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역군 역사 품은 곳, 이젠 시민에게 초록빛 휴식 선물
포항 철길 숲의 영문 명칭은 '포레일(Forail)'이다. 숲을 뜻하는 'Forest'와 기찻길을 뜻하는 'Rail'을 합했다. 효자역에서 옛 포항역을 거쳐 서산터널까지 어울누리길, 활력의 길, 여유가 있는 띠앗길, 추억의 길 등이 4.3㎞ 이어진다. |
도로를 따라, 해변을 따라, 오래된 언덕으로, 동네의 모퉁이로 숲과 정원이 이어진다. 도시 숲, 상생 숲길, 둘레길, 자연마당, 맨발로, 그린로, 에코로, 근린공원, 텃밭 정원 등 이름이 무엇이든 그곳에는 사람과 자연의 상생이라는 지향성이 있다. 포항시가 2016년부터 지금까지 새롭게 조성한 녹지공간은 축구장 95개 면적인 총 67만㎡에 달한다. 이는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녹색 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해 포항시가 긴 호흡으로 이뤄나가고 있는 '그린웨이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그린웨이, 푸른 길은 사람에게 밀착된 공기, 우리의 자유인 그 공기를 일상의 사치로, 생의 풍요로움으로 누리는 길이다. 올해의 핵심 목표 역시 '보행 중심의 탄소 중립 도시'를 위한 '걷기 좋은 길'을 만드는 데 있다.
통근열차 다니던 길이 변한 철길숲
꺼지지 않는 불꽃은 공원의 상징 돼
폭신한 솔가지 가득한 솔밭 도시숲
해변 모래밭 어울려 맨발 걷기 성지
포스코와 함께하는 호수·환호 공원
녹지와 예술 어울려 동화 같은 위로
포항 송도 솔밭 도시 숲은 맨발 걷기의 성지다. 숲속에는 산책로, 체육시설과 편의시설, 유아 놀이 숲, 물빛 누리 공원 등 다양한 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
◆녹색 네트워크의 대동맥, 철길 숲
철길이 있는 긴 산책로다. 오직 사람이 걷고 자전거가 달리는 길이다. 꽃들이 피어나고 나무들이 그늘을 넓히며 멋진 조형물들이 성큼 다가오고 분수가 시원하게 하늘과 땅을 적신다. 폭염이나 미세먼지가 극성인 날에는 차가운 안개가 뿜어져 나와 대기와 대지를 촉촉이 다독인다. 이 길은 1918년 개통된 동해남부선이었다. 이 길을 따라 포항제철소 산업 역군들의 통근 열차가 달렸다. 해병대 입대 장병은 물론 보릿고개 시절 해외에서 지원한 식량을 실어오는 길이기도 했다. 그 시간이 100여 년이다. 2015년 4월, 포항역은 고속철도(KTX) 신설과 함께 북구로 이전했다. 이후 2018년 철길은 숲길로 변신했다. 철길 숲이다.
철길 숲의 영문 명칭은 '포레일(Forail)'이다. 숲을 뜻하는 'Forest'와 기찻길을 뜻하는 'Rail'을 합했다. 효자역에서 옛 포항역을 거쳐 서산터널까지 어울누리길, 활력의 길, 여유가 있는 띠앗길, 추억의 길 등이 4.3㎞ 이어진다. 철길 따라 단풍나무, 화살나무, 배롱나무, 솔송나무, 돈나무, 팔손이나무, 수국, 잣나무, 꽝꽝나무, 영산홍, 느티나무, 대왕참나무, 메타세쿼이아, 이팝나무, 단풍나무, 사계 장미 등 100여 종, 30만여 그루에 이르는 다양한 나무와 꽃이 심어있다. 곳곳에 옛 신호기와 건널목 차단기, 철도 제어 관련 박스 등이 남아 있고 역무원이 근무하던 건널목 신호장은 안내센터와 화장실이 되었다. 철길 숲은 그린웨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이다. 도심 전역을 잇는 녹색 네트워크의 대동맥이자 허파이고 동시에 철도 역사 100년이 녹아 있는 문화공간이다. 도심과 자연, 그리고 사람을 잇는 포항 철길 숲의 녹색 영역은 계속 넓어지고 있다. 현재 북쪽으로는 우현동 도시 숲과 연결되고 남쪽으로는 형산강 너머 연일읍 중명리까지 이어진다. 총연장 9.3㎞로 7개 동에 걸쳐 있으며 10분 내 도보 거리에 거주하는 주민만 21만명, 포항 전체 시민의 약 40%에 달한다.
