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복지 어디까지 왔나
코로나 19 사태는 사회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물원도 예외는 아니다. 경영난, 시설 노후화 등으로 인해 촉발된 논란은 '올바른' 동물원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동물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는 여러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동안 동물복지 대상을 반려동물, 유기동물로 인식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동물원 내 열악한 환경에 놓인 '전시 동물'에 대한 동물복지 실현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 코로나 19로 위기에 처한 동물원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대구경북 지역 동물원들은 한 목소리로 '재정난'으로 인한 동물 관리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찾아간 달성군 A 동물원. 이달 초 학대·방치 논란이 빚어진 이후 다시 찾은 A동물원은 이전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일부 관리자들이 입장을 제한하고 있어 내부로 진입할 수 없었지만 외부 목장에 있던 염소와 양은 없었고 어지럽게 널려 있던 폐기물 더미도 사라졌다. 한 관리자는 "야산에 있는 돼지들을 찾고 있다. 동물들을 완전히 이전할 때까지 등산객 등 외부 출입을 막고 있다"고 했다.
21일 대구시에 따르면 해당 동물원에 있던 동물들은 낙타 1마리를 제외하고 모두 다른 시설로 이송이 완료된 상태다. 시 관계자는 "A 동물원은 재정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었고 원청 업체가 전기세를 내지 않아 전기가 끊어지는 등 어려움을 겪었던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 19 여파로 민간동물원이 전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한 3개 동물원에 재난지원금 100만원씩을 지급했으나, 시설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동물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북지역 B동물원 대표는 지난해 약 1억3천 만원의 은행 대출을 냈다. 코로나 19 사태 이후 관람객은 예년에 비해 90% 줄어들었지만 동물 관리를 위한 고정 지출은 꾸준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을 통해 인건비를 대폭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매달 2천여만원이 꼬박 들어간다. B동물원은 지역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동물의 종(100여종)가 다양하고 특히 온도 변화에 민감한 파충류는 40여 종이 되는 터라 사료 값과 전기료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는 장기화되고 있지만, '생때같은' 동물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어 대표의 고민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그는 "살아 있는 자식 같은 동물들을 굶길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라면을 먹어도 호랑이에겐 닭고기를 먹여야 하지 않겠나"라며 "설상가상 최근 AI(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때문에 닭값까지 훌쩍 뛰었다. 사료로 쓰는 사과와 배도 하나에 3천 원씩 하는 세상이다"라고 하소연했다.
동물원을 운영 중인 대구의 C테마파크도 코로나19로 인한 재정난을 피할 수 없었다. 지난해 동물농장 입장객 수는 5만9천 명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기 전인 2019년(17만 7천여명)에 비해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동물원 측은 '생명'을 위한 비용을 줄일 순 없다는 입장이다. C테마파크는 다른 분야엔 투자를 줄이더라도, 동물 먹이 공급이나 겨울철 난방 등 분야에선 아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C테마파크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입장객이 줄어들어 회사가 현재 너무나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재정적으로 많이 힘든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래도 전문사육사 2명을 포함한 직원 6명이 힘든 상황 속에서도 동물 식단 관리, 온도 등 환경 관리를 한 덕분에 현재 동물들 건강 상태가 좋다"고 설명했다.
◆사람과 동물 모두가 행복한 동물원
환경부는 올해를 시작으로 2025년까지 '제1차 동물원 관리 종합계획'을 추진한다. 지난 2018년 개정한 '동물원 및 수족관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물원법)'에 따라 시행되는 최초의 법정계획으로 △동물복지 및 서식환경 확보 △공중 안전 및 보건 확보 △생물다양성 보전·연구 기반 구축 △국내외 협력체계 구축 △동물원 선진화 기반 마련 등 5대 계획을 담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개정안은 동물원 '허가제' 도입이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동물원 설립은 보유 생물의 질병 및 인수공통 질병 관리계획, 서식환경 제공계획, 안전관리계획, 휴·폐원 시의 보유 생물 관리계획 등의 서류 제출 만으로 가능했다. 이 때문에 실제로 여건을 갖추지 못한 시설도 등록만 하면 동물원 운영을 할 수 있었다.
허가제가 본격 시행되는 2022년부터는 야외방사장을 갖춘 동물원만 맹수류를 보유할 수 있는 등 사육환경에 따라 전시할 수 있는 동물이 제한된다. 전문 검사관이 동물종별 사육시설이 적정한지 현장 점검에 나선다. 또한 코로나19가 인간과 동물 모두에 감염된다는 점을 고려해 야생동물카페 등 일정 규모 미만 전시 영업을 전면 금지할 예정이다.
또 전시 야생동물의 도입부터 폐사까지 전 생애에 걸쳐 건강·보건관리를 위한 체계를 마련한다. 이를 위해 기본 원칙 및 단계별 질병 발생시 조치 요령을 포함한 '질병·공중보건 관리 지침서'를 만든다. 동물원 내 가축전염병, 인수공통감염병(동물과 사람간 전파가 가능한 질병) 발생시 발생단계부터 보건당국(환경부, 질병관리청, 지자체 등)에 즉시 보고하는 것을 의무화한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동물원 환경 개선을 시급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대구지역 동물원에서 불거진 논란을 계기로 동물원 내 동물복지 실현을 위한 구체적 실천안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는 "허가제가 급선무라 생각한다. 심의요건을 까다롭게 하고 허가시 '이행보증금' 제도를 도입해 동물들의 안전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에 앞서 전국 동물원 실태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종별 사육규정이나 최소한의 매뉴얼도 없다. 실태 점검을 나갔을 때 원숭이에게 개사료를 먹이는 등 식단부터 잘못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정부 차원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세부적인 규정을 만들고 이를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현재 동물원의 형태는 최소한의 동물 습성이나 생태가 보장되지 않는 환경이다. 지금부터라도 동물원의 여건을 바꿔나가야 한다"며 "관리 수준이 미달인 동물원은 자격을 박탈하고, 경영난으로 폐업 수순에 이를 경우 정부나 지자체가 남은 동물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물원에 대한 정기적 감사를 실시하고 이 과정에 동물윤리위워회를 비롯한 외부 전문기관이 참여한다면 미흡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전시동물 복지와 서식환경 개선을 위해 종합계획을 추진하게 됐다. 현행법에는 사육시설 설치기준이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어 구체적 허가요건을 마련하고 있다. 국내 동물원이 한층 선진화되고 운영에 실질적인 변화가 있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정우태기자 wtae@yeongnam.com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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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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