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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양반의 초상, 막막한 생계·속 썩이는 아들…1700통 편지로 엿보는 조선 양반의 삶

2024-08-23

유학자 조병덕이 남긴 서간문 모음집

[신간] 양반의 초상, 막막한 생계·속 썩이는 아들…1700통 편지로 엿보는 조선 양반의 삶
하영휘 지음/궁리/344쪽/2만5천원

편지는 일기만큼 내밀한 글이다. 체면과 명분 빼면 시체라 할 수 있는 그 옛날 조선시대 양반 역시 편지를 쓰며 민낯을 드러냈다. 이 책은 19세기 조선 후기 유학자 조병덕이 가족에게 남긴 편지 모음집이다.

시문집 '숙제집'으로 잘 알려진 조병덕은 본래 권세를 누리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때부터 쭉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 몰락한 처지였다. 그의 편지는 지금까지 발견된 조선시대 개인의 서간문으로는 최대 분량으로, 1천700여 통에 달한다. 주요 수신자는 사고를 치고 다니는 둘째 아들 조장희로, 양을 계산했을 때 6일에 한 번꼴로 보냈다.

편지 속에는 고매하고 점잖은 양반의 모습 대신, 민초와 똑같은 고민을 하는 한 인간이 담겨 있다. 막막한 생계와 빚 걱정, 속 썩이는 아들에 대한 꾸지람, 만성 신경성 설사로 고생하는 처지, 위계질서가 무너진 사회 등에 대한 한탄 등 조병덕은 붓끝에 개인사와 시대사를 허심탄회하게 쏟는다. 그래서인지 조병덕은 종종 편지 끝에 "절대 남에게 보이지 말고 불태우거나 꼬아서 끈으로 만들라"고 당부하지만, 조장희는 아버지의 편지를 고이고이 간직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양반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조병덕은 편지에서 세변(世變·세상의 변괴)이라는 단어를 거듭 언급한다. 안으로는 크게 홍경래의 난과 진주민란이 일어나고 밖에서는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입한 병인양요가 발발하면서, 19세기 조선은 흔들렸다. 조병덕은 "나라와 사람이 제구실을 못하는 것은 모두 삼강오상의 도가 쇠퇴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지금의 충남 보령시에 해당하는 '삼계리'에 은거하면서 농사짓고 먹고사는 걸 고민하면서도 학문을 놓지 않는 유학자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저자 하영휘는 고문서를 통해 조선시대를 연구하는 인문학자로, 국내 고문서 및 초서 연구의 대가로 꼽힌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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