철길 숲의 '기억의 숲' 안에는 불꽃이 타고 있는 '불의 정원'이 있다. 환영인가 혹 가짜인가 눈을 가늘게 뜰 필요 없다. 진짜 불이다. 철길 숲 조성사업이 진행되던 2017년 3월, 지하수 관정을 개발하던 중 폭발과 함께 불길이 하늘로 치솟았다. 전문기관의 조사 결과 메탄 함량이 99% 이상인 천연가스였지만 아쉽게도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정됐다. 그러나 불꽃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에도 활활 타올랐고 일주일, 한 달, 일 년, 그렇게 불꽃은 오늘까지 지속하고 있다. 도심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는 철길 숲속에서 제철소의 용광로처럼 꺼지지 않는 불꽃은 철강 도시 포항의 이미지와 합쳐져 도시와 공원의 상징이 되었다.
포항 영일대 호수공원은 포항제철소 건설 초기인 1969년 귀빈 숙소로 문을 연 영일대 호텔 앞에 자리한다. |
◆맨발 걷기 명소, 송도 솔밭 도시 숲
소나무가 많아서 '송도'다. 송도의 솔숲은 넓다. 전체 면적이 32㏊(31만7355㎡)나 되고 해송 등의 수목이 3만4551본 식재되어 있다. 방풍림의 역사 100여 년에 이어 2018년 시민들을 위한 도시 숲으로 조성한 결과다. 숲속에는 산책로와 함께 다양한 체육시설과 편의시설, 유아 놀이 숲, 물빛 누리 공원 등 다양한 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솔개천이 흐르고 바닥 분수가 솟아오르고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보행자 중심의 테마 거리와 통하고 솔파랑 벽화마을의 '어린 시절 추억회상 길'과도 이어지며 송도해변의 모래밭과는 한몸이라 할 수 있다.
폭신한 솔가지가 쌓인 흙길을 사람들이 맨발로 걷는다. 긴 송도 해변을 걷던 이가 모래를 툭툭 털어내며 솔밭으로 쓱 들어서기도 하고 솔밭을 걷던 이가 덥석덥석 모래밭으로 나서기도 한다. 동글동글한 강돌과 화강석으로 올록볼록 리드미컬하게 이어지는 '치매 예방 다짐길'을 걸으며 으악 으악 비명으로 웃는다. 다양한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는 친환경 천연광물인 일라이트 체험장도 있고 콩알 같은 황토 볼 체험장도 있고 발 씻는 곳과 신발장도 있다. 송도 솔밭은 맨발 걷기의 성지로 주목받고 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2회 연속 '전국 맨발 걷기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숲속에 있는 빨강 건물은 대한민국 맨발학교 포항지회다. 일요일마다 맨발 걷기 수업이 열린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꼬마들은 황토색으로 물든 그 작은 발로 숲길을 아장아장 걷는다. 쪼그려 앉아 곤충도 보고, 황토볼도 모으고 새털도 줍는다. 솔숲 일부 구간에 깔려 있던 야자 매트 길은 곧 황톳길로 변모할 예정이다.
근래 맨발 걷기에 대한 관심이 높다. 맨발 운동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고, 전국의 자치단체가 맨발 길을 확보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포항시는 2020년부터 '맨발로 30선'으로 선정하고 관리해 오고 있다. '맨발로'는 생활권과 가까운 도시 숲이나 수변 공간에 조성된 맨발 걷기가 가능한 포항의 산책로다. 송도 솔밭을 필두로 해도 도시 숲, 인덕산 자연마당, 흥해 북천수, 용한리 해변, 형산강 둔치, 조박지 둘레길 등 수변공간과 도시 숲, 녹지대, 근린공원 등 30개소 총연장 44.2㎞에 달한다. 어디서든 커다란 발바닥 모양의 '맨발로'라는 표지판을 만난다면 신발을 훌훌 벗고 맨발로 지구를 어루만져 볼 일이다.
