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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
국가를 지탱하는 3축, '정치' '경제' '안보' 모두 위기다. 일어나는 일마다 '처음'이고 '초유'고 '미증유'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최고' '최저' '최악'의 수치는 연일 경신 중이다. 모든 문제를 난마처럼 결박한 원흉은 정치다. 정치가 정위치에서 정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니 얽힌 매듭을 풀지 못한다. 정치를 방치하면 윤석열 정부 끝까지 경제 위기, 안보 위기 극복은 여의치 않다. '협치'까지 바라는 건 사치일 터이다. 심정지 상태인 '정치'를 소생시키는 것으로 만(萬) 가지 일의 시작을 시작하라.
탓할 사람 많지만 꼭 한 사람만 들라면 윤석열 대통령이다. 격하게 반응할 필요 없다. 국정 최고 책임자이니 그렇다. 위기의 본질에 천착하지 않고 엉뚱한 데 헛심 쓰고 있다. 국정 우선순위는 이미 뒤죽박죽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는 '사정(司正)'. 달리 보기 힘들다. 인수위 110대 공약에는 눈 씻고 찾아도 없던 과제다. 없던 '사정'이 어디서 불쑥 튀어나왔을까. 검사 시절 남다른 우여곡절을 겪은 그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쟁여온 '억한 심경'의 표출일까.
홍준표 대구시장이 정곡을 찔렀다. "검사 곤조를 빼야 제대로 된 정치인이 된다"고 했다. 한동훈 장관을 겨냥한 것이라고도 하고, 대통령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라고도 한다. 아무려면 어떤가. 정치적으론 두 사람이 동체이니 누구를 겨냥했다고 한들 틀리지 않는다. "검사들에게는 이른바 곤조가 있다. 일본 말인데 '근성'이란 뜻이다. 곤조 없는 검사는 유능한 검사가 될 수도 없고 검사답지 않다고도 한다." 그다음 말이 주목된다. "곤조 있는 검사는 한번 물면 놓지 않고 한번 당하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반드시 갚아 준다." 조금 이해가 된다. '사정'이 불쑥 튀어나온 이유와 '정치'가 실종된 작금의 상황 그리고 윤 대통령이 '협치'란 용어를 애써 외면하는 까닭. 홍 시장은 검사 '물' 빼는 데 8년 걸렸다고 한다.
대국민담화를 한다며 이태원 참사를 '본건'이라 칭한 것은 아직 '물'을 덜 뺐다는 방증이다. 수사·감찰 다 한 후에 응당한 처분을 내리겠다는 대통령의 입장도 검사의 시각이다. 정치는 다르다. 수사는 미괄식, 정치는 두괄식이다. 사과할 상황이라면 최대한 빨리, 발가벗고 해야 한다. 토 달면 안 된다. 수사·감찰 이전에 국민의 슬픔에 공감하고 대중의 분노를 어루만지는 게 정치의 소임이다. 공소장처럼 죄목 하나하나에 입증 근거를 시시콜콜 적시하는 것은 필요치 않는다. 시기는 빠를수록, 폭은 클수록 좋다. 대중의 상상 그 이상이면 더욱 좋다. 그리한다면, 이태원의 비극은 국정 쇄신의 적기로 전환된다. 매를 잘 맞는 것도 하나의 승리 방정식이다.
60%가 넘는 국민이 윤석열 정부를 부정 평가한다. 집권 6개월의 성적표다. 임기 10%를 소진했다. 여기서 판 전체를 바꿔 새롭게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은 4년6개월에 희망을 걸자면 지금 여기(here and now), 이태원의 비극에서 새 출발의 변곡점을 찾아야 한다. 전면 개각, 대통령실 인적 쇄신이 시작이다. 검사의 언어, 검사의 시선으로는 못 한다. '곤조'부터 뺄 일이다. 적폐 청산은 짧고 굵게. 정치를 응급소생하는 일이 급선무다. 남 탓, 세계적 흐름 탓만 할 텐가. 우리 스스로 뭔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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