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곶 청보리·유채꽃 물결, 형산강변 화려한 장미…봄이 그린 수채화
포항 호미곶 경관농업단지에 유채가 한창일 즈음 뒤편의 구릉진 땅 구만리 들판은 전부 청보리다. '낮은 논에도, 높은 밭에도, 산등성이 위에도 보리다. 푸른 보리다. 푸른 봄이다.' (흑구 한세광 '보리' 中) |
새해의 아침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호미곶. 호미곶의 봄은 태양 빛을 닮은 샛노란 유채꽃으로 시작된다. 언 땅속에서 겨울을 이겨낸 꽃들은 싱그럽고 선명한 얼굴로 분투의 안녕을 전한다. 그러한 동안 노란 물결 너머 구릉진 땅에는 청보리가 거대하게 일렁이고, 바다로 향하는 형산강 변에는 튤립과 장미가 또 떼 지어 피어난다. 떼 지어 피어나는 것들은 어딘가 과격한 데가 있다. 황홀한 과격이다.
대보리 경관 농업단지 유채꽃 활짝
구만리 들판 청보리밭 초록의 향연
형산강 둔치 장미원 꽃망울 터뜨려
뱃머리마을, 야생화로 꽃동산 이뤄
◆푸른 바다에 일렁이는 노란 파도, 유채꽃
호미곶 대보리 들판에 유채꽃이 가없다. 푸른 바다에 일렁이는 노란 파도 같다. 물결을 가르는 수 갈래 밭두렁은 먼바다를 향해 오솔길로 열린다. 원래 이곳은 논이었다. 해풍이 심해 쌀농사가 힘들어지자 2018년부터 경관 작물 재배가 시작됐다. 대보리의 들은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물든다. 4~5월에는 노란 유채꽃과 청, 흑, 자색의 알록달록한 유색 보리의 물결이 끝없다. 6~10월은 하얀 메밀꽃과 해바라기가 무더기로 피어난다.
저마다 꽃을 피우는 시기에 맞춰 축제도 열린다. 관광객을 위한 원두막과 포토존, 산책로, 벤치 등도 조성되어 있고 야간조명도 설치되어 있다. 애초 10만평이었던 호미곶 경관농업단지는 15만평으로 늘어났다. 축구장 70개 크기에 달한다. 관광객들의 호응은 물론 메밀과 보리 등의 수확량과 품질 향상으로 농업인 소득 증대에도 큰 도움이 됐다. 유색 보리는 수제 로컬맥주 개발에 쓰인다. 메밀은 국수 가루, 묵 가루 등으로 가공된다. 포항시는 유채꽃 단지를 지나는 시티투어 버스를 운영하고 농특산물 판매장도 건립해 지원에 나서고 있다.
포항 대보리 들판의 유채꽃. 15만평, 축구장 70개 크기에 달한다. 4~5월 대보리의 들에는 노란 유채꽃과 알록달록한 유색 보리의 물결이 끝없다. |
호미곶 경관농업단지에 유채가 한창일 즈음 뒤편의 구릉진 땅 구만리 들판은 하늘과 바다 사이가 전부 청보리다. 초록의 지평선과 푸른 수평선이 아예 하나다. 바닷바람에 물결치는 맥랑(麥浪)은 멀미마냥 아찔하다. 구만리에는 '흑구 문학관'이 있다. 1960~70년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수필 '보리'의 작가 흑구(黑鷗) 한세광(韓世光)의 문학관이다.
'춥고 어두운 겨울이 오랜 것은 아니었다. 어느덧 남향 언덕 위에 누렇던 잔디가 파아란 속잎을 날리고, 들판마다 민들레가 웃음을 웃을 때면, 너, 보리는 논과 밭과 산등성이에까지, 이미 푸른 바다의 물결로써 온 누리를 뒤덮는다. 낮은 논에도, 높은 밭에도, 산등성이 위에도 보리다. 푸른 보리다. 푸른 봄이다.' (1955 '보리' 中)
그는 보리가 푸르게 일렁이는 봄날이면 시인 이육사와 아동문학가 박이득과 여러 글 쓰는 친우들과 함께 구만리 보리밭으로 갔다고 한다. 지금도 구만리는 푸른 보리, 푸른 봄이다. 5월 중순 보리 이삭이 황금색을 띠기 시작하면 이곳에서는 '보리누름문학제'가 열린다. 구만리 바닷가에는 육사의 청포도 시비도 있다.
호미곶에는 새천년기념관과 한국 최초의 국립등대박물관, 세계등대유산으로 지정된 호미곶 등대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핫플로 이름난 카페도 많고 대보항 주변의 노포들과 새천년기념관 뒤편의 식당들, 유채꽃밭 옆에 늘어서 있는 포장마차 거리도 유명하다. 펜션과 캠핑장, 풀빌라 등 숙소도 다양하다.
