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50915.010130739410001

[내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2] 물(水) : ‘문학과 힐링의 만남’ 김동리 소설 무녀도의 배경 ‘예기소’

2015-09-15
  • 가
  • 가
  • 가
  • 가
  • 가

넓고 깊고 맑은 川을 바라보자니 체기가 가신 가슴처럼 후련해진다

20150915
무인항공기로 촬영한 예기소 전경. 오른쪽 누각이 올라선 금장대 단애 아래가 예기소다.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의 배경으로, 작품 속에서 무녀 모화가 비명에 간 부잣집 며느리의 혼을 위로하고 ‘예수귀신이 진짜인가, 신령님이 진짜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굿을 하다 죽는 장소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20150915
예기소 단애 위에 세워진 금장대.
20150915
경주 제일교회. 경주 최초의 교회로 소설 ‘무녀도’의 중요 모티브로 등장한다.



남천·북천·서천이 만나 이룬 예기소
동리선생이 젊은시절 문학병 앓던 곳
소설 무녀도 모화가 죽은 장소이기도

고샅길에 점집 빼곡했던 성건동 일대
동리생가 터와 소설 중요 모티브 간직

토함산 자락 자리한 ‘동리목월문학관’
육필원고·생활유품·문학자료 등 소장

체한 듯 가슴이 무겁다. 푹, 손톱 아래를 바늘로 찌른다. 왈칵, 핏방울이 솟는다. 후련하고 시원하다. 넓고 깊고 맑은 천(川)을 바라본다. 어제의 체기처럼, 지난 시절 천은 무거웠다. 스산하고 음울했다. 좀 서러웠다고 물가에 돌비처럼 서서 생각한다. 바람이 불어온다. 걷는다. 달린다. 천과 함께 먼 곳으로 간다. 체기가 가신 가슴처럼, 왈칵 후련해진다.


#1. 소설 ‘무녀도’와 예기소

경주의 서쪽 외곽을 남에서 북으로 서천이 흐른다. 토함산 서북 계곡에서 발원한 남천이 불국사와 반월성을 거쳐 서천으로 흘러든다. 남천과 몸을 섞은 서천은 조금 불어난 몸집으로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속도를 늦춘다. 황룡동에서 발원한 북천이 덕동호와 보문호를 거쳐 시가지의 북쪽을 적시며 서천으로 흘러들어간다. 북천을 받아들인 서천은 잠시 흐름을 멈춘다. 남천, 북천, 서천, 세 개의 천이 뒤섞인 물은 그예 금장대 절벽 아래에서 소용돌이치며 스스로 깊고 깊은 수렁이 된다. 굴연(堀淵), 깊고 스산한 연못이다.

명주실 한 타래가 다 들어갈 정도로 깊었다는 굴연. 옛날 금장대 절벽에서 떨어진 한 어여쁜 기생을 삼켰다고 ‘예기소’라 부른다. 경주 사람들은 ‘애기소’, 깊고 푸르다고 ‘애기청소’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기소에는 매년 한 명이 목숨을 잃는다는 전설이 있었고, 애기도 청년도 소도 죽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서천 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소설가 김동리는 ‘어릴 때 개천가에서 그 수렁과 수렁 위의 흐린 물을 바라보면, 모든 과거와 모든 죽음이 그 속에 다 들어있을 것만 같아 가슴이 복받쳐 오르곤 했다’고 한다. 동리에게 예기소는 ‘내가 달라면 주고 때리면 맞아주던’ 소꿉친구 순이를 앗아간 서러운 곳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동리는 병약하고 우울해 계절마다 이유 없이 앓아눕곤 했다. 20대의 그는 문학병을 앓았다. 집안의 몰락과 함께 경성고보를 중퇴하고 낙향한 그는 서천 변에 앉아 예기소를 바라봤다. 거기에는 수많은 죽음들이 있었다. 시대의 흐름과 그로 인해 사라져가는 또 다른 죽음들도 있었다. 예기소는 ‘비밀을 품고 조용히 굽이돌아 흐르는 강물과 함께 자리를 옮겨가는 하늘의 별들을 삼킨 듯했다.’ 별들을 건져 올리듯, 소설 ‘무녀도’가 그렇게 태어났다. 1936년, 그가 23세이던 때다.

소설 속에서 예기소는 무녀 모화가 비명에 간 부잣집 며느리의 혼을 위로하고 ‘예수귀신이 진짜인가, 신령님이 진짜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굿을 하다 죽는 장소다. 소설과 전설과 소문들 속에서 예기소는 음울하다. 절벽 아래에 검푸른 띠가 가늘게 둘러져 있을 뿐 지금 예기소는 가볍고 푸르다. 물이 깊고 느렸던 시절 ‘금장도선장’이라는 나루가 있었다는 천변에는 경주시가 야심적으로 추진하고 웰빙 도시의 한 축인 자전거 전용도로, 인라인스케이트 전용도로, 산책로 등이 조성되어 있다.

