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야권의 유력 대권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20일 대구를 찾아 광폭 행보를 펼치며 'TK 민심'을 탐방하고 지지를 당부했다. 2·28 민주운동 기념탑→서문시장→동산병원→동성로→창조경제혁신센터로 이어지는 강행군이었다.
윤석열은 보수의 적통, 성지, 심장, 텃밭이라고도 불리는 대구에서 파격적인 발언들을 쏟아냈다.
"우리나라는 보수와 진보란 정치적 진영으로 갈려서 갈등과 대립으로 사회발전을 가로 막고 있다. 대구·경북은 기득권을 수호하는 그런 식의 보수는 전혀 없다. 더 기득권을 타파하고 국민의 권리가 훨씬 중요시되고 나라의 마래를 더 먼저 생각하는 리버럴하고 진보적인 도시다."
윤석열이 '보수-진보론'으로 열변을 토하던 그 시각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병이 재발해 서울성모병원에 급히 입원했다. 박 전 대통령은 대구를 정치적 기반으로 보수정권을 이끌다 윤석열 수사팀장이 활약한 박영수특검의 수사를 받은 끝에 구속과 탄핵으로 내몰렸었다.
2017년 3월 31일 구속된 박 전 대통령은 어깨통증 등으로 구치소와 외부병원에서 줄곧 진료를 받았다. 2019년 9월에도 서울성모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78일간 치료하다 구치소로 돌아갔다. 박 전 대통령측은 그 무렵 형집행정지를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진보성향 언론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장기간의 외부병원 입원이 '특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올해 2월에는 통원 치료를 위해 호송 차량에 함께 탑승했던 서울구치소 직원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는 바람에 밀접 접촉자로 분류돼 병원에 입원했다.
박 전 대통령의 경과는 의료진이 살펴봐야 하지만 입원을 거듭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진 만큼 8·15 특사로 석방될 가능성이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사면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사면론에 이전보다는 전향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일부 언론은 두 전직 대통령 중 박 전 대통령만 광복절에 석방될 것이라며 '선별사면'을 보도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한 찬반여론은 갈린다. 다만 정가에선 사면 자체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에 주목한다. 실제 사면이 이뤄질 경우 대선판, 특히 범야권의 후보경쟁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치소를 나온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 메시지를 내든 내지 않든 탄핵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경선버스 8월 정시 출발론'을 외치며 후보경선 스타를 예고한 시점에 8·15 특사가 이뤄지게 되면 탄핵책임론이 경선의 최대 이슈가 될 수도 있다.
국민의힘 안의 기존 대권주자는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지사, 하태경 의원 등 탄핵찬성파 위주로 짜여 있었다. 이들은 탄핵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입장이고, 이준석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복당한 홍준표 전 의원은 탄핵 후 치러진 조기대선에서 정통 보수정당의 후보로 출마했었다. 최근 입당한 판사 출신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탄핵책임론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장외에 머물고 있는 윤석열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탄핵은 사면권자의 선택"이란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보수정권 수사엔 '위로'와 '유감'을 표명했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이 8월에 석방되고 국민의힘 안의 탄핵 반대파들이 홍준표나 최재형에게 쏠릴 경우 치열한 책임공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경우 윤석열의 국민의힘 입당은 거의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사법적 판단으로 수사를 한 입장에서 정치적 논리로 싸우는 판에 몸을 던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특사가 이뤄지면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올지도 관심이다. 지난해 4·15 총선 때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뭉쳐달라"는 자필 편지가 공개됐음에도 전체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한 명의 대표선수를 뽑아야 하는 대선은 다르다. 서로 '박근혜 석방'을 유리한 쪽으로 해석해서 박 전 대통령 의사와는 상관없이 쟁점으로 만들 게 분명하다. 그렇게 분열되는 상황이 정가에서 쭉 거론돼 왔던 '문재인 정권의 박근혜 사면 카드' 활용법이다.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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