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폭우 속 강풍이 불었던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 옆 도로. 당시 고층아파트에서 발생한 빌딩풍으로 도로에 돌풍이 불면서 초등생이 통로에 고립되기도 했다. 이동현 수습기자 |
폭우가 쏟아진 지난달 14일 오전 8시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 단지. 길을 걷던 초등학생 한 명이 우산이 뒤집어 지고 부러져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화들짝 놀라 건물로 피신한 A양은 "평소에도 아파트 단지 밑엔 바람이 세서 걷기가 힘들다"라며 "특히 오늘은 비가 오고 바람이 센 탓에 우산이 뒤집어져 아버지를 불렀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대구 북구의 한 29층 아파트에서도 높은 빌딩 사이로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한 주민은 양산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간신히 걸어갔다. 성인 남자가 서 있기도 버거운 강도의 바람이었다. 주민 B씨는 "고층 아파트인데다 바람이 모이는 구조라 건물 내에도 돌풍이 불어 창문이 깨질 듯한 불안감이 자주 든다. 폭염으로 덥지만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문을 열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고층 건물에서 발생하는 '빌딩풍'이 도심 속 빌딩 숲을 거니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
'빌딩풍'이란 도심의 고층 빌딩 사이에서 발생하는 돌풍이다. 빌딩의 좁은 구역에 바람이 부딪히면서 생기는 강한 바람인데,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빌딩풍이 불면 바람의 강도가 20~30m/s까지 높아져 태풍급 풍속인 17m/s보다도 강해진다.
이런 빌딩풍은 50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에서 주로 발생하지만, 50층 이하 고층 건물에서도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부산대 권순철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지난 5월 발표한 연구는 25~33층 규모의 건물에서도 빌딩풍이 피해를 준 사례가 확인됐다.
다행히 대구지역에선 빌딩풍으로 인한 피해 사례가 아직까지 많지 않다. 대구시와 소방안전본부 등에 따르면 50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이 지역 내 2곳에 없어 빌딩풍을 심화시킬 수 있는 강풍 피해도 대구지역 기후 특성상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구엔 연평균 2~3회의 강풍 특보가 내려지며 강풍 피해 안전 조치는 총 18건이다.
지난달 30일 오후 대구 동구 동대구로, 대로를 따라 고층 빌딩이 줄지어 서 있다. 인근 건물과 아파트 간 간격이 좁아 빌딩풍이 생성되기 쉬운 환경이다. 이동현 수습기자 |
하지만 빌딩풍이 한 번 발생하면 피해의 규모가 적지 않아 여름철 태풍을 대비해 빌딩풍에 대한 대책도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6년 부산 해운대 지역에선 태풍 '차바'가 좁은 빌딩 틈새를 통과하면서 건물 창문과 외벽이 산산 조각나는 사례가 있었다. 부산시는 당시 큰 피해가 발생한 이후, 지난해 빌딩풍 예방 조례를 만들어 대비하고 있다.
김해동 계명대 환경학부 교수는 "높은 빌딩 숲속에서는 바람이 지나가는 공간이 좁아지면 풍속이 급격하게 세진다"라며 "해외 고층 건물이 많은 도시에선 이미 도시 바람의 통행에 장애를 주지 않도록 설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빌딩 중간에 바람구멍을 두는 방법이나 빌딩 모양을 바꾸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과거의 풍속 데이터와 미래에 예측되는 도심 속 강풍 수준을 고려했을 때, 도시 속 시민들이 바람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는 마련해야 한다"라고 했다.
대구시와 소방본부는 아직까진 빌딩풍에 대한 대책은 마련하지 않은 상황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도시 속 재난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포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건축물 관리 측면에서 '빌딩풍' 한 가지의 사례만으로 규정을 만든 것은 없다. '초고층 및 지하연계 복합건축물 재난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서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라고 했다.
대구소방안전본부 관계자 또한 "빌딩풍에 대한 별도 집계는 없는 상태다. 풍수해를 통합 관리하고 있는데, 오는 10월 15일까지 풍수해 대응 태세를 유지할 계획이다"라며 "하지만, 평년에 비해 2배 이상 소방 활동이 증가한 지난 2020년 기상 상황과 비슷할 것으로 예측하고, 태풍·강풍·집중호우 등 자연 재난에 대비하겠다"라고 했다.
이자인기자 jainlee@yeongnam.com
이동현 수습기자 shineast@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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