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네팔사람 일이라면 팔 걷어붙이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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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도 계명대 동산의료원 국제의료센터 자문교수가 폐렴으로 입원 중인 네팔인을 돌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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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과의 각별한 인연으로 명예영사에 임명된 윤성도 계명대 동산의료원 국제의료센터 자문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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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도 명예영사가 의료봉사를 위해 네팔을 방문, 현지인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윤성도 교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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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도 계명대 동산의료원 국제의료센터 자문교수가 네팔에서 의료봉사하는 모습. <윤성도 교수 제공> |
세계에서 가장 험한 산악 지대를 품고 있는 땅. 지형 조건에 따른 고립성과 스스로의 폐쇄성으로 가장 개발이 안된 가난한 나라, 네팔.
윤성도 계명대 동산의료원 국제의료센터 자문 교수(70)와 네팔의 인연은 깊다. 그 인연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윤 교수가 동산의료원 선교복지회장을 맡고 있던 때였다. 마침 동산병원이 개원 100주년이 되는 1999년을 앞두고 기념사업에 대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먹을 것조차 없던 구한말, 치료는 언감생심이던 때 미국 선교사가 대구 중구 약전골목의 한 초가에서 ‘제중원’이라는 간판을 걸고 진료를 시작한 것이 동산병원의 첫 출발이었다.
100년 전 우리가 받은 것처럼 그 은혜를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 돌려주는 것으로 갚자. 100주년 기념 사업으로 윤 교수가 생각해 낸 것이었다. 윤 교수는 선발대를 이끌고 네팔과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다. 네팔과의 깊은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1995년 네팔 현지 의료봉사로 첫 인연
매년 네팔행…진료환자만도 3만여명
2005년 ‘네팔사랑’ 모임 결성에 이어
2년뒤 ‘한국네팔협회’ 통합 창립 주도
소식지 발간과 한국어 교육·상담 활발
2012년 네팔 명예영사 임명 후 재임명
비자발급 업무와 ‘네팔 근로자 도우미’
경찰서·병원 가리지않고 곤경땐 도움
작년 네팔 지진 땐 성금 8천만원 전달도
향후 韓-네팔 문화인적교류 활성화 계획
◆20여년째 이어진 의료봉사
네팔의 첫 기억은 강렬했다. 윤 교수는 “당시 네팔은 흡사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한 장면 같았다. 위생수준도 낮았고 경제상황도 최악이었다. 한국이라면 약만 바르면 나을 상처인데 마땅한 약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보이지 않는 골짝 골짝마다 터를 잡고 살고 있던 사람들이 진료소를 찾아왔다. 하루 종일 걸어서 진료실을 찾았다는 어떤 이는 진료를 받기도 전에 탈진해 쓰러지기도 했다. 치료 이전에 먹을 것부터 챙겨줘야 할 판이었다. 태어나서 생전 처음 의사를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간단한 치료만으로도 고칠 수 있는 질병이 커져 목숨까지 위태로운 경우도 허다했다. 그들을 찾아 매년 네팔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렇게 지금까지 네팔에서 진료한 환자들만 어림짐작으로 3만명이 넘는다.
네팔 의료봉사를 시작한 지 10년째 되던 해인 2005년 5월 윤 교수는 ‘네팔사랑’이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꾸준히 함께 네팔 의료 봉사를 실시해 온 20여명이 회원으로 참가했다.
동산의료원 직원 중심의 동호회 성격이 짙었던 ‘네팔사랑’은 2007년 6월 네팔사랑피부과 개원의 모임, 칠성교회 선교부, 계명대 환경봉사대 등과 연대해 ‘한국네팔협회’로 통합돼 창립식을 가졌다. ‘한국네팔협회’는 국제교류협의회(DGIEA)에도 가입했다.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네팔협회는 활발한 활동을 해 왔다. 네팔 현지에서 실시되는 의료봉사를 위해 음악회를 열어 기금을 마련한다. 네팔에 대한 관심을 불러모으기 위해 소식지도 발간했다. 대구·경북에 거주하는 네팔인들을 위해 네팔의 밤 행사도 개최하고 있다. 한국어 교육을 실시하고 상담도 진행한다.
이런 인연으로 2012년 네팔 정부는 윤 교수를 명예영사로 임명했다. 명예영사는 본국에서 파견하지 않고 해당 국가의 국민 중에 선임한 영사다. 당시 나라얀 카지 스레스타 네팔 외무부 수상은 “윤성도 교수가 네팔인의 존경과 신임을 받아왔다. 대구·경북지역 네팔인의 이익을 보호하며, 한국정부의 지지를 수행할 것이라 믿는다”면서 “네팔의 경제·사회·문화 등을 발전시키는 데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명예영사로서 윤 교수가 하는 일은 기본적인 비자발급, 관광촉진, 노동자 고용증진, 투자 유도, 문화 교류 등의 업무다. 외교부 산하 주한 명예영사단에는 150여개국 명예 영사가 소속되어 활동 중이며 대구에는 스웨덴, 폴란드, 이탈리아 등의 명예영사가 있다. 윤 교수는 지난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2014년 4월 명예영사에 재임명돼 2018년까지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계명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를 역임하고 2011년 정년퇴임한 뒤 현재 동산의료원 국제의료센터에서 외국인 진료를 맡고 있는 윤 교수는 이곳에서 네팔인들을 위한 명예영사 업무를 함께 보고 있다.