2021 경북 건축문화상 대상을 차지한 '케이프라운지'는 오션 뷰의 대형 카페이자 풀빌라다. 감각적이고 세련된 건물로 모든 공간이 인증샷 스폿으로 꼽히며 수영장 너머 바다를 마주하는 최고의 '물멍' 장소로도 사랑받고 있다. 또한 구만리에는 넓은 창문에 방마다 테라스가 딸린 '호미곶 펜션'과 애견 동반이 가능한 '유니의 바다' 풀빌라, 루프톱 수영장과 개별 수영장이 있는 '케렌시아' 등이 있다.
대보리의 '비다펠리즈'도 실내 월풀과 루프톱 수영장이 있는 힐링 숙소다. 강사리의 '하루' 풀빌라는 애견동반이 가능한 포항 감성 숙소로 개인 풀장에서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펫글램핑' 역시 애견동반이 가능한 숙소로 전 객실이 오션 뷰인 이색적인 독채형 돔 하우스다. 이 외에도 펜션과 캠핑장을 함께 운영하는 바닷가의 '썬빌리지', 실내에서도 멋있는 일출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다모디' 풀빌라 펜션 등이 있다. 호미곶의 일출을 가진 숙소에서의 하룻밤은 특별하다.
포항 형산강 둔치에는 장미원이 있다. 장미는 포항의 시화다. 포항시는 2017년부터 형산강 장미원과 영일대 장미원을 비롯해 주요 가로변과 녹지대마다 장미를 심어왔다. |
◆봄에는 야생화, 가을엔 국화
호미곶의 유채가 한창일 때 형산강 변의 뱃머리마을 주변으로는 목마가렛, 수레국화, 양귀비, 장구채 등 야생화들이 꽃동산을 이룬다. 가을날이면 뱃머리마을 꽃밭은 국화로 가득 찬다. 보라색, 빨간색, 노란색, 분홍색, 하얀색 등 온갖 색상의 국화와 꽃이 큰 대국과 꽃이 자그마한 소국, 줄기가 곧은 것과 멋스럽게 늘어지는 것 등 온갖 국화를 만날 수 있다. 국화연구회와 국화 분재 교육생이 선보이는 분재 국화와 작품 국화 등도 접할 수 있다.
뱃머리마을은 포항시 남구 상대동에 있는 마을이다. 상대동은 1973년에 상도동(上島洞)과 대도동(大島洞)을 통합하여 만들어진 동이다. 현재의 죽도교(竹島橋)가 세워지기 전에 형산강 입구에는 대도(大島), 상도(上島), 해도(海島), 송도(松島), 죽도(竹島) 등 5개의 섬마을이 있었고 이 지역을 통틀어 '섬안'이라고 했다. 가장 안쪽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 상도동인데 그 남서쪽에 형산강이 갈라져 흐르던 옛 강이 있었다. 조선 3대 시장 중 하나였던 연일읍의 부조(扶助) 시장으로 중국과 일본 등지의 배가 형산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시절, 배들은 상도의 옛 강에 뱃머리를 대고 쉬어가곤 했다. 그래서 뱃머리 마을이다. 1998년경 뱃머리마을에 하수종말처리장이 들어섰다. 포항시는 기피시설로 여겨지던 하수처리장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2012년 공원을 만들고 꽃을 심었다. 꽃이 피면 축제를 연다. 하트 벤치, 날개 벤치 등 포토존도 여럿이고 해가 지면 LED조명이 켜져 야간 관람도 가능하다. 뱃머리마을의 꽃밭은 1만6천210㎡(4천900평)에 달한다.
◆봄꽃 지면 장미꽃 만개할 때
호미곶에 유채꽃이 피면 형산강 둔치의 장미원에서는 장미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덩굴장미로 뒤덮인 아치형 터널을 지나면 현란한 장미 세상이다. 장미원에는 블루문, 쟈댕 드 프랑스, 서머 레이디, 핑크피스, 유메, 크리스토머콜롬보, 골든하트, 마리아칼라스, 프린세스 모나코 등 30여 종의 장미가 식재되어 있다. 장미들 사이로 산책로가 나 있고 곳곳에 포토존이 설치되어 있다. 장미의 품종에 따라 개화 시기가 다르기때문에 장미원은 계절이 변할 때마다 새롭게 아름답고, 사실상 겨울철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기에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형산강 장미원은 포항시 남구 형산강 변의 연일대교에서 효자 수문 일원에 위치해 있다. 면적은 1천712㎡이며 더 확대할 예정이라 한다. 여름날 제방 자전거 길에는 금계국이 만발한다. 가을에는 핑크 뮬리와 갈대가 더해져 형산강 변에는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쉴 틈 없는 꽃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장미는 포항의 시화다. 포항시는 천만송이 장미도시 조성을 위해 2017년부터 형산강 장미원과 영일대 장미원을 비롯해 주요 가로변과 녹지대마다 각양각색의 장미를 심어왔다. 장미는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가 거품 속에서 태어날 때 함께 피어난 꽃이라고 한다. 그녀는 땅을 아름답게 하고자 그리스의 로즈(Rose) 섬에 꽃씨를 뿌렸고, 그 아름다움이 아프로디테를 닮아 장미는 사랑의 대명사가 되었다. 결국 땅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연 핑크빛 덩굴장미가 상앗빛 시계탑을 안고 오른다. 꽃 보는 눈 속에 사랑이 가득하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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