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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우리말과 한국문학] 한시적 '내로남불' 사용 중지 제안

2022-01-13

현대판 사자성어 '내로남불'
관습적으로 특정한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언어표현
상대 위선 향한 비난의 메시지
생산적인 정치를 위해 자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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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바야흐로 '내로남불'의 전성시대다. 기억력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지만 이 기이한 단어와 처음 조우한 날을 비교적 생생히 기억한다. 6~7년 전에 한 강의실에서 인문계 학생들이 취업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토론을 하던 중이었다.

한 학생이 "이게 일종의 내로남불인데요…"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적으로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분명히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염치 불구하고 무슨 말을 한 것인지, 그 뜻은 무엇인지 물을 수밖에 없었고 학생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궁금증은 해소되었다.

사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원래의 표현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 다만 그것의 줄임말 '내로남불'이 존재하는 것을 몰랐을 뿐. 그때는 몰랐다, 내가 이 단어를 지금처럼 빈번하게 듣게 될 줄은.

'내로남불'과 같은 표현을 '현대판 사자성어'라든가 '짝퉁 사자성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형태가 고사성어라고 일컫기도 하는 사자성어와 일견 유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로남불'을 전통적인 의미의 사자성어에 포함시킬 수는 없다. 사자성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네 글자의 한자어로 이루어져야 한다. 왜 네 글자일까? 중국의 사자성어를 연구한 한 학자의 주장에 의하면 사자성어의 연원은 시경(詩經)의 사언시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둘째, 두 개 이상의 단어가 결합하여 비합성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다시 말하면, 사자성어를 이루는 한자의 의미를 합한 것 이외의 의미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는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넘어서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드러난다"라는 별도의 뜻을 가진다. 셋째, 일반적으로 옛사람이 만들어 널리 인용되어 쓰이는 말이다. 사자성어는 그것이 만들어진 연원이 존재하며 시대를 뛰어넘어 반복적으로 인용된다. 많은 사자성어는 사기나 한비자와 같은 중국의 고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근본 없는 사자성어와 깊게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일까? 모든 현상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어떤 언어 표현들은 관습적으로 특정한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이란 표현을 생각해 보자. 평상시에는 아무도 '너를 친애하고 싶어'라고 말하지 않지만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이란 표현은 친숙하게 여긴다. 이 표현을 듣는 순간 수많은 군중 혹은 기자들이 둘러싼 단상 앞에서 연설을 하거나 성명을 발표하는 정치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이란 표현은 어떠한가? 이 표현을 듣자마자 놋그릇에 담긴 갈비탕이 떠오르지 않으시는지? 그렇다면 '내로남불'은? 책상을 내리치며 호통을 치는 그 누군가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동일한 상황에서 특정한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메시지의 해석을 용이하게 하고 메시지의 혼동을 예방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내로남불'은 상대방의 위선 그리고 이중 잣대에 대한 비난이라는 선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혹자는 '내로남불'을 정치 전문용어라고 부른다. 특히 선거철을 맞이하여 사용 빈도는 점점 늘어만 가는 듯하다. 엉뚱한 상상을 한번 해 본다. 오는 3월9일까지라도 '내로남불'을 금지어로 지정하면 어떨까? 선거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이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협약을 맺는 것이다. 아마도 지금보다 조금 더 생산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선거전이 되지 않을까.

김진웅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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