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목적이 되면 좋은 커피는 없다’
커피에 입문한 지 15년만에 깨달았다
![]() |
| 대구에서 가장 커피문화가 열악한 동네 중 한 곳인 북구 산격동에 최근 에스프레소 전문점 말리를 열고 종일 책과 명상, 커피마니아와의 대화로 유유자적하게 보내는 커피명상가 남욱현씨. |
1995년부터 생두수입사업
高價 독일 프로바트 구입
로스팅해 호텔 등에 납품
커피는 사업 아닌 반려자
뇌경색 앓고부터 생각 변화
커피 맛은 로스팅이 좌우,
바리스타에 목숨 걸지말길
커피 대가·거장 남발말고
로스팅 전문가란 표현을
그 사내는 왜 대구에서 가장 열악한 커피문화를 가졌다는 북구 산격동 산격중학교 근처에 북카페 에스프레소 ‘말리’를 차렸을까. ‘말리’는 별스러운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커피향이 천리가 아니라 만리를 흘러가라’는 뜻이다.
와인처럼 커피도 그 담론이 지나칠 정도로 배타적이고 자기과시적이고 허세적이다. 거기에서 벗어나 커피의 본질에 가닿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 주위엔 숱한 고수가 있고 그들이 신흥교주처럼 군림한다. 군림에서 벗어나 공유와 상생의 버전으로 커피문화를 구축하기란 쉽지 않다. 현재 대구는 ‘커피 권하는 도시’로 추락 중이다. ‘추락’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그 흐름 속에 ‘음모’ 같은 것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 젊은 소비자는 허영을 마시는 것이지 진정한 커피의 풍미를 발견하는 건 아니다. 이 대목에서 커피 명상가 남욱현 말리 사장을 만나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원래 고승이 되고 싶었다
청송군 현동면 삼자현리에서 태어났다.
서울 동국대 경영학과를 나왔지만 불교학과에 더 관심이 있었다. 불교철학에 심취했고 가야산 해인사에 주석하고 있는 성철 스님의 문하에 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장남, 부모가 그 길을 싹둑 잘라버렸다. 1995년에 친구를 통해 유기농 커피를 안다. 갑자기 출가 대신 커피를 잡는다. 원두 수입을 위해 동대문구 신설동에 사무실을 차린다.
-스타벅스와 인연이 깊다고 하더라.
“99년 7월에 다국적 커피브랜드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회장이 지은 ‘커피 한 잔에 담긴 성공신화’를 출판사 김영사에서 번역 출간했다. 이때 국내판 감수사를 내가 썼다.”
-2013년 전 세계 60개국에 1만8천여 개의 체인점이 깔렸는데 스타벅스 마케팅 파워의 원천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팔고, 문화를 팔았다. 책을 보면 여러 대목에서 놀라운 역발상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절대 ‘종업원’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그들은 직원을 ‘동업자’라고 부른다. 이런 대목이 승부처라고 본다.”
-대한민국 바리스타 계보를 좀 정리해달라.
“‘계보’란 단어는 원래 아마추어가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위험하다. 진정한 고수는 잘 노출되지 않는 법이다. 기자들도 매스컴을 통해 양산되는 바리스타의 주관적 얘기만 듣고 특정인을 하늘 끝까지 띄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사제지간이 극도로 왜곡되기도 한다. 국내 커피계엔 ‘1서3박’이란 말이 나돈다. 1서는 바리스타란 단어조차 생소하던 80년대를 풍미했던 고(故) 서정달씨, 3박은 박상홍·박원준·박이추씨를 말한다. 80대인 박상홍은 오사카에서 유학을 하고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고, 작고한 박원준은 한때 다도원을 경영했고, 박이추는 2000년 강릉 바닷가에서 ‘보헤미안’이란 커피숍을 통해 강릉을 일약 커피도시로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물론 커피명가의 안명규씨도 대구의 커피문화를 한 단계 성숙시킨 바리스타다.”
![]() |
◆독일제 로스팅기기 프로바트 도입
-어떻게 원두를 유통시켰나.
