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고기는 과학…도축 후 24시간 이내 먹어야 제대로 된 맛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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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회·대창구이·옛날불고기가 어우러진 녹양의 세트메뉴생고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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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연계 곁반찬이 먹음직스럽게 펼쳐진 녹양의 종합안주세트. |
저녁마다 대구 주당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생고기(뭉티기)’는 과학이다. 생고기는 근육 섬유에 포함된 철, 칼륨, 마그네슘, 칼슘 등의 무기질과 열에 불안정한 비타민 B군과 식품 효소까지 손실 없이 섭취할 수가 있다. 서양에서도 우리가 먹는 육회와 같은 타르타르 스테이크와 생고기를 얇게 슬라이스하여 그 위에 소스를 뿌려 먹는 이탈리아 전통요리인 ‘카르파치오(carpaccio)’와 파르마산치즈와 루콜라를 곁들이는 ‘비프 카르파치오 알 알베제(Beef carpaccio all’albese)’, 그리고 겉은 연한 갈색으로 익었지만 속은 고기를 따뜻하게 데운 정도인 레어 스테이크와 같은 생고기를 먹는다. 그렇지만 숙성 절차를 거치지 않는 우리의 생고기와는 달리 숙성 절차를 거쳐 요리를 한다.
생고기는 도축 후 24시간 이내 먹어야만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다. 24시간이 경과되면 아린 맛이 난다. 소나 돼지 같은 동물은 도축 직후 근육은 부드럽고 탄력성과 보수력(수분을 유지하는 능력)도 높으나 ‘사후경직’이라고 해서 일정시간이 지나면 근육이 수축하여 딱딱하게 굳어진다. 도축방법이나 근육의 부위에 따라 또는 보관방법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나이를 많이 먹을수록, 도축 전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소일수록 사후강직이 빨라진다. 보통 도축 24시간 이내의 생고기는 탄력이 있는 부드러움이 있고 단백질 사이에 적당한 수분을 함유하고 있다. 그래서 결합조직이 연해 씹을수록 고소하다.
◆ 생고기는 과학적인 술안주
생고기는 강직이 되기 전 24시간 이내에 먹는 대구 사람들에 의해 발명된 ‘과학적인 술안주’다. 생선처럼 숙성시켜 고기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 도축 직후에는 아직 근육세포들은 살아 있고 글리코겐도 일정량을 지니고 있다. 살아있는 근육세포는 글리코겐을 젖산으로 바꿔 에너지를 얻는다. 이때 생성된 산성물질인 젖산은 산성이나 알칼리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수소이온농도지수인 pH를 떨어뜨린다. pH가 떨어지면 근육의 액틴과 미오신이 결합돼 액토미오신을 형성해 점점 근육이 뻣뻣해진다. 도축 전 생체의 근육조직은 중성인 pH 7.0~7.5를 지니고 있다. 도축 후 pH가 급격히 하락하고 산성화되어 pH6.5~6.2가 되고 서서히 감소하여 24시간 후 최저 pH 5.4~5.6가 된다.
대구 사람들에 의해 발명된 식품
소 엉덩이 안쪽 우둔살 주로 사용
가장 신선할 때는 암홍색을 띠어
토·일요일은 도축작업 없어
마니아는 주말에 식당 찾지 않아
근육의 pH가 5.5 이하가 되면 최대강직이 오고 젖산의 생성도 중단된다. 그래서 숙성시킨다. 숙성 절차를 거치면 구수한 맛의 아미노산과 L-글루탐산과 L-글리신 성분이 있어 MSG와 유사한 맛을 내는 지미 성분의 증가로 육질이 연해진다.
숙성된 고기는 구워 먹어야 제맛이다. 대구발 안주인 생고기는 지금이야 얇고 좀 더 넓게 썰지만 초창기에는 어른 엄지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뭉텅뭉텅 썰어냈다. 고기 자체에 양념과 간을 전혀 하지 않았다. 참기름과 찧은 마늘, 그리고 굵게 빻은 홍고추로 만든 양념장에 푹 적셔 먹거나 버무려진 양념 속에 깊숙이 박아 두었다가 먹기도 한다. 질이 나쁜 오래된 참기름은 군내와 쓴맛 때문에 맛을 망친다. 마늘은 알싸하게 매워야 제대로 된 맛을 낸다. 홍고추는 매운맛과 단맛이 조화를 이루어 매콤달콤하다. 뒷맛의 여운은 단맛이 나야 한다. 매운맛은 나지만 뒷맛이 쓴 것은 쓰지 않는다.
