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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 人사이드] '코로나 의병장' 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

2020-05-23

"대가 있었다면 오지 않았을 거란 이름도 안 밝힌 의사 말에 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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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이 코로나19와 전쟁을 치렀던 시간을 회상하며 대구를 위해 헌신한 의료진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코로나19 국내 31번째이자 대구 최초 확진자가 나온 2월18일 이전과 이후 대구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1월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확인된 이후 한달 동안 늘어난 확진자는 30명, 하루에 한명 정도 늘어났지만 대구는 첫 확진자 발생 이후 그다음 날 10명(19일), 23명(20일)으로 3일 만에 기존 국내 확진자 수를 넘어섰다. 이후에도 급속도로 늘어 21일 50명, 22일 70명씩 늘어나다가 23일 148명으로, 하루 100명을 넘어섰다.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대구 도심을 오가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동대구역에서 수성못으로 이어지는 왕복 12차로 동대구로, 수성구에서 달서구로 이어지는 10차로 달구벌대로에 치솟은 대형 상업용 빌딩 외관만 멀쩡했을 뿐 사람의 온기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됐다.

거기다 급속도로 늘어난 환자 탓에 대구지역 4개 대학병원 응급실이 시차를 두고 폐쇄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대구시도, 의료계도 갑작스러운 공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결국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놈인지도 모르는 바이러스의 공격에 대구는 손도 써보지 못한 채 무너져 내리기 일보 직전인 상황까지 내몰렸다.

대구 지역 환자만 499명으로 집계된 같은 달 25일 오전 10시 한 의병(醫兵)의 외침이 터져나왔다. 대구시의사회 이성구 회장(이앤김연합내과의원 원장)이다. 동료, 선후배 의사 5천700여명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저도 의사 동료 여러분도 일반 시민과 똑같이 두렵고 불안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그러나 대구는 우리의 사랑하는 부모 형제 자녀가 매일매일을 살아내는 삶의 터전입니다. 그 터전이 엄청난 의료재난 사태를 맞았습니다. 이 위기에 단 한 푼의 대가, 한마디의 칭찬도 바라지 말고 피와 땀과 눈물로 시민들을 구합시다. 우리 대구를 구합시다."

그의 호소에 의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병원 문을 닫고 코로나19 환자들이 있는 병원 내 선별진료소의 문을 열었고, 어떤 이들은 퇴근 이후 전화상담으로 힘을 보탰다. 바이러스와 당당히 맞설 의병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해볼 수 있는 전쟁"으로 바뀌었다. 아직 '이겼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통제 가능한 수준 아래로 제압했다.

감염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봉쇄를 택한 시민 덕에 확산은 주춤해졌고, 여기에 이 회장의 호소에 현장으로 달려나온 의사들로 검사와 진료가 속도를 낸 덕분이다.

▶호소문까지 내게 된 배경은.

"18일 첫 확진자 발생 이후 10명 정도 늘어나는 선에서 그칠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급속도로 환자가 늘어났고, 응급실 폐쇄도 잇따랐다. 대구동산병원이 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으로 지정됐지만 의료진이 부족했고 각 선별진료소의 의료진도 구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에 개별적으로 가까운 의사들에게 함께 자원봉사를 하자고 이야기했지만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래서 내가 직접 대구동산병원에 자원봉사를 하러 가자. 그리고 아는 의사가 아닌 불특정 다수에게, 의병을 모으듯 그렇게 호소문을 내자. 그러면 100명 정도는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을 믿었다. 25일 오전 10시쯤 호소문 발표하라는 말을 대구시의사회 관계자에게 남긴 뒤 거점병원인 대구동산병원에 자원봉사자로 먼저 들어갔다. 대구시의사회장이 아니라 봉사활동을 나온 의사 중 한명으로. 격리병동에서는 전화 연결도 제대로 안됐다. 그리고 오전에는 상황실에서 20명의 환자에게 전화로 진료, 약제처방을 내렸고, 오후에는 레벨D 등급의 방호복을 입고 회진을 돌았다. 마라톤도 하고 체력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3시간 정도 회진을 돌고 나오자 몸이 비틀거릴 정도였다."

