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선생 친필사인 있는 ‘백범일지’ 등 헌책 100여만권 국내최다 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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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여만권의 헌책에 둘러싸여 오매불망 헌책전성시대를 외치고 있는 김창호씨. 헌책을 들고 만세를 부르고 있는 그의 표정이 그 시절 독립군 같다. |
‘다 사라진 건 아닐까?’ 갑자기 헌책방이 궁금해졌다. 수소문을 해봤다. 대구의 경우 남문시장 근처에 4곳(코스모스·해바라기·월계·대도서점). 시청 근처에 5곳(규장각·대륙·평화·동양·제일서적)만 남아 있었다. 80년대 한창때는 도로 양옆에 즐비했던 대구역 지하도 헌책방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는 중국공예품 등 골동품 가게로 변해버렸다. 외곽지의 경우 북구 대현동 경대교 근처에 있는 합동북이 유일했다. ‘전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헌책방이 ‘빙하기’에 들어선 것이다. 일본은 헌책문화가 아직 건재한데….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대학교 전문서적의 거래가 실종됐다는 점. 초·중·고·대학의 독서문화도 거의 베스트셀러북의 범주에 갇혀 있다. 누가 유명하다고 하면 그제서야 커피 한 잔 사먹으러 가듯이 유명 서점으로 간다. 인격도야와 전문영역을 심화확대하기 위한 체계적 독서문화는 거의 붕괴된 듯하다. 서울 청계천, 부산 보수동 등 전국구 헌책특구도 깊은 시름을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반짝 스타로 떠오른 헌책방이 있다. 충남 단양군 적성면 현곡리에 숲 속의 헌책방으로 불리는 ‘새한서점’이다. 요즘 네티즌의 인기를 한 몸에 얻고 있다. 1박2일, 다큐 3일 등 TV에 소개되면서 여행가들한테도 명소로 급부상중이다.
‘헌책방 전성시대는 반드시 부활해야 된다’고 믿는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경북대 학생들에겐 추억의 헌책방으로 불릴 뿐만 아니라, 단행본 수로 본다면 전국에서 가장 많은 100만여권을 가진 합동북의 김창호 사장을 만나 팍팍했던 헌책방 인생의 이면을 들여다봤다.
문학 좋아하다 수집병
고서 7천권 ‘애지중지’
웬만한 도서관급 수준
평균 2m 높이로 쌓아
책 무너져 부상 입기도
37년 발간 앨범 목록집
1847년 프랑스 신부의
조선가톨릭사 등 눈길
이육사 처녀시집은
100만원대 거래가 형성
헌책 살펴보다 보면
현금 끼어있는 경우 많아
한달 최고 30만원 횡재
“독서부재 대학 풍토와
복사기·인터넷 등장 탓
헌책방 설자리 잃어
신세대 주부 새책 선호
아동·사전류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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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만권의 헌책 더미 속에서 ‘막장 탄부’처럼 헌책의 안부를 진단중인 합동북 김창호 사장. |
◆ 전공서적을 내팽개친 대학생 질타
7년 전 기자는 김창호 사장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헌책방 사업의 가능성은 조금 타진됐다. 이번에 찾았을 때는 ‘백기 투항’ 표정을 지으며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책 안 읽는 대학생’부터 매몰차게 질타했다. 이제 어필되는 책은 직장 잡아주는 취업용 수험서밖에 없단다. 향학열이 취업열에 밀리고 있는 것이다.
“20여년 전 신학기 때는 국어·영어사전과 교과서 등을 사려는 학생이 많을 때는 하루 500여명이 찾았어요. 이젠 툭하면 복사질이고…. 리포트도 인터넷 검색창이 다 해결해주니 더 이상 헌책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신세대 주부들이 아이를 별로 안 낳을 뿐만 아니라, 아이 기죽인다면서 굳이 새 책을 고집하는 것 같아요.”
그는 “이제 대학교 학과는 많이도 필요없습니다. 교수·교사, 공무원, 회사원, 기술자, 사업가 등을 만들어주는 과 5개 정도면 충분하지 굳이 수백개를 둘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면서 ‘독서부재’의 대학가를 맹렬히 풍자했다.
언제부터 헌책이 힘들어졌을까.
1차쇼크는 80년대 복사기가 등장하고 비디오와 책대여방이 등장하면서부터, 2차쇼크는 90년대 초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3차쇼크는 최근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부터란다.
자료검색이 무한정 가능해지자 예전 보물처럼 여겨졌던 사전류부터 된서리를 맞는다. 헌책방에서 사전류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했다. 그게 무너지자 헌책방의 척추가 허물어진다.