양념장이 없어도 고기 자체에 풍미가 있어 그다지 싱겁지는 않다. 그러나 양념장에 의해 감칠맛을 더하고 육질의 쫀득함과 부드러움의 복합적인 맛을 낸다.
생고기와 비슷한 게 전라도에도 있다. 소 앞다리 위쪽 부분(어깨뼈 바깥쪽 밑부분 부채 모양의 근육, 일명 ‘낙엽살’) 부채살의 ‘육사시미’가 있지만 전혀 다른 음식이다. 회처럼 얇게 포를 떠서 참기름 장에 찍어 먹는다.
◆ 생고기 부위는 소의 우둔살
도축 후 24시간 이내의 생고기는 고기 덩어리가 커서 부분마다 부드러움의 차이는 있지만 적당히 촉촉하게 수분이 함유되어 있고 결합조직이 연해 씹을수록 고소하다. 속살까지 한 올의 실오라기 같은 힘줄과 지방까지 제거하고 뭉텅뭉텅 썰어서 담아준다고 해서 불리게 된 ‘뭉티기’. 이런 스타일은 타지에서는 볼 수가 없다. 1950년대 후반부터 소의 뒷다리 허벅지 안쪽 부분(사타구니)의 ‘처지개살(일명 ‘딸랑이’)’을 주로 사용했다. 그러나 요즘은 소의 엉덩이 안쪽 부분인 ‘우둔살(일명 볼기살)’을 주로 쓴다. 이 부위는 마블링이 적은 살코기로 이루어져 있다. 근내 지방 함량이 적다. 단백질의 비율은 높은 편이다. 처지개살은 둥근 모양의 고기뭉치로 ‘뭉치’ 또는 ‘뭉치살’이라고도 한다.
우둔살은 근육 섬유가 비교적 촘촘하고 고기 결이 균일하면서 부드럽다. 우둔살은 소 한 마리에 한쪽 5㎏, 양쪽 10㎏ 정도 나온다. 조직이 치밀하고 단단한 것일수록 좋다. 수분이 너무 많은 것은 싱겁다.
색의 경우 가장 신선할 때는 암홍(暗紅)빛이다. 하지만 공기에 많이 노출되면 점차 분홍빛으로 넘어가는데 그럼 생고기로는 별로고 육회 등으로 요리해 팔리기도 한다. 약간 짙은 진홍색의 윤기가 반지르르한 것이 최상품이다. 뭉티기는 생으로 먹지만 생고기의 느끼함은 없다. 오히려 불 위에 구워 먹는 고기는 한 수 아래라는 느낌까지 든다.
뭉티기는 도축 후 반으로 잘라 제일 먼저 우둔 부분만 발골해 빼낸다. 아직까지 신경조직이 살아 꿈틀대는 상태에서 칼집을 넣어 열기를 후다닥 빼고 식힌 후 즉시 5℃ 정도의 냉장 차량으로 운반한다.
도축 당일 소비가 원칙이다. 생고기 마니아는 평일을 노리지 주말에 식당을 찾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토·일요일은 도축 작업이 없어 싱싱한 생고기의 참맛을 볼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은 대구의 주류산업도 결국 뭉티기 때문에 살아남았다고 할 정도로 주당에게 이 안주는 절대적 사랑을 받고 있다. 오래 씹기 때문에 어금니가 그 졸깃한 맛을 기억한다. 골수 마니아는 명절음식에 질리면 조건반사적으로 뭉티기를 떠올린다. 뭉티기에는 대구 사람들의 기쁨·고통·한숨이 서려 있다. 대구 사람들에 의해 피워낸 ‘붉은 목련 꽃망울’ 같은 음식이다.
외지에서 친한 친구라도 찾아오면 ‘성지순례’처럼 생고기 맛집을 둘러본다. 인절미보다 더 차지기 때문에 담긴 채로 접시를 뒤집어도 흘러내리지 않는다.
생고기는 대구 사람 기질처럼 무뚝뚝하고 거친 듯하지만 내면적으로는 부끄럼이 있다. 보는 맛도 있지만 역시 씹는 맛이 더 압권이다. 차가운 듯하나 씹을수록 온기가 입안에 가득 밴다. 무미에 가깝지만 씹을수록 내면의 맛인 구수한 포용의 맛까지 있다.
