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세상
최근 암호화폐(가상화폐) 투기 바람이 좀 잠잠해졌다. 하지만 일본과 스위스, 에스토니아 등 일부 나라는 적절한 규제와 함께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산업 진흥에 대한 고민이 진지하게 익어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가운데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블록체인’을 활용한 사업이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은 디지털 세계에서 새로운 신뢰 사회를 구현해 나갈 수 있을까.
4차산업 기술 활용 사업 가시화
보험금 청구 자동화기술에 활용
한전, 전력거래 플랫폼 제작예정
탈세 사라지는 ‘화폐없는 사회’
中, QR코드 결제비중 40% 육박
벨기에·영국 등 지폐 사용 제한
◆블록체인이 바꿀 세상
‘실손보험에 가입한 직장인 A씨는 병원 치료를 받고 진료비를 낸 뒤 보험회사에 보험금 청구를 따로 하지 않는다. 병원에서 보험계약자를 확인해 보험금 청구 구비서류를 자동발급해 보험사로 전송하고, 보험사에서 바로 보험금을 지급한다.’
‘집에 설치한 태양광 설비로 전기를 생산해 사용하는 B씨는 자신이 쓰고 남은 전기를 이웃에 판매했다. 결제수단은 스마트 계약이다.’
‘대학생 C씨는 가상화폐 앱을 이용해 편의점에서 물건을 구입한다. 이 앱은 편의점 계산대에 적힌 번호와 금액을 입력하고 결제 버튼을 누르면 지불이 완료된다.’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가능한 결제 방식들이다. 블록체인은 네트워크 안에서 데이터를 주고 받을 때 공인을 담당하는 제3자(중앙 서버) 없이, 참여자 모두가 데이터를 분산·보관하고 검증해 신뢰성을 확보하는 기술이다.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기반기술이기도 하다.
보험금 청구의 경우 기존에는 피보험자, 병원, 보험사 간 전달되는 개인정보의 유통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하기 어려워 피보험자가 직접 진단서 등 개인정보를 보험사에 제출해야 했다. 하지만 이 3자간 블록체인을 구성하면 모든 과정이 블록체인에 기록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교보생명은 블록체인 인증 기술을 기반으로 실손의료보험금 청구 원스톱 자동화 기술을 개발하기로 했다. 이 기술이 개발되면 번거로운 절차 탓에 소액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사례를 막을 수 있다.
태양열을 이용해 생산된 전기는 한국전력에 판매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블록체인을 통해서는 생산자와 소비자끼리 전기를 거래할 수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전력 생산 가구끼리 직접 전력거래를 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반 전력거래 플랫폼을 만든다.
편의점의 경우도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앱을 통한 결제가 가능해진다. 데일리인텔리전스는 서강대·고려대·포스텍 캠퍼스와 인근 가맹점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가상화폐 ‘유-코인(U-Coin)’을 기반으로 한 간편 결제·송금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밖에 SK텔레콤은 전기 접촉불량 데이터를 수집해 화재가 발생했을 때 발화 원인과 지점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디지털 포렌식 기법을 개발하기로 했다. 또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개인의 수면량, 걸음 수, 칼로리 소모량 등 건강 데이터를 수집해 보험료율 산정에 활용하는 기술도 추진할 계획이다.
◆왜 화폐없는 세상을 꿈꾸나
금융업계에서는 화폐의 종말을 예견하거나 새로운 대안 화폐에 대한 욕구가 분출하고 있다. 화폐 종말론의 핵심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물물교환과 신용거래가 전산화됨으로써 종이화폐가 불필요해지고 중앙은행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전제하고,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인 비트코인과 동전 없는 사회를 반영한다.
최근 국내에서는 현금보다 신용카드의 비중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2016년 가장 많이 이용한 지급수단은 신용카드(50.6%), 현금(26%), 체크·직불카드(15.6%) 순이었다. 많은 사람이 신용카드·모바일 카드 등 디지털화폐를 사용하고, 인터넷뱅킹을 통해 금융 업무를 본다. 회비, 경조사비 등도 모바일 메신저를 이용하고 백화점, 주유소, 문화상품권 등과 같은 모바일 쿠폰 서비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는 케이뱅크, 토스, 카카오뱅크 등의 인터넷 전문은행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삼성페이,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등 간편결제서비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월급도 은행을 통하지 않고 간편결제서비스를 통해서 받을 수 있다. 전세계 25억개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하는 모바일 결제시장은 신용카드 지불방법보다 더 보편화될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동전사용에 따른 불편을 해소하고 동전의 유통·관리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2020년까지 동전 대신 충전식 선불카드에 거스름돈을 입금하는 ‘동전 없는 사회’를 추진하고 있다. 인도는 부정부패를 일소하기 위해 고액권 사용을 금지하면서 전자화폐경제로 넘어가고 있다.
중국에선 QR코드(2차원 바코드) 결제 비중이 40%나 될 정도로 확산되고 있다. 벨기에, 캐나다, 영국, 스웨덴, 덴마크 등 선진국들이 지폐 사용을 제한하고 전자 결제만을 허용하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미래에는 정맥인증, 홍채인식, 음성지문 같은 생체인식기술이 결제시스템에 상용화돼 더욱 완벽한 현금 없는 사회의 도래가 예측된다.
화폐 없는 사회에 대한 비전은 ‘사유재산이 없고 모든 것이 공공 소유인 사회’다.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돈이 없이도 상점에서 달라고 하면 된다. 화폐가 없다 보니 사기·절도·강도가 없고 가난 자체가 사라진다. 현찰이 탈세·마약거래·사기·공직부패 등의 범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또 저성장의 시대에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마이너스 금리가 도입돼야 하는데, 마이너스 금리정책 실현의 전제조건이 화폐의 종말이다. 화폐 폐지를 예고하면 사람들은 손실을 줄이기 위해 현금을 소비할 것이다. 현금 폐지는 소비를 창출하고 생산과 투자를 촉진시켜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저성장 시대에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현금의 단계적 폐지가 최선이다.
사람들은 물질적 소유가 아니라 재능과 지성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다. 로봇과 기계가 물질적 생산을 담당하고 인간은 지적인 활동에만 전념한다. 이는 미국의 공상과학 TV 시리즈 ‘스타트렉(Star Trek)’에서 그려졌다. 스타트렉의 선장인 장뤽 피카드는 “우리는 굶주림과 탐욕을 극복했고 물질적 축적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말한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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