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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
예상보다 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검찰의 야당 당사 압수수색은 초유의 일이다. 검검(檢劍)이 이재명 대표의 턱밑까지 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임박하다. 지난 주말 감사원은 문 정부 인사 20명의 수사를 요청했다. 칼끝이 이미 노영민 전 비서실장, 서욱 전 국방장관까지 향했다. 동시 급발진한 감사·수사는 이례적이다. 최종적으로 문 전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야당의 선택지는 좁다. 국민에 직접 호소하는 길밖에 없다. 장외로 내몰리는 야당. 불행한 일이다. 미증유의 민생·안보 위기 앞 우리 정치가 지지리도 못났다.
대장동 수사는 예고된 바다. '이재명 리스크'는 다름 아닌 당내에서 오랫동안 제기된 문제다. 당사 문을 열더라도 수사에 협조하는 게 순리다. 신속한 수사로 '이재명 리스크'를 털고 가는 것이 정도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다르다. 정략적 냄새가 짙다. 법의 판단은 후일의 일이니, 책임 소재에 대해서는 불문곡직하자. 그러나 짚고 넘어갈 분명한 것 하나 있다. 이 감사·수사는 정권 걸고 하는 싸움이 될 터이다. 파국을 각오하고 시작한 걸까. 협치는 벌써 물 건너갔다. 조만간 전혀 다른 국면에 직면하게 된다.
양 진영이 물러설 수 없는 지점에서 대치했다. 'All or Nothing'의 지옥문이 열렸다. 진보 진영으로선 '문재인 구속'은 '인내'의 마지막 안전장치를 제거하는 순간이다. 승패는 '법정'이 아니라 '거리'에서 결판난다? 위험천만한 싸움의 방식이다. 모두에게 유익하지 않지만 피할 수 없는 전쟁. 엎지른 물이다.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없다.
자중지란은 스스로 무너지는 최악의 함정. 구한말도 그랬다. 열강의 다툼이나 내우외환의 엄중함이 그때보다 절대 가볍지 않다. 100년 만에 부활한 제국주의의 유령이 한반도 주변을 맴돈다. 이 와중에 우리끼리 떼싸움 채비를 하다니. 서산낙일(西山落日)의 노을처럼 번민이 슬프도록 붉다.
몇 가지 의문이 든다. 궁극적 결말, '문재인 구속'은 가능할까? '문재인 구속'이 가능하다면 국민의힘은 무엇을 얻을까? 진보 진영의 맞대응 카드는 탄핵?
윤석열 대통령 퇴진과 김건희 여사의 특검을 요구하는 촛불대행진이 10회차를 넘겼다. 군불 때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벌써 '범국민적 저항운동'(박범계 의원) 운운한다. 문재인 구속 vs 윤석열 탄핵. 거리의 백병전은 어느 쪽에 유리할까? 둘 다 존망을 걸기엔 명분이 허술하기 짝이 없다. 박근혜처럼, 이명박처럼, 문재인도 감옥에 보내야 속 시원하겠다는 보수의 마음을 잘 안다. '총살감'(김문수 전 의원)이란 말에 섬뜩한 적의를 느낀다. 이대로면 내년 내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군중의 함성과 촛불을 또 마주하게 된다. 모두의 불행이다.
국가 위기는 뒷전이고 싸움질만 하면 국민은 누구부터 손가락질할까. 국정을 책임진 쪽의 부담이 훨씬 크다. 민심을 더 헤아려야 한다. 당심만 중시하고 민심과 거리 두면 5년 내내 여소야대 간다.(유승민 전 의원) 분노 게이지를 조금씩 낮추자. 그다음 국민에게 협력을 구하라. 그래서 이 나라를 어떤 나라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보여야 한다. 아직도 보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만의 고유함을 회복할 때 민심도 돌아온다. 싸움박질과 이를 즐기는 구경꾼의 아첨에 휘둘려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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