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신 |
27연대 6중대 1소대 1분대 14번 훈련병은 용케 한 번도 죽지 않고 자그마치 네 번 태어났다.
첫 번째는 보석 가득한 영화관에서, 두 번째는 진리의 광야 속에서, 세 번째는 수술방과 입원 병동에서 그리고 네 번째는 폭설 내리는 오후 8시 컨테이너 뒤편 너른 공터에서.
네 번째 탄생과 동시에 그는 오감에 속하지 않는 무언가로 마스크와 코 틈새에 내려앉은 눈송이를 느꼈다.
그러자
나는 살아있다.
라는 생각이 그에게 날아들었다(혹은 그렇게 말하는 자기 목소리를 들었다).
읊조리며(혹은 자기 음성에 귀 기울이며) 그는 넓적한 눈삽을 타고 이쪽저쪽으로 횡단했고, 눈을 뭉쳐 자기 등에 던졌으며, 사방으로 눈가루를 흩뿌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넋 놓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자
나는 죽지 않았다.
라는 생각이 그에게 날아들었다(혹은 그렇게 말하는 자기 목소리를 들었다).
읊조리며(혹은 자기 음성에 귀 기울이며) 그는 방으로 돌아와 문으로부터 왼쪽 두 번째 이층 침대에 올라 펜과 노트를 꺼내 들었다. 한동안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왜?
나는 살아있다. 나는 죽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그는 쓰고 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쏟아내고 있다.
이것은 그의('그리고 당신의'라는 표현까지도 이 뒤에 따라붙는 나를 그는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가장 솔직한 기록이자 그렇게 가장 유약하고 또 몹시도 부끄러운 이야기다. 그럼에도 반드시 태어나야 할 한 편의 짧은 소설이다.
대체 왜? 당최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니까 죽지 않아야 하니까
그를 살게 해 준 글과 그를 죽지 않게 해 준 글 그리고 그를 몇 번이고 태어날 수 있게 도와준 모든 것과 모든 이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그는 보답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살릴 것이다. 그는 절대로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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