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바뀐 男 프로배구 OK그룹
日 오기노 감독 마법에 '원팀'
이너서클 대신 수평적 소통
여야, 변화 대신 자리엄호만
올드보이 대신 물갈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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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경 정경부장 |
최근 남자 프로배구팀 OK금융그룹의 변신이 눈부시다. 배구만화 '하이큐'로 유명한 일본의 오기노 마사지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긴 지 두 달 만이다. 승점자판기 신세였지만 지난 13일 막을 내린 구미 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에선 우승컵까지 번쩍 들어올렸다. 무엇보다 팀 분위기 쇄신이 눈에 띈다. 경기 때 혼연일체가 돼 하고자 하는 모습이 한눈에 보였다. 한 사람이 단시간 내 조직을 확 바꿔놨다. 배구인들은 주저 없이 '언더도그(Underdog)의 반란'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선 가장 취약했던 리시브와 블로킹을 강화했다. 기본기를 확실히 다진 것이다. 배구에서 스파이크 못지않게 중요하지만 늘 간과됐던 부분이다. 소통방식은 더 신선했다. 수평적 문화가 일상 속에서 짙게 배도록 지도했다. 코치·선수들은 상하관계란 말을 잊었다. 늘 뒤섞여 어우러지는 동료일 뿐이다. '원팀 마인드'는 식사할 때도 이어졌다. '감독님'이란 호칭도 못 쓰게 했다. 대신 감독은 선수들이 경기나 연습 때 득점을 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할 때는 양손 엄지를 연신 치켜세웠다. 쉼 없이 자신감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그렇게 형성된 신뢰는 팀을 더 끈적하게 했다. 선수들은 우승 후 인터뷰를 통해 "배구가 재밌어졌다"고 했다. 무서운 말이다. 감독은 주전과 비주전 선수 구분 없이 똑같이 연습시켜 선수층을 두껍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스포츠와 국내 정치 상황을 직접 비교하기는 무리가 따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만의 '이너 서클(inner circle)' 수호에 급급한 국내 정치판은 '대수술' 말고는 답이 없어 보인다.
변화를 거부하려고 사력을 다하는 것처럼 보여서다. 선거 때만 변화를 외칠 뿐 '여의도 배지'를 달고 나면 계파를 형성해 세력 키우기에 여념이 없다. 당 지도부와 극소수 주류 의원들 간 묻지마 의사결정, 권위적·수직적 소통방식, 정치신인 양성 외면 양상을 보면 잘 드러난다. 집권당인 국민의힘은 요즘 내년 총선 최대 격전지가 될 수도권에서 인물난이 극심하다며 머리를 싸매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자살골을 쉴 새 없이 넣지만 여론조사에선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해 불안한 것이다. 쓸 만한 인재는 지난 지방선거 때 대부분 등용이 됐다고 변명한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수권 정당'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그만큼 후진양성을 등한시했다고 실토하는 걸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자리보전을 위해 힘 있는 윗선만 뚫어져라 쳐다 본 결과다. 격전지 승리를 위해 보수 종가 'TK'엔 대규모 낙하산 부대를 보내려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양비론을 탐탁지 않게 여길 수 있지만 민주당도 하나도 나을 게 없다. 이른바 '팬덤정치'의 단맛에 매몰돼 헤어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그 프레임에 가둬놓으려는 게 아니냐는 착각이 들 정도다. 정부와 여당 견제용이라곤 하지만 국회 의석의 수적 우세를 가장 나쁜 시나리오로만 활용하는 게 안타깝다. 우기기·합리화를 위한 기교 부리기에 골몰하다 보니 포용·소통이란 말은 잊은 듯하다. 여야 모두 당내 분위기를 추스르며 새로운 진용을 짜는 것 외에는 돌파구가 없다. 틈만 보이면 언제든 출격하려는 '올드보이'의 등판은 정치 불신만 가중시킬 뿐이다. 당 지도부 스스로 쇄신의 기운을 북돋우며 참신한 정치신인 발굴에 매진할 때다. 낡은 정치판 코트를 찢어놓을 수 있는 외부의 강력한 스파이크 한방이 절실한 요즘이다.
최수경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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