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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 즐거운 지옥에서의 나날들

2024-06-20

인형뽑기 10년 경력자
절약 결심 번번이 실패
직장 그만두고도 매일 출근
소녀들앞서 뽑기 실력 발휘
현실 도피의 끝없는 늪

[더 나은 세상] 즐거운 지옥에서의 나날들
우광훈 소설가

직장을 그만둬서 그런지 요즘 들어 인형뽑기방에 들르는 횟수가 꽤 많이 늘었다. 어른이 무슨 인형 뽑기냐고 물으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난 올해로 뽑기 경력 10년 차인 자칭 뽑기맨이다. 그렇다고 해서 경산 BMW님이나 황금동 뭉이님처럼 뽑기 실력이 월등하거나 자신의 뽑기방을 운영하는 프로뽑기맨은 아니고, 그저 뽑기를 취미로 즐기는 아마추어 동호회원 정도라고나 할까?

그래 좀 더 솔직해지자. 사실 난 뽑기라는 행위 자체보다는 뽑기기계 속에 들어있는 인형에 더 큰 매력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뽑기방에 들어설 때면 매번 유리 벽 속에 갇혀 있는 인형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아저씨, 제발 절 구해주세요….'

백수 상태라 용돈을 아껴야 한다고 매번 다짐하지만 카카오 프렌즈, 포켓몬, 산리오, 원피스와 같은 예쁜 인형들을 만나면 그 다짐은 뜨거운 햇살 아래 놓인 아이스크림처럼 단숨에 녹아버린다. 그렇게 난 기계 앞으로 다가가 인서트 코인(insert coin)하고, 조이스틱을 움직인 다음 하강 버튼을 누른다. 과연, 집게발에 매달린 액션가면 짱구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두근두근, 심장은 마구 뛰고….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결코 내가 꿈꾸지 않았던 하루하루의 연속이다.(사실 난 직장을 그만두면 매일 음악을 벗 삼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그런 고상한 삶을 꿈꿨다.)

그러던 6월의 어느 날, 난 인형뽑기방 안에서 교복 차림의 귀여운 소녀들과 조우한다. 소녀들은 참새처럼 재잘대며 뽑기기계 앞을 서성이더니 드디어 뽑고 싶은 인형을 발견한 듯 돈을 집어넣는다. 예상했던 것처럼 계속되는 실패와 탄식의 소리…. 그렇다면 이제 이 정의의 사도가 나서야 할 차례인가?

"얘들아, 아저씨가 한번 해 볼까? 물론 뽑으면 너희들 줄게." 그러자 마이멜로디 에코백을 든 소녀가 답한다. "좋아요! 아저씨 왠지 잘 뽑으실 것 같아요."

소녀의 칭찬에 한껏 고무된 뽑기맨은 뚫어지게 기계 안을 응시한다. '뒤집기'로 작전을 세운 뽑기맨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돈을 투입한다. 조이스틱을 이용해 집게발을 이동시킨 다음 하강버튼 클릭! 그렇게 집게발에 매달린 인형은 한 바퀴 데굴거리더니 출구통 안으로 곧장 떨어진다. 순간, 쏟아지는 박수와 환호소리!

"봤지?" 뽑기맨은 애써 무덤덤한 표정으로 한마디 덧붙인다. "그런데 얘들아, 뽑기 너무 많이 하면 안 돼. 중독되면 큰일 나."

그러자 소녀가 기다렸다는 듯 답한다.

"알아요. 이거 사기라는 거."

사기? 순간, 소녀들의 모습은 스타벅스 건물 뒤편으로 사라지고, 어디선가로부터 또다시 환청이 들려온다. 알아요, 이거 돈 먹는 하마라는 거. 아저씨처럼 중독이 되어 매일 뽑기방에 들르지 않으면 불안해진다는 거. 집 안은 인형들로 넘쳐나고 결국 아내의 잔소리가 일상이 될 거라는 거. 중고거래 사이트에 매물로 올려보지만 이젠 흔해 빠져 팔리지 않는다는 거…. 소녀의 목소리인지, 인형의 목소리인지, 나의 목소리인지, 난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러자 문득 궁금해진다. 난 언제쯤 이 기묘하리만큼 출구 없는 전쟁에서 헤어날 수 있을까? 인생이란 결국 이런 부조리한 것들과의 끊임없는 사투 같은 것이 아닐까? 사소한, 아니 사소하지 않은.
우광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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