섰다. 때마침 두명의 노숙인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바닥에는 노숙인들이 자기 전에 마셨던 것으로 보이는 소주병과 일회용컵, 안주로 먹었던 과자부스러기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자 한 노숙인은 아예 박스와 이불을 깔고 계단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노숙생활 20년째라는 노숙인 B씨(49)는 "배운 게 없어 젊을 때는 돈을 벌기위해 막노동을 하면서 열심히 살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 막노동 자리도 찾기 힘들어지면서 술로 하루 하루를 지내다가 결국 노숙생활을 시작하게 됐다"며 "이 나이에 새로 무언가를 시작하는 게 쉽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쪽방생활인 거리로 내몰린다

6일 대구시에 따르면 2010년 9월 기준 대구지역 노숙인은 299명이며, 이 가운데 쉼터이용자는 123명(남성 96명, 여성 27명)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쪽방과 노숙을 전전하는 경우 파악이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노숙인은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9월 대구지역 쪽방거주자는 846명에 이른다.

2005년 총 267명이던 지역 노숙인은 2008년 324명으로 급증했다가 2009년 298명, 2010년 299명으로 소폭 감소했다. 하지만 쪽방생활인을 합칠 경우 2005년 945명이던 것이 2010년 1천145명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노숙인과 쪽방생활인에 대한 행정당국의 정확한 실태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구시가 노숙인과 관련해 파악하고 있는 정보는 고작 이들이 주로 어느 지역에 몇명 정도가 노숙생활 및 쪽방생활을 하고 있는지가 전부다. 시가 노숙인의 '단순보호'에 치중한 나머지, 노숙인의 자활에는 관심을 보일 여유가 없다. 또 시에는 노숙자대책과 관련한 전담인력이나 전문인력조차 없어 노숙인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숙인의 자활대책이 전무한 상황에서 쪽방생활인의 노숙인 전락을 막을 만한 대책도 없다.

한 노숙인쉼터 관계자는 "쪽방에 거주하는 사람들 일부는 쪽방생활과 노숙생활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라며 "쪽방촌 거주자가 잠재적으로 노숙에 나설 위험이 높은 만큼, 이들이 더이상 길거리로 내몰리지 않도록 관련당국이 지금부터라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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