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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한국문학] 김동인의 '감자'와 고구마

2022-07-14

근대 초기 감자·고구마의 혼용

엿볼 수 있는 김동인의 '감자'

물질만능사회의 슬픈 현실

삶의 모순과 부정적인 모습

자연주의 기법을 통해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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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내 고장 6월은 감자 수확이 한창이었다. 7월에 접어들면 감자는 껍질이 두꺼워지고 거북등처럼 갈라지는가 하면, 장마로 인해 썩거나 싹이 나기도 했다. '감자'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어릴 적 하루는 친구랑 산에 올랐다가 그가 밭에서 캐온 감자를 몰래 구워 먹은 적이 있다. 나뭇가지를 끌어모아 불을 피우다 불이 사그라질 때쯤 감자를 통째로 올리고 모래로 덮어버리면 맛있는 감자를 먹을 수 있었다. 옥수수나 토마토 등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 감자는 아이들의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좋은 먹거리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감자를 고구마와 함께 구황작물이라 불렀다. 그러한 감자를 다시 만난 것은 김동인의 소설 「감자」에서였다.

"가을이 되었다. 칠성문 밖 빈민굴의 여인들은 가을이 되면 칠성문 밖에 있는 중국인의 채마밭에 감자며 배추를 도적질하러 밤에 바구니를 가지고 간다. 복녀도 감자깨나 잘 도적질하여 왔다. 어떤 날 밤, 그는 감자를 한 바구니 잘 도적질하여 가지고, 이젠 돌아오려고 일어설 때에, 그의 뒤에 시꺼먼 그림자가 서서 그를 꽉 붙들었다."


「감자」에서 복녀는 감자 서리를 나섰다가 왕서방에게 붙들린다. 「감자」를 처음 읽었을 때 조금 의아했다. 가을에 감자 도적질이라니. 지역에 따라 가을에 수확하는 '가을감자'가 있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지 했다. 그런데 나의 의아함은 이 부분이 논란이 된 후 「감자」의 판본을 직접 확인하면서 풀렸다. 최초 발표본(『조선문단』, 1925년 1월)의 "지나인(支那人)의 채마밭에 감자며 배채를 도둑질하려"가, 1935년 단행본에는 "중국인의 채마밭에 감자(고구마)며 배추를 도둑질하려"로 되어있었다. 작가가 나서서 '감자'가 '고구마'임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김동인은 10년이 지난 뒤에 왜 굳이 '감자'를 '고구마'라고 밝혔는가? 이수창은 「감자」를 일어로 번역(1928)하면서 '감자(馬鈴薯)'로 옮겼으며, 이광수(1932) 역시 그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감자」를 실은 첫 단행본(1935)의 표지에도 감자꽃 그림이 장식되어 있다. 이는 당시 「감자」가 광범위하게 '감자'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현재 독자들도 「감자」하면 당연히 일반 감자를 떠올린다.

1920~30년대에 우리말 '감자'는 감자(馬鈴薯)와 감자(甘藷=고구마)를 오가며 혼란스럽게 사용되었다. 
뉴스라이브러리를 보면 「감자」가 나온 1920년대 중반 평양 지역에서 감자는 일반적으로 고구마(甘藷)를 의미했다.  그 시기 「대동교 위의 원혼」(『조선일보』, 1925년 12월 2일)에 평양 대동교 부근에서 '감저(甘藷)' 장사를 하던 조중팔의 아내 김씨가 일본 순사의 구둣발에 옆구리를 차였다가 사망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그런데 이 기사에서 이후 "감자 담은 바구니" "감자를 팔러" 등 모두 고구마(甘藷)를 그냥 '감자'로 표기했다. 그렇지만 1920년대 말 감자(甘藷)가 우리말 '고구마(甘藷)'로 널리 사용되면서 사람들은 '감자'를 '감자(馬鈴薯)'로 받아들이게 된다. 김동인은 그러한 오해를 불식시키려고 「감자」가 고구마임을 밝힌 것이다.

복녀는 고구마를 서리하다 걸려 고구마밭 소작인 왕서방에게 몸을 팔면서 그와 급격히 가까워진다. 그런데 왕서방이 어떤 처녀를 마누라로 사 오자 질투심에 활극을 벌이다 왕서방이 휘두른 낫에 찔려 죽는다. 그녀의 사인은 남편과 왕서방, 한의사(漢方醫)의 돈거래를 통한 협잡으로 인해 뇌일혈로 바뀐다. 80원에 팔려 시집온 복녀는 죽음마저 30원에 팔리게 된 것이다. 김동인은 물질만능 사회에서 사람 목숨조차 돈으로 거래되는 서글픈 현실을 그려냈다.
김주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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