◆네팔인들의 ‘아버지’
명예영사 윤 교수는 네팔인들의 ‘아버지’다. 성서산단이나 경산, 구미 등지에는 네팔 근로자들이 특히 많다. 먼 타국에서 코리안 드림을 안고 찾아온 젊은 청년들이 사고로 다치거나 병을 얻으면 가장 먼저 그를 찾는다. 해결하기 힘든 곤란한 시비에 휘말릴 때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그는 수시로 병원과 경찰서를 들락거리고 있다. 말도 어눌하고 문화도 낯선 그들에게 닥친 곤경을 어떻게든 해결해주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따뜻한 도움의 손을 내밀고 있다.
한국인과 결혼해서 국내에 들어오는 이주여성이 늘어나면서 가출과 가정폭력, 자살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몇해 전 김천의 네팔 결혼이주여성의 자살 사건은 윤 교수로서도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혹여 가정폭력이 원인은 아닌가 하여 경찰서와 검시 현장까지 찾아갔다. 20대 초반의 어린 신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네팔에서 온 부모가 펑펑 우는 모습은 차마 지켜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지난해 4월 네팔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윤 교수는 앞장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계명대 산하기관 등의 도움으로 일주일 만에 8천여만원을 모아 서울에 있는 주한네팔대사관에 전달하기도 했다.
취재를 위해 병원을 찾은 날도 윤 교수는 원인 모를 고열로 입원해 폐렴 진단을 받고 한 달째 입원 중인 네팔 근로자의 입원실을 찾아 상태를 살펴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윤 교수는 “노동 현장에서 다치거나 아프거나 해서 병원을 찾는 네팔인이 많지만 대부분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다. 이들에게 의료 지원과 경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네팔은 가난하지만 자부심이 큰 나라다. 처음 네팔을 방문했을 때는 거리에 신호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은 중앙분리대가 설치되고 택시도 등장했다. 빈민촌의 학교를 빌려 불도 없는 컴컴한 창고 같은 곳에서 첫 진료를 시작했다. 가장 큰 트리뷰반 대학병원이라는 곳도 시장바닥이나 다름없었다. 장비가 없어 검사도 할 수 없었다. 돌아올 땐 늘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가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부끄럽고 미안했다. 지금은 중국 등의 투자가 이어지면서 현대식 병원이 생겨 의료 수준도 많이 높아졌다. 이 같은 환경변화는 우리의 의료봉사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하지만 여전히 네팔은 가난하고 의료 혜택은 골고루 주어지지 않는다. 햇볕이 강하고 공해가 심해 피부병이 많고 호흡기 폐질환이 흔하다. 나병이 아직도 성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현지에서 치료할 수 없는 환자를 한국으로 데려와서 수술을 해주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선천적 오목가슴인 10살짜리 남자와 화상으로 가슴 절반이 내려앉은 20대 여성이 성형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네팔로 돌아가기도 했다.
◆봉사하기 딱 좋은 나이
성서산단과 논공 등 대구 인근에만 5천여명의 네팔 근로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한 달 월급 100여만원 남짓, 3년을 일하면 네팔에서 조그만 가게를 하나 열 수 있을 정도가 된다. 그래서 현지에서는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윤 교수는 “네팔인들이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지도 20년이 훨씬 넘었지만 아직 이들을 보는 우리의 눈빛은 곱지 않다”며 “매년 5천~7천명이 한국으로 들어온다. 이들을 우리의 우호세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하는 봉사활동이 많은 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의 인생은 충분히 바꿀 수 있다”는 생각으로 평생 봉사를 실천해 온 윤 교수는 “인간의 가장 고상한 덕목은 남을 위한 봉사”라고 믿는다. “퇴직하고 시간적인 여유도 많고 경력도 쌓여있고 지금이 봉사하기 딱 좋은 나이”라는 그는 “젊을 때보다 의욕도 떨어지고 기운도 달리지만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네팔을 가보면 누구라도 마력에 이끌리듯 빠져들게 된다. 천진난만한 순수함이 좋고 옛날 우리의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묘한 매력이 네팔을 찾게 만든다”고 했다. “앞으로 한국과 네팔간의 문화 인적교류를 활성화할 계획”이라는 그가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에 온 네팔인들에게 뿌린 작은 사랑의 씨앗이 큰 열매로 맺을 날을 기대해 본다.
글=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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