◆ 생고기의 유래
현재 전문업소가 수성구 들안길, 수성못 등 시내 전역에 포진해 있지만 초창기에는 중구 향촌동이 메카였다. 당시 시내 실비식당은 ‘주문자생산방식의 안주’가 포진했다. 주당이 안줏거리를 갖고 오면 즉석에서 요리를 해주었다. 처음부터 생고기 전문점이 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막걸리가 더 많이 팔렸다. 갈수록 소주·맥주가 대세를 이룬다. 그 주종에 딱 맞는 게 뭉티기였다. 50년대 중반 향촌동 구이집은 요즘과 달리 꽁치, 청어, 고등어 등 생선을 많이 구워 팔았다.
그럼 생고기는 어떻게 해서 태어났을까. ‘영천식 육회를 양념 빼고 생으로 먹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주당이 생겼다. 대구에서 맨 처음 뭉티기를 선보인 향촌동 구이집 ‘너구리’의 정모 할머니는 염매시장, 서문시장, 영선시장 등 근처 정육점을 돌면서 처지개살을 구했다. 0.5㎝ 두께로 바둑알 크기 정도로 잘라냈다. 문제는 양념장. 처음엔 묵은지를 고기에 싸서 먹어보기도 했다. 맛이 별로였다. 그렇게 해서 참기름, 마늘, 빻은 고춧가루, 거기에 조선간장을 적당한 비율로 섞어 내놓았다. 대박이었다. 뭉티기는 70년대 막곱창요리가 등장하기 전 60년대를 풍미한 안주였다.
어떤 사람들은 생고기를 태어나게 한 사람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군부독재시절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특히 대구의 지식인들은 선술집에서 생고기를 안주 삼아 못마땅한 정권을 마구 씹어댔다. 특히 지역 신문사 기자들이 뭉티기를 좋아했다. 63년 10월15일 박정희가 민정이양 약속을 어기고 제5대 대통령이 되자 지식인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한다. 세상을 씹기 위해 뭉티기를 찾았다.
음식칼럼니스트
■ 대구지역 특색 있는 생고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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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쪽부터 도축 직후 덜 다듬은 우둔살. 손님상에 내기 전 다듬기전 우둔살. 참치회처럼 보이는 처지개살. 양념장을 찍어 먹기 전 뭉티기. |
▶녹양구이(수성구 무학로 17길 21/들안길/053-767-9922)=대구에서는 40년 넘는 현존하는 원조 격인 주인이 버티고 있다. 17여 가지의 무한리필되는 곁들임 안주가 하나같이 별미다. 특히 불족발이 인기. 한 접시에 생고기·대창양념구이·양지오드래기·육회까지 나오는 모둠스페셜을 찾는 사람이 많다.
▶금관(대구 수성구 범어천로 12-1/아서원 복개도로/053-768-0019)=주로 ‘딸랑이’라고 부르는 처지개살로 생고기를 낸다. 좀 더 쫀득하고 구수함이 짙은 편이다. 갈비살·안창살·주먹시숯불구이도 있고 간혹 고래고기수육과 붕장어구이도 있는 특별한 집이다.
▶명동생고기(대구 수성구 만촌로 14/053-751-6065)=근육이나 지방질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손님상에 내질 않는다. 100% 완벽하게 손질된 것만 낸다. 생고기 달랑 하나만 있는, 저녁 8시면 문 닫는 집이다.
▶녹향구이(대구 달서구 와룡로 107/053-525-9233)=20여 가지 계절마다 바뀌는 무한리필 곁반찬이 인상적이다. 일식집에 버금가는 반찬의 특별함이 있다. 생고기·육회·양지구이에 왕새우·전복까지 내는 종합안주세트가 인기다. 대형매장에 홀과 방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어 손님 모시기에도 손색이 없다.
▶퇴근길(대구 달서구 월곡로 47길 26/053-636-8688)=깍두기 크기로 뭉텅뭉텅 썰어 낸다. 주로 처지개살만 쓴다. 유달리 고소하고 씹히는 촉감이 부드럽다.
▶정든집(대구 동구 신암남로 165/053-953-2322)=동네의 자그마한 집이지만 아기자기한 곁들임 안주가 튼튼하다. 알싸하고 매운 양념장이 별미다.
▶부엉이식당(대구 중구 향촌동 18/053-252-3151)=투박하지만 촌스러운 정이 있다. 엄마 같은 주인이 버티는 집이다. 양념하지 않은 꼬들한 껍데기살이 별미인 족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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