흥미롭게도 몇몇 단골 교사는 온라인천국 때문에 기억력과 창의력이 날로 쇠퇴하고 있어 아날로그적 감각을 익히기 위해 일부러 헌책을 찾는다고 귀띔해줬다.
◆ 지하실에서 발견한 책의 탑
그는 지금 100만여권의 책과 동고동락하고 있다.
너무 많아 5군데 이상의 크고 작은 공간에 분산해놓았다. 현재 빌딩 3층에 있는 베이스캠프와 근처 지하실에 40만권, 빌딩 1층에 초·중·고 참고서 등이 20여만권, 자택과 창고 등에 나머지 책을 흩어놓았다.
20여만권이 한 자리에 쌓여 있는 근처 빌딩 지하실로 내려갔다. 일제 때 감옥 같은 으스스한 철문이 열렸다. 순간 곰팡이 냄새가 확 달려든다. 헌책 냄새는 역겨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정겨운 구석이 있었다. 그는 그런 지하에서 20년간 ‘그림자 인간’처럼 살았다.
“장마철엔 정말 못 견디죠. 환기가 잘 안돼 더 매캐한 냄새가 나요. 호흡기는 물론 안과질환까지 기승을 부립니다. 가끔 제 신세가 막장 탄부 같아요. 책 좋아하는 남편 만난 덕분에 아내도 책과 씨름을 하고 살죠.”
영화 구경, 공연 관람, 해수욕장도 언감생심. 달성공원도 신혼여행 때 한번 가보고 그 이후로는 그런 데로 갈 시간이 없다. 30년 이상 책만 바라봤는데…. 이젠 책이 그를 배반하는 모양이다.
지하 공간에 마구잡이로 쌓여진 책의 평균 높이가 족히 2m는 돼 보였다.
미로 같은 책 터널 사이로 걸어가기가 무섭다. 일부 구간은 책이 허물어져 통로를 막는다. 책사태가 나면 자칫 중상을 입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원래 잘 안 팔리는 두껍고 무거운 책은 서가 맨 위에 올려두죠. 대사전류나 미술화보전집류같이 무거운 건 20㎏은 족히 나갈 겁니다. 그런게 몇 m 위에서 떨어지면 흉기로 돌변하죠. 그러니 높은 곳에 올라갈 때는 항상 긴장합니다.”
그도 책이 무너지는 바람에 자주 상처를 입었다.
“한때 너무 장사가 안돼 오락실도 생각해봤지만 제 책이 워낙 많아 잘 처분이 안되는 바람에 이것도 내 운명이겠거니 생각하면서 다시 헌책방을 고수하게 됐어요. 책은 팔리지 않고, 그렇다고 폐지로 버리자니 아깝고, 그래서 계속 묵히고 있는 거죠. 제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죠.”
서점이라기보다 해묵은 ‘책창고’ 같았다.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정도의 60㎝ 폭의 틈만 남겨두고 그 주위 책은 담장처럼 서 있었다. ‘서림(書林)’을 방불케 했다.
◆ From 문학청년 To 헌책방 주인
문학청년이었던 김 대표는 헌책을 베개처럼 끌어안고 청년기를 보냈다.
그의 문학 사랑은 헌책 사랑으로 이어졌다. 헌책에 대한 열정 탓인지 읽는 책보다 새로 사는 헌책이 더 늘어났다. 집이 점점 헌책방처럼 변했다. 결국 그 책들을 자산으로 1980년쯤 시청 헌책방 거리에서 ‘자유서점’을 연다. 자유서점은 4년쯤 있다가 현재 자리로 옮긴다.
합동은 가장 많은 문화 부문 책부터 역사, 종교, 인문과학, 예술, 자연과학, 실용취미 등 웬만한 도서관에 있어야 될 건 대충 다 갖고 있다. 이광수, 한용운, 최남선 등 그 시절 문인들의 전집은 물론 한국·세계문학서적도 파격적으로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찾는 책의 반 정도는 구해줄 수 있단다. 그는 예비 지식인이 이 공간의 책을 저렴하게 구입해 ‘형설지공’을 쌓길 고대한다.
“현재 시내 서점에서 새 책을 사려고 하면 적잖은 돈이 들어갈 겁니다. 상당수 예전 책을 재탕·삼탕 우려먹는 게 많아요. 여기 오면 요즘 가격의 20% 수준으로 동서양 지식의 바다를 헤엄칠 수 있습니다. 특히 세계적인 문인이 되겠다거나 지도자가 돼 보려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1천여권의 고전류 필독서를 사갖고 한 10년 두문불출하고 열독해보세요. 분명 책값의 수천수만배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는 것과 직접 책을 사서 정독하는 것과는 효과가 엄청나게 다릅니다.”
