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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우리말과 한국문학] 우뇌로 느끼는 세상

2022-08-18

뇌출혈로 좌뇌의 기능 상실
이성·논리보다 현재에 집중
불국토를 경험한 수로부인
따지고, 분노하는 세상살이
우뇌의 경험이 절실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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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락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최근 88세의 어머니께서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지셨다. 뇌출혈이 발생한 것이다.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멀리서 급히 달려온 손자·손녀들을 볼 때 잠시 깨어나기도 하셨지만 의식이 없었다. 출혈이 일어난 곳을 코일색전술로 막는 응급 시술도 했지만, 다시 혈전이 생겨 좌뇌 일부에 경색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 일이 일어난 후 어머니는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호흡은 고르고 얼굴은 평온했다.

나는 어머니의 현재적 내면을 알 수가 없었다. 항상 관세음보살을 외우며 '자는 잠에 가는 것'을 염원하셨던 어머니, 그 내면 의식은 어떠할까? 고통 속에 계시지는 않을까?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 또한 커다란 고통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눈물을 닦으며 검색창에서 찾아낸 책이 질 볼트 테일러의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윌북, 2019)이다. 저자는 하버드 대학의 뇌과학자였고, 이 책은 그녀 자신의 뇌출혈 경험담과 그 극복과정을 감동적으로 쓴 것이었다.

어느 12월의 아침, 테일러는 자신의 좌뇌가 무너져내리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면서 우뇌의 세포들을 억제하던 좌뇌의 능력도 힘을 잃어가는 것을 감지했다. 그 결과 자신의 의식이 현재에 집중하게 된다는 통찰을 얻었다. 지금 여기 이 순간만을 인식하게 되었고, 좌뇌가 담당하는 분석과 판단 그리고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인식은 사라졌다. 영원한 현재를 경험한 것이다. 우뇌는 현재 있는 모든 사물의 존재를 기쁨과 감사함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삼국유사 기이편에 보면 수로부인 이야기가 나온다. 절세의 미인이어서 노인이 '헌화가'를 부르며 꽃을 꺾어 바치기도 했던 인물이다.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해 가다가 임해정에서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용이 나타나 부인을 낚아채 바닷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공은 어느 노인의 말에 따라 경내의 백성들을 모아,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남의 아내를 약탈해 간 죄 얼마나 큰가!"라며 '해가(海歌)'를 불렀다. 그러자 용은 부인을 모시고 바다에서 나와 부인을 바쳤다.

순정공이 수로부인에게 바닷속의 일을 물으니 부인은, "일곱 가지 보석으로 꾸민 궁전에 음식들은 달고 매끄러우며 향기롭고 깨끗하여 인간 세상의 음식이 아니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일연은 이어서 '부인의 옷에도 색다른 향기가 스며 있었는데, 이 세상에서 맡아 볼 수 있는 향기가 아니었다'라고 적었다.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이 세상의 저편에 있는 또 다른 세상, 수로부인과 일연은 지금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수로부인이 보고 느꼈다는 바닷속 풍경을 주목한다. 질서와 논리를 앞세우며 따지기를 좋아하는 인간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곳은 일곱 가지 보석으로 꾸민 궁전, 그 속에서 맛보는 달콤한 음식이 있는 불국토였다. 우뇌의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사복(蛇福)이 죽은 자신의 어머니를 업고, 칠보난간의 장엄한 누각이 있는 연화장(蓮花藏) 세계로 들어간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논리 이전의 세계이며 논리 이후의 세계이다.

오늘날 우리는 분별하고, 따지고, 질투하고, 분노하는 세상에 산다. 좌뇌의 편향적 활동이 극심하다. 그러나 좌뇌가 작동하지 않으면 학습을 할 수가 없다. 인류의 문명도 사회의 발전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는 우뇌로 느끼는 세상이 절실하다. 사실 내 어머니의 현재적 상황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테일러가 이야기한 것처럼 어머니는 열반을 체험하고 계신다고 믿는다. 그리고 수로부인처럼 조만간 우리 곁으로 돌아와 그 향긋한 체험을 이야기해 주실 것이다.정우락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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