◆포스코와 함께하는 영일대 호수공원과 환호공원
영일대 호수공원과 환호공원은 포항의 산업화시대 초창기부터 생태 도시로의 전환을 꾀하기 시작하는 과도기에 걸쳐 조성되고 사려 깊은 속도로 가꾸어진 공원이다. 영일대 호수공원은 포항제철소 건설 초기인 1969년 귀빈 숙소로 문을 연 영일대 호텔 앞에 자리한다. 영일대 호수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거위와 비단잉어가 노니는 아름다운 연못과 작은 폭포, 주변을 둘러싼 온갖 수목들의 향연에 동화 같은 위로를 느끼게 된다. 이른 봄 매화로 시작해 버드나무의 연두로 흐드러졌다가 벚나무와 수양벚나무, 서부 해당화로 절정을 빚고, 다시 영산홍에서 노란 창포와 자주색의 황금조팝 나무꽃, 연노랑의 돈나무 꽃, 화려한 수국, 적자색의 병꽃나무로 계절이 이어지는 사이 포항제철 착공식에 참석한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오엽송과 낙우송, 홍가시나무, 칠엽수, 히말라야시더, 벽오동나무, 은사시나무, 메타세쿼이아, 향나무, 소나무, 단풍나무 등이 저마다의 풍채와 색으로 환상적인 풍경을 완성한다.
포항 환호공원은 포항시와 포스코가 손을 잡고 1996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2001년에 완공한 포항 최초의 대규모 공원이다. |
영일대 호수공원 산책길은 '청송대 숲길'과 이어진다. 청송대는 포스코의 귀빈들이 묵는 별장이자 포항 제철 건립 당시 공사 현장을 내려다보던 전망대로 영일대 호수공원 옆의 나지막한 숲 마루에 자리하고 있다. 청송대 숲길은 원래 1970년대 포항제철을 건설하면서 사원들의 주거지역 주변 영일만이 내려다보이는 야산에 힘들이지 않고 거닐 수 있는 산책로로 만들어졌다. 그러다 2012년에 목재 데크 로드 760m, 황톳길 440m, 마사토 길 300m등 산책로를 조성하고 굴거리나무, 히말라야시다, 광나무, 팥배나무, 만첩개벚꽃, 은목서, 삼나무, 대나무, 스트로브잣나무, 조팝나무, 산수유 등 다양한 나무를 심어 '청송대 감사 나눔 둘레길'이라 이름 붙였다. 아름다운 호수공원에서 만첩으로 피어나는 겹벚꽃 길과 대나무 숲길을 지나 청송대에 다다랐다가 테니스장 옆으로 길게 늘어선 히말라야시더 길을 따라 호수공원으로 돌아오는 총 1.5㎞의 길이다.
환호공원은 포항시와 포스코가 손을 잡고 1996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2001년에 완공한 포항 최초의 대규모 공원이다. 전체 51만4천800㎡(15만6천여 평)에 약 70%가 녹지다. 이 넓고 푸르른 공간에 시립미술관이 들어서 있고 야생화 동산, 중앙공원, 물의 공원, 해변공원, 전통놀이공원, 체육공원, 어린이공원 등의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길은 두 가지다. 물의 공원 방향으로 가면 숲의 향기 가득한 오솔길이다. 미술관 방향으로 가면 포장도로를 따라 멋진 설치 작품들을 만날 수 있고 특히 봄이면 도로를 따라 벚꽃 터널이 전망대와 스페이스워크까지 이어진다. 영일대 호수공원과 환호공원은 포항의 봄 벚꽃 명소로 이름난 걷기 좋은 공원이며 철강 도시의 역사를 담고 있는 감응의 공간이다. 거기에는 어떤 고요함과 만족감의 원리가 모든 열정을 후광으로 감싸는 감동이 있다.
글=류혜숙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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