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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윤 칼럼]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11번

2023-03-31

[이재윤 칼럼]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11번
논설위원

지난주 박지혜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은 건 홍복(洪福)이었다. 현존하는 가장 탁월한 악기 '과르니에리'의 소리를 접하는 호강까지 누렸다. 주커만, 장영주, 파가니니가 더없이 아꼈다는 그 명기 아닌가. 수백억 원대 고가품이며, 또 다른 명품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더 희소가치가 있다. 깊고 풍부한 소리, 활이 멈춘 뒤에도 이어진 긴 여음. 악기에 과문한 나에게도 가녀린 비브라토(vibrato) 진동이 섬세하게 느껴졌다. 박지혜는 독일 정부 소유의 '과르니에리'를 평생 사용할 권한을 얻은 세계적 연주자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11번'을 연주했다. 역동적이면서도 베토벤 특유의 비의적(비儀的)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베토벤은 생전 '10개'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남겼다. 그런데 '11번'이라니. 실상은 이렇다. 베토벤이 남기지 못한 11번을 AI가 작곡하고 박지혜가 연주했다. 박지혜가 AI 작곡 프로그램을 통해 베토벤 음악의 알고리즘을 분석하고 바이올린 소나타 10개 곡의 음률을 재조합한 결과물이 11번째 작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사후 200년, 베토벤 없이, 가장 베토벤다운, 완벽한 베토벤 풍의 음악이 완성된 것이다. 박지혜가 자문했다. "이 곡은 누구의 것인가." 베토벤인가, AI인가, 박지혜인가.

음악의 변화는 약과다. 자고 일어나면 새 AI가 뚝딱 만들어진다. 새 AI가 탄생할 때마다 새로운 세상의 문이 하나씩 열린다. 젠슨 황(엔비디아 CEO)은 "생성형 AI가 모든 산업을 재창조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예측은 상상을 초월했다. 위기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음에도 그끄저께(28일) '세계 경제가 연 7% 성장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을 했다. 느닷없지만 경이롭다. '챗GPT' 때문이란다. 하루 전 세계은행이 발표한 '2030년까지 연평균 세계성장률 2.2%…잃어버린 10년' 경고가 무색했다. 더닝 크루거 효과(지식이 적을 때 과대평가하는 인지편향)일까. 확신에 찬 기존 예언들이 AI에 의해 하나씩 무너지고 있다. 매일매일 내일이 궁금해지는 세상, 흥미진진하다.

기업은 한발 빠르다. 벌써 최고의 'AI 조련사' 구인 경쟁에 나섰다. AI가 더 나은 답을 하도록 명령어를 다루는 '프롬프트 엔지니어'의 몸값은 상한가다. 억대 연봉을 주겠다는 채용공고가 국내에도 등장했다. 챗GPT 개발사 '오픈AI' 출신들이 만든 엔스로픽은 구인에 '연봉 4억4천만원'을 베팅했다. 언론도 예외 아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접근성 엔지니어', 파이낸셜타임스의 'AI 에디터' 같은 고연봉 새 일자리가 속속 출현 중이다. 학습된 텍스트에 의존하는 'AI 기자'가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사람 기자'의 가치를 밀어내는 날이 올까. 저널리즘의 미래가 자못 궁금해진다. 언론뿐이겠는가. 'AI가 정규직 일자리 3억개를 대체한다'(골드만삭스 보고서)니, 직업 세계에 곧 쓰나미가 닥친다.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 우리는 챗GPT 활용 서비스에만 관심 가질 뿐 정작 중요한 기초 연구는 빈약하다. 이래선 빅테크들의 '가두리'에 갇혀 지식 속국(屬國)으로 전락한다. "AI 리더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란 푸틴(러 대통령)의 말은 벌써 6년 전 예언이다. "기술이 위험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올트먼('오픈AI' CEO)의 고백은 실로 소름 끼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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