둔치에 앉아 바라본다. 멀고 높은 금장대 단애 위에 누각이 올라 있다. 절벽 바위에는 청동기시대의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신라시대에는 ‘금장낙안’이라 했다. 절벽에 내려앉는 기러기가 그리도 절경이었다고 전해진다. 유리구슬에 박힌 하늘색 띠처럼 맑은 물. 지금 물의 깊이는 어느 정도일까. 흰 새 한 마리가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기생의 춤사위가 보이는 듯하다. 착한 순이의 얼굴을 그려본다. 오래전 소꿉 놀던 친구의 얼굴도 떠오른다. 지나온 생이 순식간에 흐른다. 어쩐지 후련하다. 지금 잠시 정박한 나룻배처럼 앉은 등 뒤로 사람들이 걷고 달린다. 멈춘 듯 잔잔한 천은 시나브로 포항 앞바다로 간다.


#2. 무녀도의 조각들, 성건동 일대

‘경주읍에서 성 밖으로 오리쯤 나가서 조그만 마을이 있었다. 여민촌 혹은 잡성촌이라 불리는 마을이었다. 이 마을 한 구석에 모화라는 무당이 살고 있었다.’

소설에서 무녀 모화가 살던 마을은 예기소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성건동 일대다. 옛날 성건동에는 꼬불꼬불한 골목에 점집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한다. 바로 그 한 귀퉁이에서 동리는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당에 우물이 있던 80평가량의 집이었다 한다.

‘이 고을에도 조그만 교회당이 서고 선교사가 들어왔다. 그리하여 그것은 바람에 불처럼 온 마을에 뻗쳤다.’

실제로 1902년, 점집 가득했던 마을에는 초가를 얹은 경주읍 교회가 생겼다. 현재의 경주제일교회다. 교회는 1909년 경주 최초의 사립초등학교인 계남학교를 설립했는데, 소년 동리는 이 학교를 6년간 다녔다. 그리고 10대에 들어 ‘폐가’라는 시를 쓴다. ‘잡초 속에 묻힌 오두막에 모기소리 들리는 그 집 뜰’이라는 시구는 훗날 마을, 교회, 예기소와 함께 ‘무녀도’의 중요 모티브가 되었다.

동리의 생가는 경주시 성건동 189번지라 하는데, 현재 생가 터는 284번지로 표기되어 있다. 6·25전쟁 후 집은 사라졌고, 지금 터는 세 집이 공유하고 있다.

생가 터 앞에 텃밭이 어지럽다. 파와 고추 따위가 휘청이는 모습에서 ‘모기소리 들리는 그 집 뜰’을 상상한다. 마을 안길이 크고 곧게 뻗어 있지만 꼬불꼬불한 고샅길에서 점집 가득했던 옛 모습을 그려본다. 청년 동리가 저 모퉁이 뒤로 사라진다. 낙향해 어물전을 하던 형님의 집에서 가게 일을 도우며 기거하던 20대 초반의 동리는 그 당시와 옛 기억을 모아 ‘무녀도’를 썼다. 성건동은 소설의 조각들이다.

그의 소설 ‘바위’ 역시 성건동이 배경이다. 동리는 1938년 결혼을 하면서 경주를 떠났지만 1970년대 이후 병으로 누울 때까지 한 해 두 번 이상은 경주를 찾았다. 동리는 향리의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수도산과 반월성이 내 교실이다’라고 늘 말했다 한다. 경주 곳곳이 그의 작품 속에 자리한다. ‘황토기’는 경주 서남산 입구의 산길이 배경이고 ‘까치소리’는 현곡을 배경으로 한다. 고도의 도시 경주 전체가 그의 작품 속에 조각보처럼 펼쳐져 있다.



#3. 동리 목월 문학관에서…

토함산 자락, 불국사에서 석굴암으로 향하는 길에 경주가 낳은 두 거장인 동리와 목월의 문학관이 자리한다. 숲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장소다. 문학관 건물의 오른쪽 날개가 목월, 왼쪽 날개가 동리의 전시실이다.

내부에는 유족으로부터 기증받거나 위탁받은 동리와 목월의 저서, 7천여 종의 장서와 육필원고, 문학자료 1천500여 점, 생활유품 250여 점 등 국내문학관 중 가장 많은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동리의 전시실에서 그의 말을 듣는다.

‘모화가 파우스트와 대체될 새로운 세기의 인간상이란 것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말한다면 모두들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100년만 두고 봐라! 모든 것이 증명될 것이다! 역사가 증명해 줄 것이다!’

파우스트는 천사들에 의해 구원받는다. 모화는 스스로, 물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분열 없는 영혼과 믿음으로. 동리가 태어난 지 100년이 지났다.

글=류혜숙<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참고=동리목월문학관 자료, 문화콘텐츠닷컴

20150915
동리 목월 문학관의 김동리 전시실 내부.



☞ 여행정보=예기소는 경주시 현곡면 금장리 동국대 경주 캠퍼스 앞을 흐르는 형산강(서천) 상류에 있다. 동리 목월 문학관의 입장료는 어른 1천500원, 청소년과 군인은 1천원, 어린이는 500원이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월요일은 휴관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