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역마<驛馬> 중심지가 21세기 말산업 메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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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의 전설이 깃든 안태봉(임고면) 인근에 조성된 승마자연휴양림에서 승마동호인들이 말을 타고 있다. <영천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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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천 조양각과 금호강변은 조선통신사 사행원을 위해 전별연을 베푼 곳으로 마상재 공연이 펼쳐진 곳이다. <한국마사회 제공> |
말(馬)의 고장인 영천에 2016년 드디어 경마공원이 들어선다.
영천경마공원은 영천시 금호읍 성천·대미리 일원 148만㎡(약 44만8천여평) 부지에 3천660여억원이 투입돼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말산업이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만큼 경마공원에 영천 제2도약의 성패가 달려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영천시와 11만 시민이 열정을 갖고 보듬을 때 옥동자를 탄생시킬 수 있다.
경마공원 개장을 앞두고 경마공원 현황과 말과 관련된 영천의 유적, 전설, 미래 마필산업, 해외경마 현황에 대해 3회에 걸쳐 짚어본다.
◆말(馬)의 역사
학설에 따르면 말(馬)의 기원은 6천만년 전 크기가 20~50㎝이고 앞발가락은 4개인 에오히푸스에서 진화했으며, 사육마의 조상은 약 200만년 전 북미대륙에서 진화한 에쿠스(Equus)다.
말을 최초로 인간이 사육한 것은 5천500년 전 카자흐스탄의 보타이 문화에서 식용으로 이용했다는 학설이 있다. 기원전 680년 고대 올림픽에서는 4두 마차경주, 기원전 648년 올림픽에서 기마경주가 처음 시행됐다.
우리나라에서는 김해패총 등 청동기 유적에서 말뼈가 출토된 적이 있다. 사기(史記) 등 문헌상에 고조선 시대 공물이나 특산물로 말을 활용한 기록이 있다.
또한 고구려 수렵도, 안악고분의 벽화, 신라 천마도 등에서 말을 이용했던 각종 유적이 발굴됐으며,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역(驛)이 존재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전까지는 말산업의 전성기로 200여개 목장 운영, 마의서, 마경 등의 체계적인 말 관리방법 등이 정착됐다.
◆말(馬)의 고장 영천
영천은 어느 지역을 가도 말과 관련된 유물, 전설, 속설, 지명이 산재한 역사적인 말의 고장이다.
영천시는 이 같은 전설과 속설 등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채록, 수집하고 스토리텔링화해 새로운 관광 콘텐츠로 발굴하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신라·고려·조선시대 영천은 청통역(淸桶驛), 장수역(長水驛) 등 역촌과 주막거리가 산재했던 역마(驛馬)의 중심지였다.
특히 신녕면 장수역은 조선시대 찰방(察訪) 체제로 운영돼 영천시 청통, 경주시 아화, 경산시 압량 등 14개 속역을 거느리고 총 137두의 역마를 두었다.
신라·고려·조선시대 역촌·주막거리 많아
조선시대 찰방 장수역, 14개 속역·137두 역마 둬
통신사 사행원 위한 전별연으로 마상재 공연도
청동 말장식품 출토·地名 등 말 스토리텔링 풍부
1918년 영천시 금호읍 어은리 유적에서 마형대구(馬形帶鉤·말 모양의 허리띠 고리·길이 15.6㎝)와 말 모양의 장식품(길이 5.4㎝)이 발견돼 당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1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청동제품으로 현재 경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또한 포은 정몽주 선생이 장수역을 노래한 시(詩)와 병와 이형상 선생이 지은 ‘성고구곡’은 영천이 예로부터 말의 고장임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 영천은 서울에서 출발한 조선통신사 사행원들이 일본으로 가는 도중 말을 갈아탄 곳이다. 영천 조양각과 금호강변은 조선통신사 사행원들을 위해 전별연을 베푼 곳으로 마상재(馬上才)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조선통신사 사행원들은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 사행 중 11회나 영천을 거쳐 일본으로 갔다. 이 중 금호강변에서 총 7회에 걸쳐 마상재 공연을 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다.
말과 관련된 비석으로 신녕면사무소에 조선시대 찰방에 관한 비석 3개(찰방 김한령, 찰방 윤풍정, 찰방 최경현)와 은해사에 보관 중인 하마비, 영지사 입구 하마비 등이 있다.
◆숱한 전설과 말의 지명
영천지역은 말과 관련된 전설 또는 그 유래로 생겨난 마을 및 지명이 28곳이 된다.
옛날 말과 소의 먹이터로 목동들이 즐겨 찾았던 소마이(신녕면), 굴에서 장군이 나와 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굴견(화산면), 임진왜란 때 삼천 병마가 매복해 왜군과 격전을 벌였던 병마(화산면), 권응수 장군이 의병을 모아 말을 달리면서 훈련을 시켰다는 구마강변(화남면)이 있다.
또한 오얏나무 밑에 말을 많이 묶어 두었더니 오얏나무가 흔들리고 말이 소리를 질렀다고 하여 마음리(대창면), 죽은 말을 묻은 곳인 말무덤(고경면)이 있다.
말을 방목하던 곳인 솔목(자양면), 장군이 말을 타고 지나가다 말이 새끼를 낳았는데 그 태를 봉우리에 묻었다고 하여 안태봉(임고면), 어떤 무인이 전쟁 때 이곳에서 말을 멈추게 한 후 허리띠를 풀어 놓고 휴식한 후 승리를 하였다는 마대백(신기동)이란 명칭 등이 있다.
영천시 완산동 신마(神馬)의 말 발자국이 있는 용마(말굽)바위와 고경면 창하리 말무덤에도 말에 관한 전설이 깃들어 있다.
한편 의미가 잘못 전달된 ‘영천대말’은 ‘영천장에 콩을 사러 가면 되(升)도 좋고, 말(斗)도 좋아 인심이 후했다’는 지역 민심을 내포한 말이다.
1980년대까지 흔히 회자됐던 ‘잘 가는 말(馬)도, 못 가는 말(馬)도 영천장’이라는 말에는 경상도 3대 시장의 한 곳인 영천장에 모든 말(馬)이 모일 만큼 유명했다는 뜻이 있다.
영천= 유시용기자 ysy@yeongnam.com
유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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