“경기도 분당에 사무실을 두고 생두를 수입해서 직접 로스팅하고 그걸 전국 특급호텔과 레스토랑, 고급 커피숍, 남대문 시장 등 100여곳과 거래했다. 생두는 콜롬비아, 브라질, 에티오피아, 쿠바, 과테말라, 인도네시아산 등이었다. 하루 200~300㎏, 월 3t 정도를 소비했다. 당시 바리스타한테 ‘커피계의 벤츠자동차’로 불렸던 독일제 로스팅기기 프로바트(Probat)를 3천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당시 국내에선 제대로 된 로스팅기기가 보급이 되지 않았고 구입하려면 국내 지사가 없어 직접 루트를 찾아서 구입해야 했다. 난 운이 좋아 초기 무역할 때 친분이 있었던 프로바트 독일 본사 셋째 아들을 통해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다들 내 로스팅 기기를 보고 신기해 했다.”
-알면 알수록 더 모르는 게 많다고 하는데.
“당시 로스팅에 관한 책이 국내 서점가에는 전무했다. 독일 원서를 프로바트로부터 전해받았다. 커피와 동시에 경영도 함께 배워야만 했다. 그러면서 커피 로스팅 과학을 더 심도있게 파고들었다. 당시 일부 바리스타가 국내산 수제머신을 초보적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난 가장 진보된 기계를 갖고 있어 이것만 갖고 있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들이 궁금해 하는 꿈의 기계를 갖고 있는데 굳이 꿈을 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꿈의 커피시대에 찾아온 뇌경색
결정적인 순간 치명타를 맞는다. 스타벅스, 할리스커피 등 다국적 기업 커피브랜드가 2000년대초, 초대박 기능성 아트커피 시대를 개막할 때였다. 스타벅스가 국내에 론칭한 그해 어느 날 출근하다가 넘어진다. 분당 차병원에서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이 협진해서 수술을 하지 않고 대체의학술로 치료를 했다. 7년여 삶의 동면기에 접어든다. 사업권은 후배한테 넘겼다. 커피와 명상이 그의 몸 속에서 만난다. 그는 자신이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이 된 것처럼 병의 기승전결을 연구한다. 평소 동양철학에 깊은 안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체의학, 요로법, 단식법, 녹즙요법, 야채수프 등 건강관련 서적을 무려 1천여권 돌파했다.
-뭘 깨달았나.
“한국 건강서적은 온통 베끼기 투성이다. 대한민국 단식원 등이 자생적이지 못하고 거의 일본판이었다. 미국 것도 많이 베낀다. 과일·야채즙요법의 창시자인 미국 출신 닥터 노만 워커의 저서류가 대표적이다. 난 어떤 단체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오직 책과 체험을 통해서 알았다.독창적 이론에 입각한 임상서적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하루 30분간은 생계 유지를 하기 위해 커피를 볶았다.”
-몇 년 전 청송과 영천의 경계인 삼자현 고갯마루에서 커피숍을 차렸다고 하는데.
“제2의 도약을 위해 고향과 강원도 두 곳 중 어디를 은거처로 정할 건가를 놓고 고심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했다. 지금에서야 생각한 건데 강원도가 정답이었다. 고향이 가장 따뜻한 곳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시신으로 내려오면 따뜻할지 모르겠지만 생명으로 귀환하면 상대적으로 더 차가운 곳이란 사실도 절감한다. 아무튼 주왕산 국립공원 안 허름한 오두막집에서 짐승처럼 5년을 살았다. 일과는 거의 일정했다. 기상하면 10㎞가량 걸었다. 아침은 과일즙(계절과일 등), 점심은 현미밥, 저녁은 야채즙과 현미밥을 먹었다.”
-커피가 달라 보였겠다.
“그때부터 커피는 사업이 아니라 좋은 삶의 반려자가 됐다. 결국 취미의 공간으로 넘어 온다. 몸이 좋아지자 커피의 맛을 감별하는 능력도 달라졌다. 어느 날 후배가 보내 준 원두를 갈아 먹었는데 유명하기만 했지 맛은 최악이었다. 유통커피의 문제를 절감했다. ‘나만은 절대 이런 가식적 커피를 만들지 말자’고 다짐한다. 커피에 입문한 지 15년을 넘긴 어느 날이었다. 삼자현 재(고개)커피는 비록 휴게소 옆에 있었지만 단번에 전국적 명소가 된다. ‘낭중지추(囊中之錐)’였다. 사업도 건강도 정상궤도를 찾는다. 몇 가지 다짐을 한다. 자기가 먹는 커피를 제공하겠다, 가격을 협상하지 않겠다, 체인사업을 하지 않겠다 등이었다.”
