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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양자역학을 공부한 치과의사 노병길 2…"첨단기기가 의학 압도하는 시대…의사란 무엇인가, 참회하듯 묻는다"

2021-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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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편치 않고 고심이 많을 땐 진료실 한쪽 벽에 붙여놓은 자신의 서예 스승인 토민 전진원이 쓴 행초서 휘호 곁에서 잠시 눈을 감길 좋아한다. 절벽 앞에 선 대한민국 의사들의 미래에 대해 그 역시 기대반 걱정반일 수밖에 없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의사라서 그런 게 아니다. 그냥 자기 재산의 10% 정도는 내 것이 아니란 생각 탓이다. 하늘의 몫, 이웃의 몫, 나보다 더 못한 자의 몫이라 여긴다. 매정한 생각인지는 몰라도 노숙자도 누굴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해야 된다. 세상은 돌고 돈다. 성공과 실패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 아닌가. 하지만 경쟁의 대열에 영원히 설 수 없는 절대약자가 있다. 누군가가 도와줘야 된다. 정부와 지자체의 시선에 포착되지 않는 그들의 슬픔을 함께 귀 기울여야 된다. 이건 모두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세기의 여배우 오드리 헵번이 멋진 말을 했다. '인간이 두 손을 가진 것은 하나는 나의 몫, 다른 하나는 타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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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 스승인 토민 전진원이 쓴 '후오덕(厚吾德)' 액자 앞에서 책을 보고 있는 노병길 원장. 후오덕은 '나의 덕을 돈독하게 한다'는 채근담의 한 구절이다.

◆한때 난 양자역학도였다

내가 의학도가 되는 과정에 누구보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나의 첫 전공분야는 '양자역학'이었다. 경북대 화학과에서 양자역학을 갖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그런 학위를 가진 지식인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궁극의 입자를 찾는 과정은 예수와 부처가 사랑과 자비의 실체를 인간들에게 깨우치는 과정이나 진배 없었다. '양자(量子·Quantum)'는 라틴어에서 나온 단어로 '얼마나 큰지'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양자역학은 입자와 입자의 집단을 다루는 현대물리학의 기초이론이다. 아무리 기묘하고 부조리한 사건이라도 확률이 제로가 아닌한 그것은 일어날 수 있다. 양자역학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보어가 원자모델에서 대응 원리인 메트릭스역학이고, 다른 하나는 아인슈타인의 광자의 의한 파동역학이다. 양자의 형성과 이론은 다르지만 같은 내용이다. 나는 보어이론에 근거를 둔 원자모델을 연구, 의료기술에 접목된 방사선과 의료 재료들의 합성과 반응 메카니즘 등을 연구했다. 양자역학에선 어떤 순간에 물체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불확정성의 원리'다.

삶을 양자역학에 비춰볼 때가 많다. 아주 미미한 태생일지라도 큰 삶으로 발전할 가능이 있다. 양자역학은 태양계처럼 궤도로 이뤄져 있다. 한 궤도를 올리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에너지를 주위의 모든 이가 아낌없이 투자해야 할 것이다. 부모, 선생님, 돈과 시간, 그리고 정성이다. 올려진 삶은 다시 원 위치로 반드시 돌아오며 주위에 엄청난 빛을 발하듯 큰 족적을 남기리라 믿는다. 경제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봉사와 희생이든 평범한 삶이지만 귀감으로 남길 것이다. 삶도 한순간을 보고 전부를 파악하기에는 불확정성이 있다. 번민과 갈등, 그리고 주위의 환경과 지인의 영향을 자신의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는 순간적인 불확정성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삶은 한순간이 아니라 내공이 쌓이고, 순간의 갈등과 번민이 쌓이고, 오랜 반복에 의한 삶의 궤적에 의해 만들어졌으리라 여긴다.

난 한때 약학 그리고 한의학이란 간이역을 거쳐 치과의학이란 종착역에 도달했다. 중구난방 수련기였던 것 같다. 그 속에서 한 가지 깨우친 게 있다. 반복되는 일상의 위대함과 소중함이다. 태양이란 항성, 지구란 행성, 그 행성 주위를 도는 달, 그 틈을 파고드는 소행성, 이 태양계는 우리 은하계 속을 일정한 패턴을 갖고 회전한다. 지루한 반복처럼 보인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반복된다. 그 반복성이 계절을 자연의 심벌로 만들었다. 다들 자기를 벗어나려 하지만 그게 쉬울까. 다들 자연을 좋아하지만 쉽게 자연인이 될 수 있을까. 가족을 버린다고 하지만 그게 쉬울까? 요즘 자연에 집착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건 세상한테 대립각을 세우는 건지도 모른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 속에서 찾는 평화로움이 진짜 평화로움일 것 같다.


양자역학과 인생
행성의 회전과 계절의 반복…
내공이 쌓인 일상, 위대한 것
자연인이 되는 것 쉽지 않아
사람속에서 찾은 평화가 진짜


◆치아는 알파와 오메가

가운을 입고 환자의 입 안을 들여다본다. 난 그걸 '치아탐험'이라 여긴다. 신체 중 중요하지 않는 부위는 없다. 하지만 치아는 특별해 보인다. 때론 이빨 하나가 '태산'처럼 보일 때가 있다. 저 치아는 잇몸 속에 뿌리를 내리고 살다가 어느 날 발치란 과정을 통해 한 사람과 작별을 한다. 늘 을의 위치에서 수고로움을 다 감수한다. 별별 음식물을 제대로 씹게 해주기 위해선 조물주도 어금니, 앞니, 송곳니 등이 필요했는가 보다. 나이 들면 그 치아가 다 사라지고 그럼 합죽이가 된 노인은 뒷방 늙은이가 된다. 이젠 아니다. 틀니도 인플란트도 없던 시절의 풍속도였다. 이제 치아가 뷰티의 최전선이 된 것 같다. 보철과학의 힘을 동원해 원하는 형태의 치아라인을 만들 수도 있다. 치아성형의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했다.

