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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타워] 동네책방의 가치

202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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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운 문화부장

필자는 소박한 꿈이 있다. 퇴직을 하게 되면 동네책방을 여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일부 지인들은 "돈도 안 되는 일"이라며 헛웃음 친다. 맞는 말이다. 임대료는 만만치 않고 책은 잘 팔리지 않을 게 뻔하다. 재고만 쌓이다 보면 후회할 수도 있다. 동네책방의 수명이 극히 짧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안다. 출판평론가 한미화씨가 쓴 '동네책방 생존 탐구'에서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한씨는 처음에는 '동네책방 전성기'를 쓸 요량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생존 탐구'로 바꿔야 했다. 그만큼 동네책방이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다. 그래도 인생2막은 동네책방으로 여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주변의 걱정처럼 책을 팔아 돈 벌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문화 운동을 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책을 파는 상점'이 아니라 책으로 만나고 책으로 소통하며 '책의 가치를 되새기는 공간'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요즘도 시간이 날 때마다 곳곳의 동네책방을 찾아 다니는 이유다.

최근 인상 깊은 책방 하나를 만났다. 앞산카페거리에 문을 연 '산아래 詩'라는 동네책방이다. 시집 전문 독립서점으로 대구·경북 시인들의 시집만 판다. 책방지기는 일흔 나이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다. 지역 시인의 시집이 독자를 찾지 못하고 사장되는 것이 안타까워 책방을 열었다고 한다. 산아래 시에는 여느 책방처럼 커피나 굿즈도 팔지 않는다. 손님들이 오로지 시집에만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주위에서는 커피라도 팔면 운영에 도움이 될 거라며 권유하지만 책방지기는 '시만 팔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 역시 단일장르 동네책방의 한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힘이 들더라도 '시인을 섬기는 마음'으로 운영해 갈 작정이란다. 마음 씀씀이가 참 귀해 보인다.

남다른 점은 또 있다. '산아래 詩'는 시집을 별도로 구매하지 않는다. 시인들이 직접 시집을 보내오면 판매하는 일종의 위탁형식으로 운영한다. 오픈 전부터 입소문이 나면서 벌써 1천여 권의 시집이 책장에 가득하다.

시인을 섬기는 책방지기의 마음은 수익 분배에도 느껴진다. 서점에 들어온 시집은 정가의 90% 가격에 판매하고, 그중 60%를 시인에게 돌려준다. 시집이 판매되면 그날 바로 시인들에게 돈을 보내준다. 시집 값을 받은 시인들은 너무 고맙다며 책방지기에게 연일 감사 인사를 전해온다고 한다. 시집 판매금을 받아서가 아니다. 자신의 시집이 독자에게 전해졌다는 것에 감동을 받아서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쉽게 책을 사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쾌적하고 규격화된 대형서점이 대세인 시대다. 이런 세상에, 이런 시대에, 굳이 비좁은 골목 귀퉁이에 있는 동네책방이 왜 필요할까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취향과 온기가 더해진 작은 책방도 절실한 세상이다. '책을 파는 상점'이 아닌 '시인을 섬기고 시집의 가치를 알리는 생태계'를 구축해 가는 책방이 동네에 하나쯤은 있는 것이 더욱 의미 있기 때문이다. 마을 단위 지역 사회에서 책을 통해 소통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축적하며 교환하는 공간, 그런 근사한 공동체가 곳곳에 뿌리내리는 것도 뜻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산아래 시의 인스타그램에는 책방지기의 당부가 짧은 글로 적혀있다. '요즘 한 집 건너 한 집 생기는 카페나 골목골목 들어서는 편의점보다 크고 작은 책방이 우리 주위에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당부의 글처럼 작고 아늑한 책방이 실핏줄처럼 골목 곳곳에 들어서길 기대한다. 덧붙여 산아래 시가 제대로 자리 잡기를 응원한다.백승운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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