◆은둔하면서도 인터넷은 붙잡아
-산속에서 세상 흐름은 어떻게 잡았는가.
“무조건 과거, 무조건 오지를 고집하는 건 결국 패망의 지름길이다. 커피사업을 시작하고부터 현재까지 세계 커피시장의 동향과 장비 시장에 대한 동향을 단 한 번도 등한시 한 적이 없다. 인터넷을 통해 각종 정보를 취합한다. 주왕산 첫 인터넷 가입자일 것이다.”
-바리스타 지망생에게 한마디
“바리스타부터 되려고 하지마라. 그냥 세계 각국을 많이 돌아다녀라. 그리고 많이 경험해라. 저절로 길을 만나게 된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곳곳이 덫이고 사기투성이다. 청년백수의 허영과 허세를 노리는 체인사업자도 조심해라. 커피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두 사람은 커피를 재배하는 농부와 커피를 볶는 사람이다. 그 둘에 의해 커피 맛이 결정된다. 대다수 바리스타는 커피 맛의 변화를 주도할 수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우유를 데우고 화학약품 가득한 시럽을 넣어 맛을 내고 생크림으로 모양을 내는 것에 급급하는 것이다.”
-대구에서도 좋은 로스팅 기기가 생산된다고 하는데.
“팔공산 제2석굴암 가는 길에 있는 <주>세철에서 만든 열풍식 로스팅기기인데 가격은 2천만~3천만원이다. 독일의 최고급 기계를 벤치마킹해서 만들어 낸 것이다. 나도 그걸 사용한다.”
-산격동에 왜 커피숍을 차렸는가.
“새로운 도전이다. 산격동에 에스프레소, 완전 자살행위다. 누가 그러더라. 당신이 고수라면 살아남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벌써 조짐이 좋아 보인다. 내가 젊은 시절 인문학 서적을 좋아해서 북카페를 열었다. 인문학이 가득차면 안분지족을 알고 잘 속지 않는다. 오전 8시~밤 12시, 거의 종일 이 안에서 논다. 심심하면 수제 막걸리도 만들어 보고 108배도 한다. 하지만 가능한 바리스타는 양성하지 않는다. 열정만 있으면 혼자서도 될 수 있다. 지금까지 딱 2명의 제자만 배출했다. 커피의 시스템은 변하지 않지만 커피의 맛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나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것 같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 TIP
그는 “커피 관련 책을 절대 내지 않겠다”고 했다. 아니 “낼 필요도 의미도 없다”고 강조했다.
“커피를 건강면에서 추적한 연구서적은 이미 교수들이 다 망라했다. 커피를 화학적으로 분석한 것은 건강서적 등이 다 언급해버렸다. 로스팅의 일부는 비밀로 전수되나 보편적인 상식이면 접근이 가능하다. 여기도 비밀이 없다. 전 세계 원두업체가 한국에 지점을 다 내둔 상태다. 모든 내용이 다 공개돼 있는데 짜깁기해서 마치 자신의 독창적인 이론인양 허세 떨 일이 없다”고 했다. 그는 또 “‘커피 대가’란 말도 양산시키지 말자”고 당부했다. ‘누구는 어떤 블렌딩 방식, 누군 어떤 방식의 로스팅 전문가’ 정도면 충분하다고 고백했다. ‘대가, 거장, 1인자’ 등의 표현은 전문가를 분열시키는 ‘음성적 용어’란다. “돈이 목적이 되면 좋은 커피가 없다”는 대목에도 믿음이 갔다. 그는 커피가 일본의 신비마케팅 영향권에서 벗어나 유럽의 상식적 에스프레소 문화로 이전하길 바란다.
한국 커피시장은 아직 다양성은 말살되고 ‘베끼기 다툼’과 ‘우열 다툼’에 멍들어 있다. 그가 그걸 삭히는 ‘불쏘시개’가 됐으면 좋겠다. (053)382-1222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