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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천일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나날들, '퍼펙트 데이즈'

2024-07-05

영상 2배속으로 보는 이들
지루할 수도 있는 영화지만
일상에서 권태느끼는 사람
무미건조한 하루에 소소한
기쁨과 감사 발견할 수 있어

[윤성은의 천일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나날들, 퍼펙트 데이즈
윤성은 영화평론가

빔 벤더스 감독이 귀환했다. 그는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를 외쳤던 1970년대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로서, '파리, 텍사스'(1984), '베를린 천사의 시'(1987) 등 명작들을 남기면서 전 세계 시네필들에게 알려졌다. 젊은 시절부터 기존 영화계의 안일함과 식상한 영화들에서 탈피해보겠다는 구호를 앞세운 감독이니만큼 그의 영화 언어들은 다분히 상업성에서 벗어나 있다. 그가 만든 아티스트 3부작, 즉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1999), '피나 3D'(2011),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2014) 또한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형식을 확장시킨 수작들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영화 속에는 평범한 인물도, 단조로운 풍경도, 지루한 이야기도 없다. 사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남다른 통찰력이 영화를 힘있게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그가 일본에서 만든 '퍼펙트 데이즈'(2024)는 '우나기'(1999), '쉘 위 댄스'(2000) 등으로 잘 알려진 야쿠쇼 코지가 주연이자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본래 도쿄 시부야구의 17개 공공화장실을 안도 타다오, 반 시게루, 구마 겐고 등 세계정상급 건축가 및 디자이너가 리노베이션하는 '더 도쿄 토일렛(The Tokyo Toilet)'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다. 성별과 연령, 장애 여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공화장실을 만들고자 기획된 이 사업을 기념하기 위해 관계자들은 빔 벤더스에게 단편 영화 제작을 의뢰했다가 장편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역제안을 받는다. 시나리오에 3주, 프로덕션에 17일이라는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던 이 영화는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라 야쿠쇼 코지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이 되었다.

영화는 도쿄의 청소부,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의 하루하루를 따라간다. 2시간 남짓한 영화의 도입부에서 카메라는 그가 눈 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의 하루를 따라가는데, 여기에 걸린 러닝타임은 약 25분이다. 다음 날도 그의 하루는 전날과 거의 비슷하게 흘러간다. 히라야마는 새벽에 일어나 화초를 돌보는 등 소소한 집안일을 한 후, 작은 짐차를 타고 출근해 공공화장실을 청소하고, 일이 끝나면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단골 식당에 가서 술을 한 잔 마신다. 그리고 헌책방에서 산 책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다음 날도 별다른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빔 벤더스는 히라야마가 출근할 때 선택하는 음악처럼, 그 어떤 하루도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고 말한다. 히라야마는 매일 다른 시민들과 마주치고, 식당에서도 매일 조금씩 다른 일이 일어나며, 자기 전 책을 읽을 때도 다른 자세를 취한다. 어떤 날은 데이트 할 돈이 없다는 어린 동료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또 다른 날에는 불쑥 조카가 찾아와 그를 안아주기도 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단골 술집 주인의 전 남편과 우연히 대화를 나누며 그림자밟기 놀이까지 하게 된 일은 이 영화 전체에서 매우 큰 사건이다. 그러나 그 사건조차 히라야마의 일상을 조금도 바꾸어 놓지는 못할 것임을 관객들은 알고 있다.

히라야마의 하루에 교훈이나 설교 같은 것은 없다. 그저 그 평범한 일과 속에서 순간순간 행복한 미소를 짓는 히라야마의 얼굴이 마음을 평안하게 할 뿐이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니 모든 영상을 2배속으로 보는 것이 익숙한 이들에게는 지루할 수밖에 없겠지만 일상에서 권태를 느끼는 사람들, 무미건조한 하루에서 소소한 기쁨과 감사를 발견하고픈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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