치아는 알파이자 오메가다. 이게 무너지면 우리의 일상도 휘청거린다. 치아가 건강의 최전선일 수도 있다. 난 그 탐험을 더 굳건히 하기 위해 세 개의 취미를 거머쥐었다. 하나는 서예, 또 하나는 테니스, 마지막엔 룰루랄라~ 고운니 밴드다. 예전 어른들이 말했잖는가, 지덕체와 문무를 겸비해야 된다고. 하지만 살아보니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것 같았다. 흘러 온 강은 하구에 다다르면 미련없이 바다에 자기 몸을 준다. 그게 가진 만큼 자기 이외의 존재에게 봉사와 자선 그리고 기부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언젠가부터 돈 자랑은 '흉'이 되었다. 얼마나 많은 돈을 번 건 삶의 필요조건에 불과한 것 같다. 승부처는 자선·봉사·기부다. 그게 한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잣대가 된 세상이 개막된 것이다. 내 삶의 알음알이, 그 돌파구는 자선과 봉사였다.


사명의 자리 넘보는 사업
보철과학, 뷰티 최전선 진격
AI가 수술 '온라인 닥터시대'
의학정보 독점시대도 종말
월급쟁이 의사까지도 등장


◆절벽 앞에 선 의사들

나는 과거의 의사와 미래의 의사,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고 있다. 한 발 잘 못 내디디면 '시대착오적 의사'로 전락할 것 같은 불안감도 엄습해 온다.

세상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유튜브는 지상의 모든 의학 정보를 실시간으로 무차별적으로 쏟아낸다. 부정하고 싶지만 이제 의사만이 의학 정보를 독점하던 시절도 대충 끝이 난 것 같다. AI가 빅데이터를 활용해 원격수술을 하는 '온라인 닥터시대'도 도래했다. 다국적 기업이 개발한 신약과 첨단의료기기가 의학을 압도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자연히 의사가 무소불위의 권능을 가졌던 '의사 지상주의' 시절도 퇴락해지는 것 같다. 나는 이걸 의사의 의무와 환자의 권리가 조금씩 선순화하려는 징조라 여기고 싶다.

예전에는 '이런 의사, 저런 의사'란 말은 들리지 않았다. 다들 의학의 최전선에 섰다. 그들은 의사를 '운명'이라 여기고 살인적 수련의 시절을 버텨내야만 했다. 저마다 특화된 권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월급쟁이 의사'까지 등장하게 된다. 그 시절 의학도에겐 상상할 수 없는 형국이다. 그 시절엔 의사 앞엔 항상 '사명'이란 단어가 따라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명이 슬그머니 '사업'으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의사도 먹고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었다. 의료보험은 의사의 호주머니를 더욱 홀쭉하게 만들었다. 문닫는 병·의원도 생겨난다. 의사를 불신하는 환자, 환자를 손님으로 대할 수밖에 없는 의사들. 알 수 없는 불신과 불안이 의학계를 옥죄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정부가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시대착오적 저울질을 한 탓'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아무튼 2021년 4월23일 나는 내가 의사이면서도 '과연 의사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반문해 본다. 이제 의사도 거리로 나가 시위농성을 하고 파업도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의학민주주의를 위한 시대의 요청이라 여기고 싶다.


삶의 승부처는 자선과 봉사
약학·한의학·치과의학 공부
환자 자리에 누워 '역지사지'
시대에 맞는 의사의 삶 고민
내 재산의 10%는 약자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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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인의 삶을 살고 있는 아내의 사랑방인 '아경당'에 놓은 찻상 앞에서 책을 보다가 집 뒤편 고려 개국조 왕건과 인연이 있는 왕산의 숲속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혼자 되는 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뒤 나는 환자들이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내 오랜 서예 사부 중 한 분인 토민(土民) 전진원, 그분이 날 위해 적어준 '히포크라테스 선서' 휘호를 액자로 만들어 진료실 벽에 부착해 놓았다. 환자들이 대기하면서 정독해 보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환자가 곧 의사이고 의사가 곧 환자인 상황을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자고 것이다. 역지사지할 수 있다면? 상식(常識)이 통하는 세상이 엄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능히 만인이 만인을 위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의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그 힘이 바로 선다면 맹자가 내세운 사단(四端)의 첫 번째 덕목인 '인(仁)'의 삶이 가능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윤동주 시인처럼 '참회록'을 자주 적는다. 지금 만감이 교차하는 대한민국의 의사들. 과연 누구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아름다운 인본공화국(人本共和國)을 선도하는 혁명가로 나설 수 있을까?

글·사진=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노병길

△ 경북대 치과대 졸업
△ 고운니치과 개원
△ 1388치과지원단-청소년위원회
△ 대구시 동구치과의사회 의료봉사상
△ 한국장애인봉사협회 봉사상
△ 보건복지부장관 자랑스러운 한국장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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