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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
'서연고·특목고·대기업 패키지 지방 이전'. 아직은 미생(未生)의 아이디어다. '서연고'란 서울대·연세대·고려대를 일컫는다. 주창자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 형식은 지난주 언론 인터뷰에서다. 일단 팩트만 놓고 보면 (1)행안부 장관이 주목한 관점은 '국토균형발전' (2)'균형발전'을 실현할 핵심 솔루션은 '대기업 지방 이전' (3)'대기업 지방 이전'을 성사할 효과적 수단으로 '서연고·특목고 패키지 이전'이 등장한 것이다. (4)여러 부처가 얽힌 대과제여서 범정부적 어젠다가 돼야 비로소 추진 가능하지만 (5)현재로선 이 장관 머릿속 아이디어일 뿐이다. 대통령 공약이나 12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정책을 관계 부처, 학교와 논의 없이 언급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래서인지 (6)사안의 파괴력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정치권, 지방까지도 잠잠하다.
깊이 있게 검토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장관의 정치적 비중을 감안하면 윤석열 정부 핵심 인사들 사이 일정한 공감대가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냥 두면 말풍선처럼 사그라든다. '서연고·특목고·대기업 패키지 지방 이전' 프로젝트는 지방을 위한, 지방의 과제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게 세상의 이치. 첫 스텝은 '지방'의 몫이다. 남 눈치 볼 것 없이 지방부터 나서 불을 지펴야 한다.
이 장관은 '한국에는 넘을 수 없는 두 개의 선(線)이 있다'고 했다. 휴전선 그리고 취업남방한계선. 수도권 아래 지역으로는 취업도 잘 하지 않고 할만한 곳도 없다는 의미다. 균형발전의 주무 장관으로서 '대기업 지방 이전'을 핵심 솔루션으로 선택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여기까진 역대 정부도 모르지 않았다. 이제껏 성과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가 대계(大計)의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기업을 어찌 지방으로 억지로 내몰 수 있겠는가. 기업을 이전시킬 만족스러운 필요충분조건을 갖추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트로 움직이자'는 것이다. 진일보한 제안이다.
100대 기업 중 91곳, 인구의 51%(2022년 9월)가 국토의 1/10에 불과한 수도권에 몰려있는 나라는 지구촌 어디에도 없다. 안 그래도 좁은 땅. 이마저도 휴전선에 막혀 남쪽 반(半)뿐인데, 한술 더 떠 무형의 경계선을 그어 수도권만 사람 사는 곳으로 대접하니 스스로 좁은 섬처럼 대한민국을 가두고 있다.
공공기관 이전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사람들이 지방으로 가려면 결국 양질의 일자리와 연관 산업을 유발하는 대기업이 지방에 정착해야 한다. 대기업에 인재를 공급할 주요 대학과 직원 자녀들이 공부할 교육환경을 세트로 묶어 이전해야만 효과 있다. 수도권대 이전만으로도 엄청난 지방의 변화가 기대된다. 대학 이전은 대기업 이전보다 더 어려운 숙제다. 지방으로 가는 게 좋으면 가지 말라 해도 간다. 지방에 대학·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인프라부터 갖추는 게 순서다. '패키지' 구상이 완벽하진 않지만, 그런 인식에서 출발한 것은 긍정적이다. 대학과 기업의 위치가 왜 중요한가. 집값·육아·저출산·교통난·교육비·취업난·일자리·지방소멸·인구집중·성장동력 상실 등 태반의 문제를 푸는 게임체인저가 그곳에 있다. 감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수도권이 또 어떤 기득권 논리로 '패키지 지방행' 구상을 회수해 갈지 모른다.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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