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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사랑의 다른 이름·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삶과 사랑에 대한 두 詩人의 '사유(思惟)'

2023-06-23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들로 이뤄져

서로 다른 게 모여 살아가는 힘 얻어"

"무채색 풍경 속 얽힌 100가지 이야기

사랑은 일상의 빼곡한 쌀알 위 존재"

[크기변환]3

대구의 시인들이 동시에 산문집을 펴냈다.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해 활발한 작품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이규리 시인은 '사랑의 다른 이름'을 펴냈고,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지난해 첫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으로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은 고명재 시인은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를 내놓았다. 두 산문집 모두 삶과 사랑을 대하는 시인들의 독특한 사유가 '시를 쓰듯' 정갈하게 펼쳐진다.

사랑의_표지
이규리 지음/아침달/232쪽/1만6천원

'사랑의 다른 이름'은 이규리 시인이 25년 전부터 최근까지 써온 글을 엮은 산문집이다. 시와 삶을 대하는 온유하고 강건한 사유를 담았다. 1부에서는 시와 삶에 대한 생각과 인식을 담았고, 2부에서는 시를 쓰면서 구름처럼 일었던 고민과 모색의 흔적들을 살펴볼 수 있다. 3·4부에서는 영남일보 등에 연재한 칼럼을 중심으로 서평과 영화평 등을 함께 엮었다

이번 산문집에서 시인은 '사이'와 '여백'을 강조한다. 시인은 오래된 산문을 정리하면서 산책길의 벤치를 자주 떠올렸다고 한다. 남겨두고 비워두는 일, 그 마음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다 그것이 시의 마음이며 시의 윤리라 여겼다고 회상한다. 그러면서 벤치는 자신이 강조했던 '여백'이나 '사이'였고, 비워둔 벤치는 '불편한 시학'에 가깝다고 고백한다. 또 누군가는 그 사이를 힘과 욕망으로 채우려고 하지만, 서로의 존립을 위해서 다소 불편하더라도 그 여백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산문집에서 시인은 '사랑의 다른 이름'을 찾는다. 종이가 종이 아닌 나무, 물, 햇빛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사랑은 사랑 아닌 다른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하나가 된다는 인식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충고한다.

시에 대한 시인의 확고한 신념도 엿볼 수 있다. 시인은 시와 시인에게 무슨 힘이 있을까 반문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게 당연하다고 말한다. 시와 시인에게 힘이나 권력이 생긴다면 더 이상 시와 시인이 아닐 것이라며, 시에 힘이 없다고 한들 비관할 필요는 없다고 충고한다. 그러면서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는 질문에 "적어도 자신은 바꿀 수 있다"고 명쾌한 답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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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재 지음/난다/268쪽/1만6천원

고명재 시인의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는 한편 한편이 '시처럼' 읽히는 산문집이다. 무채색에 얽힌 100가지 이야기가 담겨있다. 색상도 채도도 없는 무채색을 통해 시인은 자신이 겪고 생각해온 사랑에 관한 사유를 펼쳐놓는다. 특히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너무너무 보고 싶어 썼던 글"이라고 고백하며 "무채 속 풍경은 사랑이라는 밥솥에서 끓어오르는 밥물과 같다"고 설명한다.

"나는 엄마가 멸치를 볶을 때 이상한 기대감에 부풀곤 했는데 그건 순전히 멸치의 아름다운 빛깔과 달궈진 팬 위에서의 우아한 궤적 때문이었다. 은빛 멸치를 팬에 올리고 볶기 시작하면 엄마의 손짓 한 번에 얘들이 튀어 올랐다. 팬 위에서 차글차글 소리를 내면서 공중으로 휙휙 떼로 날아가는데 그 모습이 자유로운 헤엄 같았다. 저렇게 떼로 움직이며 살아갔겠지. 무엇보다도 나는 멸치의 빛깔이 좋았다. 은화 같은 멸치들이 몇 분 사이에 팬 위에서 금빛으로 눌어붙었다. 그럼 좀, 덜 가난해 보이는 기분이었다. 그럼 좀, 할머니가 덜 슬퍼할 것 같아서 그럼 좀, 환기를 할까요? 명랑하게 말하고 가게 문을 활짝 열고 볕을 쬐었다. 그렇게 삼대(三代)가 멸치 냄새로 매캐한 가게에서 가슴 졸이며 서로를 훔쳐보았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햇빛, 은빛, 금빛도, 낡은 팬도, 멸치도, 물엿도 할머니 백발도 돌이켜보면 모든 게 햇살 속에 있었다. 그 모든 게 사랑의 풍경이었다."('빛' 부분)

시인은 이번 산문집에서 "사랑은 화려한 광휘가 아니라 일상의 빼곡한 쌀알 위에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늘어난 속옷처럼 얼핏 보면 남루하지만 다시 보면 우아한 우리의 부피" 같은 사랑을 이번 산문집에서 담담하게 전한다. 그러면서 "색을 열고 색을 삼키고 색을 쥔 채로 나를 키운 사람들의 마음 이야기"라고 고백한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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