▶호소문 발표 이후 기대했던 만큼 자원봉사자가 왔나.

"봉사를 마치고 나오니 70건이 넘는 부재중 전화가 걸려와 있었다.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도 쏟아졌다. 이후 대구동산병원에 자원봉사자와 성금이 쏟아졌다. 그리고 100명 정도 올까 기대했던 자원봉사자는 대구지역 의사만 322명, 타 지역에서는 50명이나 몰렸다. 대구시의사회 소속 의사들에게만 호소문을 보냈는데 의사들이 자신이 속한 각 학회로 보내면서 광주 등 전국에서 자원봉사자가 몰려 왔다. 이렇게 대구시의사회를 통해 자원봉사를 나선 의사들은 식사는 물론 숙소도 자비로 해결했다. 대구지역 의사들은 물론 외지에서 온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수당과 일당을 받은 의료진의 공을 가볍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모두 두려워할 때 자신을 내던지고 대구로 와준 사람들이다. 그들도 귀한 일을 했고, 조용하게 다녀간 사람, 이름 밝히기를 끝까지 거부한 이들도 같은 선상에서 대구를 위해 봉사했다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코로나19로 의료진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지난 4월3일 허영구 원장이 코로나19로 생을 마감했고, 공포가 급속도로 확산했다. 그는 180㎝가 넘는 키에 의과대학 대표 씨름선수로 나갈 정도로 건강했다. 그랬던 만큼 의사들의 충격은 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진료에 나섰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금방 잊혔다. 빈소도 못차렸다. 리본을 나눠주긴 했는데 너무 쓸쓸하게 떠나보낸 것 같다. 허 원장은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 봉사 나가기로 예약해뒀지만, 이를 이루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대구는 코로나19의 큰 위기를 넘겼지만, 이제 의사들이 생존 위기에 처했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요양급여비용 선지급 특례지원으로 건강보험공단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병원과 약국 등 요양기관에 전년도 월평균 요양급여를 선지급하고, 추후 진료를 통해 발생하는 요양급여로 상계하도록 해 환자 감소로 수입이 급감한 병원이 기본적 운영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병원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은 만큼 유예기간을 좀 길게 주고 상환하는 기간도 길게 해서 의료기관이 정상화되고 난 뒤에 갚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돈을 그냥 받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의료선진국인 미국, 독일,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에 더 잘 대응했다. 다시 말해 국내 의료인프라와 시스템이 우수하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이런 지원을 통해 좋은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K방역이고, 의료강국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창궐 당시 대한의협은 반대했지만, 대구의사회는 비대면 전화처방을 했다. 이후 정부 차원에서 비대면 진료 활성화 이야기가 나온다.

"그때는 코로나19로 인한 의료재난 상황이었고, 비대면의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았다. 그래서 대한의사협회에도 양해를 구했고, 회원들에게 전화처방을 하라고 했다. 모두 환자와 의사를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의료재난 때 일어난 특수한 상황을 일반화하면 안된다. 의료를 산업적 측면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현 시스템을 붕괴하면서 얻는 이득보다 손실이 더 크다. 의료시스템을 지켜야 한다."

▶이제 코로나19 이전 사회로 돌아가긴 힘들다고 한다.

"조금씩 변화하겠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새로운 감염병이)오면 또 이겨내면 된다. 너무 예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이들은 그를 '의병장' '코로나19로부터 대구를 지킨 영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말에 그는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라고 응수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있는 그대로, 미화하지 말아달라"고 몇차례 당부했다. 하지만 자원봉사를 오겠다고 고집한 80대 선배 의사를 설득하고, 만약 대가가 있었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름도 밝히지 않은 의사이야기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이런 의료진과 스스로 봉쇄를 택한 시민 덕분에 대구가 지금의 모습을 찾았다고 생각해서였던 것 같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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