◆ 그가 알려주는 에피소드
상당수 책을 좋아하는 교수는 아내한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자신보다 책을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니 방 하나를 가득 채운 서적이 항상 못마땅할 수밖에. 그 교수가 타계하고 나면 그동안 섭섭했던 심정이 그대로 폭발한다. 그 책이 귀하고 안 귀하고를 구분하지 않고 지나가는 폐지장수 등을 불러 당장 헐값에 처분해버린다. 그렇게 해서 된서리 맞고 합동서점으로 흘러들어온 귀한 책도 많다. 심지어 황금만능 마인드가 가득한 종손의 경우 선친이 애지중지한 족보와 문집류 등도 고물로 팔아버린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한창 시절에는 책 속에서 ‘횡재’를 자주 했다.
그 시절 가장과 자녀 상당수는 비상금을 숨겨놓을 곳이 마땅치 않아 거의 책갈피 속에 숨겨뒀다. 그런 책이 김씨에게 자주 안긴다. 많을 때는 한달에 20만~30만원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 날은 단골에게 탕수육 한 접시를 사주기도 한다. 단풍잎도 자주 발견되고 군고구마 껍질도 심심찮게 보였다.
그렇게 잘나가던 아동도서는 갑자기 전멸상태다. 이유가 궁금했다. 바로 조기교육 때문에 편하게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주기보다 영어학원 등으로 보내기 때문이란다.
◆ 합동의 대표 서적들
그가 애지중지하는 고서는 7천여권.
그가 몇 종을 갖고 나왔다. 1947년 발간된 백범 김구의 친필 사인이 있는 ‘백범일지’가 가장 광채를 띠고 있었다. 백범은 자서전을 그렇게 많은 이에게 사인해서 보내지 않았다. 특히 지역 인사 중에서는 누가 받았는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책에는 류병필씨가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6·25전쟁 직후 지역의 대표적 시나리오 작가로 유명했던 김찬호씨의 육필원고도 있었다. 반공방첩시절 포스터 격문 구호를 연상시키는 글과 함께 대구MBC 라디오 방송 농촌계몽, 90분짜리 단막극 ‘꽃피는 새마을’ 원고도 필요한 사람에게는 아주 귀한 향토자료가 될 것이다. 1937년 오케이 레코더사에서 만든 앨범 목록집, 1847년 프랑스 달리 신부가 지은 조선가톨릭사, 일제강점기 영웅전류의 소설, 이밖에 문익점과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문집은 가격을 정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일반 해묵은 사서삼경은 너무 흔해 그렇게 큰 가치는 못 받는다. 이밖에 1950년대 대구시가지 사진집도 있어 향토사연구에 큰 도움을 줄 전망이다.
문학류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데, 지난해 40만원대였던 이육사 처녀시집은 이젠 100만원대에 거래된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그런 작고한 향토출신 문인 관련 서적은 대구시 문화 발전을 위해 팔지 않겠단다.
◆ 인터넷 헌책방에 승부수
그는 ‘헌책방 사양시대’에 대비했다.
2000년쯤 인터넷에 합동북(www.habdongbook.naver.com)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이 덕분에 겨우 밥을 먹고 있다. 요즘 고서류를 찾는 이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100여만권 중 한 70% 정도는 어디에 책이 꽃혀 있는지 알아요. 나머지는 2~3년에 걸쳐 다시 분류해봐야 될 것 같아요. 병서, 사료, 서간집, 친필문집, 서첩 등 근대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고서류도 상당히 갖고 있으니 향후 새로 분류해 온라인 시장에 올려둘 겁니다.” 북구 대현동 259-7 (053)942-8122
▨ 취재후기
연말 송년회를 합동북에서 했으면 좋겠다. 1~2시간 서가를 돌아보는 순간 세포가 더욱 푸릇해질 것이다. 새 책방에서 얻을 수 없는 희열이다. 단순히 사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다. 그동안 망각했던 지난 세월의 자취를 헌책이 품고 있기 때문이다. 가슴이 텅 비었다고 생각된다면, 갓 정년은퇴를 했다면, 헌책방을 노크해 보시길.
글·사진=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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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동북’서점이 보유하고 있는 희귀한 도서들. 백범일지 표지로, 직접 붓글씨로 쓴 제목이 요즘과 대조를 이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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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범 김구가 지역의 류병필씨에게 사인해 전한 백범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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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국내 한 레코드사에서 발간한 유명 가수의 레코드 목록책으로, 신불출의 사진과 그가 부른 노래 가사가 적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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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대구MBC 전속 시나리오 작가 김찬호씨의 육필 대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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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유행했던 영웅역사소설책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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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권당 10만원에 거래되는 인기만화 보물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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