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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기자의 푸드로드]구미...충절 금오산人의 고장 길따라 스며든 맛·멋

202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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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의 왕위찬탈에 맞선 하위지, 이승만 자유당을 뒤집은 박정희, 박정희를 시해한 김재규, 일제강점기 경성형무소 순국 1호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 나라 잃은 시절의 비애를 소리로 품은 판소리 명창 박록주 등 한 시절을 풍미한 구미 출신 인물에게 깊은 영감을 준 야은 길재를 위한 서원 같은 사당인 금오산 초입 '채미정' 전경. 멀리 소실점으로 야은 영정이 봉헌된 경모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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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껍데기
3면-8대한곱창
대한곱창전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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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촌 1호점

예전에는 선산(善山)이 구미(龜尾)를 품고 있었다. 구미시 선산읍이 아니라 선산군 구미읍이었다. 그런 구미가 1978년 2월16일 시(市)로 승격된다.

신라 불교의 상징적 공간인 선산 도리사, 그리고 아도화상의 불도(佛道)가 욱일승천했을 때는 금오산이 오랫동안 이 고장의 심벌이었다. 금오산(金烏 山), 그 이름은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파한 아도화상이 이곳을 지나다가 저녁노을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것을 보고 금오산이라 불러준 데서 기원한다.

하지만 고려가 조선으로 기울 때, 구미는 우리나라 유학의 블랙홀이나 마찬가지였다. 16세기 퇴계 이황이 안동에서 도산서원을 발흥시킬 때까지 금오산을 압도하는 불세출의 풍운아가 바통터치하듯 줄을 잇는다. 그 동네는 과거급제자가 15명이 배출된 '장원방(壯元坊)'으로 불리는 언저리다. 진양하씨 가문의 하위지 등 모두 15명의 과거급제자가 나온 옛 영봉리, 지금의 선산읍 이문리·노상리·완전리 일대를 말한다. 그 마을에 무소의 뿔처럼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회화나무. 바로 하위지가 장원급제 후 금의환향할 때 심은 기념수다. 하위지는 세조의 왕권을 거부해 죽임을 당하고 훗날 사육신의 한 명이 된다.

그래서 그런지 구미는 시대를 갈아 엎는 '극향(剋鄕)' 같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진다. 나라의 숨이 잠시 멎는다. 그를 시해한 건 박정희와 절친이기도 했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였다. 둘은 구미 출신. 박정희가 태어난 상모동에서 직선거리로 20㎞ 떨어진 곳 선산읍 이문리에 김재규 생가가 있다. 고려 말로 거슬러 올라가면 야은 길재는 역성혁명을 한 이씨 조선을 '충신 불사이군(忠臣 不事二君)'이란 충절로 극한다. 야은의 문하에 들어온 김숙자는 훗날 '조의제문(弔義帝文·세조의 왕위 찬탈을 은유적으로 비판했던 글)' 때문에 부관참시를 당하게 되는 그의 아들 점필재 김종직과 함께 영남사림파의 씨앗을 구미에서 파종하게 된다. 이후 하위지는 세조를 극했다. 그뿐인가. 구한말 13도 창의군 총대장을 역임한 왕산 허위는 일제강점기를 극하려다 1908년 10월21일 경성형무소 1호 사형수로 순국한다. 박정희는 이승만의 자유당을 극했고, 김재규는 공화당을 극한다. 구미 출신 소리꾼 박록주 또한 구미인물연대기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구미의 정기는 구미산단의 기술에 점차 가려진다. 유림의 고장이라기보다 기술의 고장 같았다.

한 시절을 호령했던 그 찬연했던 인물들을 생각하며 구미의 대표 음식을 찾아 푸드여행을 떠나자니, 발걸음은 면구스러움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조선을 거부하고 금오산 아래로 낙향한 야은의 절조가 스며 들어가 있는 금오산 공영주차장 맞은편 채미정(採薇亭)부터 찾아 맘을 가다듬었다. 채미정은 산해진미 멀리하고 경학 탐구에 몰입 중인 은거처사의 옷깃처럼 고졸 질박한 품새였다. 하지만 야은의 의미를 모르는 행인에겐 한갓 한옥에 불과할 것이다. 오히려 그 옆 우람한 금오산관광호텔이 더 그럴듯하게 보일 것이다. 내가 도착했을 때 올 들어 가장 맵찬 칼바람이 불었다. 정문격인 흥기문 저 멀리 소실점으로 보이는 경모각에 봉헌된 야은의 영정. 고려말 야은의 눈초리로 나를 응시한다. 단청이 없는 구인재 대청마루에 앉으니 금오산 정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6·25전쟁 등으로 인해 채미정은 극도로 쇠락 했지만 1970년 금오산이 전국 첫 도립공원이자 자연보호운동의 발상지가 되면서 1977년 새롭게 단장된다. 야은의 16세손인 길화수. 그는 구미시 공무원에서 정년 퇴직한 뒤 야은역사체험관(2016년 개관) 초대 관장이 되면서 바로 옆 채미정까지 관리해주고 있다.

채미정에서 좀 상기된 발걸음은 근처 금오산상가 식당가를 지나면서 다시 속세의 기운을 회복한다. 2.4㎞ 둘레길을 가진 금오지 앞 금오정 앞에 섰다. 토박이에겐 길다방커피, 자양(자판기커피양) 등으로 알려진 명물 자판기 커피를 수색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올라가니 오리배 선착장 휴게소 앞 자판기가 보였다. 그게 주인공인 줄 알고 커피를 한 잔 우아하게 빼 먹었다. 산책을 하던 한 시민에게 물어보니 아니란다. 금오정 맞은편 산언저리에 조성되고 있는 역사문화디지털센터 공사로 인해 자판기가 사라지고 말았단다. 그 커피 맛이 궁금했다. 그 커피는 남다른 자세를 갖고 있었다. 커피를 잘 저어 마실 수 있게 짧은 빨대를 첨부해주었다. 이게 이용자를 감동케 한 것이다. 커피·설탕·프리마도 1 대1 대 1을 유지했단다. 몇 백원짜리지만 원두커피 못지않은 퀄리티를 자랑했다. 그러다 보니 금오산보다 그 커피를 맛보기 위해 일부러 구미로 오는 푸드블로거까지 생겨났다.

시민들은 이 커피가 과연 부활할 수 있을까 많이들 궁금해하고 있다.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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