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준의 시네마틱 유니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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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업계 최초 '포용성 보고서' 발간
전 세계 여성직원 비율도 50%나 넘어
조직 운영 외 콘텐츠 제작에도 정책 반영
비주류 그룹 위한 창작발전기금 설립
차별금지법조차 제정되지 못한 한국
'포용성 정책' 사회적 가치 고려 필요
지난 5월17일은 '아이다호 데이(IDAHO Day)'였다. 아이다호(IDAHO)는 '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and Transphobia' 영문 앞 글자를 딴 용어로 '국제 동성애자 및 성전환자 차별 반대의 날'을 말한다. 1990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동성애를 질병 분류 목록에서 제외시킨 것을 기념하는 날로, 2004년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 이날엔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없애기 위한 캠페인이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다.
리버 피닉스와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한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 '아이다호'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아이다호'가 퀴어영화라는 점에서 연결고리를 찾기도 한다. 어쨌든 아이다호 데이가 20년 가까이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 날 여러 캠페인이 펼쳐지지만, 여전히 차별과 폭력으로 고통 받은 성 소수자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우리 사회의 노력이 없진 않았다. 그 중 하나가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운동이다. 차별금지법은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성별, 인종, 장애, 학력, 종교 등을 이유로 한 모든 차별을 금지하기 위한 법안으로 2007년 발의되었다. 하지만 당시 발의된 법안의 내용에는 '학력, 언어, 병력, 성적 지향, 출신국가,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의 7개 차별금지 사유는 삭제된 채 반쪽법안으로 발의되었었고, 그 후 개정된 법안들이 여러 건 발의되었지만 지금까지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인권위원회는 이 법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가 충분하다고 보고, 법 제정 촉구에 나섰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7.2%가 평등 사회의 실현을 위해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법을 제정하기 위한 단체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지난 4월11일부터 국회 단식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차별금지법 또는 평등법은 OECD 국가 중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 존재한다. 유럽연합의 경우 유럽연합 가입 조건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한다. 차별금지법이 한 국가의 인권지수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가 되는 것이다.
이 지표는 국가를 넘어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도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글로벌 OTT 기업인 넷플릭스는 2021년 업계 최초로 '포용성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그러면서 DEI를 콘텐츠 및 조직운영의 핵심 전략으로 제시하고 있다. DEI는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을 일컫는 용어이다. DEI는 이미 많은 기업들이 도입한 정책이다. 미국에서 이루어진 한 조사에 따르면 DEI를 도입한 기업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300개 기업을 조사한 가운데 응답자의 79%가 관련 예산을 늘리겠다고 답했으며, DEI를 도입함으로써 직원의 61%가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다는 답을 했다고 한다. 포용성은 그 자체로 차별을 없애는 의미 있는 일이지만, 기업의 관점에서도 이는 소위 비즈니스가 더 나아지는 데 기여하는 전략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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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
넷플릭스 역시 포용과 다양성을 통해 기업의 창의력과 혁신이 성장한다고 말한다. 넷플릭스의 첫 번째 보고서가 나온 1년 뒤, 업데이트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여성 직원의 비율은 50%를 넘었다. 미국 내 흑인, 아시아계, 히스패닉, 라틴, 중동 등 대변도가 낮았던 인종과 민족에 소속된 직원 역시 50%를 넘었다. 다만, 라틴계와 원주민에 대한 채용 증대와 성 정체성, 장애, 성적지향 등에 해당하는 직원의 대표성에 대한 조직의 인식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진단되었다. 이러한 포용성 제도는 조직 운영뿐만 아니라 넷플릭스가 제작하는 콘텐츠에도 적용이 된다는 점이다. 넷플릭스는 비주류 그룹의 창작 기회를 늘리기 위해 넷플릭스 창작발전기금을 설립했다. 5년간 1억달러가 지원되며, 이 기금을 통해 원주민, 아랍여성, 아시아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하는 지원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포용성은 비단 제도와 정책으로만 구현되는 건 아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엔칸토: 마법의 세계'의 경우 주인공 미라벨이 안경을 쓴 인물로 등장하는데, 애초 주인공은 안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평소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던 영국 소녀 로리는 어린 시절부터 안경을 써왔으나, 자신이 좋아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는 안경 쓴 주인공이 없어 "외롭고, 스스로 예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디즈니에 안경 쓴 주인공을 만들어달라는 편지를 보내게 되었고, 결국 '엔칸토: 마법의 세계' 주인공인 미라벨은 안경을 쓰고 등장하게 된다. 이 영화는 영국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고, 편지를 쓴 로리는 영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초청을 받았다. 물론 디즈니라는 조직 내에 포용성에 관한 분위기가 없었다면 로리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런데도 이 경우는 관객에 의해 촉발되어 콘텐츠의 포용성이 구현된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아직 차별금지법조차 제정되지 못한 한국에서 많은 업계에 포용성 정책을 요구하는 건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경제적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이 이러한 사회적 가치의 선진화에 있어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포용성이라는 지표가 자유로운 콘텐츠 제작에 있어 진입장벽으로 작동하진 않을까 우려할 수도 있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카메라 앞의 포용성이 카메라 뒤의 포용성과 큰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스크린의 포용은 우리 내부 커뮤니티의 포용에서 시작된다'라는 넷플릭스 최고 콘텐츠 책임자인 테드 서랜도스의 말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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