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대사 창건설화가 깃든
한국 화엄종 대표하는 사찰
천년 세월 견딘 건축의 백미
수려한 풍광·깊은 사상 품은
文人의 작품배경이자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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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주 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
내 고향은 영주 부석이다. 부석이라 하면 사람들은 "아! 부석사 있는 데요?"하고 되묻는다. 부석사는 부석이라는 이름에서 유래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부석사를 여러 차례 구경했다. 길가로 늘어진 능금이며, 절 입구에 서 있는 당간지주, 안양루로 통하는 아름다운 돌계단을 오르면 만나게 되는 무량수전, 그리고 그 서쪽으로 가면 거대하게 누워있는 부석(浮石)과 동쪽 언덕에 자리한 조사당….
부석사는 676년 창건되었다. 의상 대사가 절을 지으려 할 때 다른 무리들이 이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선묘가 용으로 변해 커다란 바위를 들어 올려 그들을 물리고 절을 창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선묘는 당나라에 유학 온 의상을 사랑해 의상이 귀국할 때 용이 돼 따라왔으며, 부석사 창건을 돕고 나중에는 석룡이 돼 부석사를 지켰다고 한다. 한편 의상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가 움이 돋았다는 나무(선비화)는 지금도 자라고 있다. 의상의 이야기는 시공을 초월해 중국·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에 알려졌다. 그곳에 가면 하나의 티끌에 온 우주가 들어있고(一微塵中含十方),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은 잠깐이요, 잠깐이 무한(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이라는 의상의 화엄사상을 만날 수 있다.
부석사에는 수많은 문인이 찾았다. 이황은 선비화의 신비함을 노래했고, 김삿갓은 안양루에 올라 절 앞에 펼쳐진 빼어난 경치와 세월의 무정함을 읊조리기도 했다. 어찌 이들뿐이겠는가? 현대의 작가들도 부석사를 노래했다. 김명인의 '부석사'를 비롯해 박영교의 '부석사의 노을', 정일근의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서', 정호승의 '그리운 부석사' 등 셀 수 없다. 또한 수많은 사람이 부석사를 다녀갔고, 각종 답사기를 남기지 않았던가.
신경숙 또한 부석사를 다녀간 후 소설 '부석사-국도에서'를 썼다. 이 작품에서 부석사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연인의 배반으로 뜻하지 않은 이별을 당한 그녀와 회사 동료로부터 배신당한 그 남자는 1월1일을 맞아 부석사로 여행을 떠났다. 그들은 풍기를 지나 지방도로 접어들었다가 길을 헤맨다. 우연히 전각에 이르러 영주 신암리 마애삼존불을 구경하기도 하지만, 철도건널목 앞 세 갈래 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 산길에 이르고 진창에 빠지고 만다. 그녀는 삶의 낭떠러지로부터 도망쳤지만 다시 낭떠러지를 만난 셈이다.
"부석사의 포개져 있는 두 개의 돌은 닿지 않고 떠 있는 것일까. 커피를 들지 않은 한 손으로 자꾸만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리고 있다. 그녀는 문득 잠든 그와 자신이 부석처럼 느껴졌다. 지도에도 없는 산길 낭떠러지 앞의 흰 자동차 앞 유리창에 희끗희끗 눈이 쌓이기 시작한다."
경주에 머물 때 택시 기사가 고향을 물어 부석이라 말했더니 "아, 별이 아름다운 곳이요!"하고 말했다. 그는 부석사에 놀러 갔다가 절 아래 동네에서 하루 묵게 되었는데, 그때 들려온 풍경소리와 밤하늘의 별은 정말로 아름다웠노라고 했다. 부석사의 밤하늘은 또 다른 별천지다. 부석사는 빼어난 풍광과 뛰어난 건축미를 갖추고 다양한 작품과 심오한 사상을 품은, 그리고 밤하늘의 별이 하늘 가득 빛나는 곳이다. 이처럼 아름답고 유서 깊은 고향인데 어찌 그립지 않으랴.
김주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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