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재 마루에서 내려다본 도동서원. 멀리 덕유산이 보인다. |
대니산 줄기가 서북으로 뻗어내린 끝자락이 낙동강을 걸터앉아 높은 벼랑을 이루는 다람재는 대구 달성군 현풍읍 자모리 느티골과 구지면 도동리 정수골 경계 지점에 있다. 이 두 골 사이의 산등성이가 마치 다람쥐를 닮았다 하여 예부터 다람재로 불린다.
이곳 다람재 마루의 팔각정에 올라서면 북남으로 곡류우회(曲流迂回)하는 낙동강의 힘찬 맥박을 느낄 수 있다. 남북으로 30여 리에 걸쳐 도도한 흐름을 한 눈으로 조망할 수 있는 곳은 낙동강 권역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절묘한 풍광이라고 한다. 북동쪽으로는 비슬산 자태를 배경으로 한 수문진 나루터를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고, 남서쪽으로는 바로 아래 도동서원과 함께 강 건너 경북 고령군 개진들과 개경포를 느긋하게 관조할 수 있다. 해질녘이면 낙동강과 어우러진 해넘이 낙조는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운이 좋으면 간간이 바위와 나무 사이로 암팡지게 뛰어다니며 재롱을 부리는 듯한 앙증스런 다람쥐의 작은 몸짓은 덤으로 즐길 수 있다.
팔각정에서 방문객이 낙동강을 조망하고 있다. |
더불어 넓지 않은 다람재 마루의 쉼터에는 오가는 길손의 고달픔을 달래주는 시비(詩碑)가 있어 반갑게 맞아준다. 자연석 화강암에 새겨진 칠언절구의 '노방송(路傍松)' 제목의 한시는 한훤당 김굉필 선생이 길가에 서 있는 늙은 소나무를 두고 읊는 한시다.
一老蒼髥任路塵(일로창염임로진)-한 늙은 소나무 길가 먼지에 맡겨
勞勞迎送往來賓(노로영송왕래빈)-힘들게도 오가는 길손 맞고 보내네
歲寒與汝同心事(세한여여동심사)-세찬 겨울에도 너와 더불어 변하지 않는 마음
經過人中見幾人(경과인중견기인)-지나가는 이 중에 몇 사람이나 보았는고.
자연석 화강암에 각자(刻字)된 노방송 시. |
길가에 노송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으면서도 길손을 힘들게 맞이하고 또 보내는데 그 많은 사람 중에 매서운 한파에도 꿋꿋이 견뎌내는 소나무처럼 마음이 변치않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보았냐며 염량세태(炎凉世態)를 비유하며 세속을 좇아 아첨하는 소인배들을 질타하는 선생의 절의(節義)를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다.
김굉필 선생은 조선 성리학의 태산북두로 존경 받는 분으로 문묘에 배향된 동방오현의 수현으로 추앙 받고 있다.
연산군 10년(1504)에 일어난 갑자사화 때 전라도 순천에서 유배 중 사사돼 훗날 이곳 대니산 중턱 정수골로 모셔와 안장됐다.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배향한 도동서원 사당에는 '노방송' 시를 형상화한 벽화가 있으며 오늘에 사는 우리에게 '노방송'은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글·사진=이외식 시민기자 2whys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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