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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칼럼] 의사 집안, 의사 없는 집안

2024-09-23

의정 갈등, 질수 없는 의사집단
5조원 투자, 이미 많은 걸 얻어
한국의술, 세계적 수준에 올라
의사만큼 존중받는 집단 없어
권위와 존경, 대화로 지켜야

[박재일 칼럼] 의사 집안, 의사 없는 집안
논설실장

지난 추석연휴 다들 긴장했을 것이다. 전(煎)을 굽는다던가 성묘길 정체도 스트레스였겠지만, 내심 내 가족 내 부모가 행여 아프면 어떡하지 라는 긴장이 컸다. 장모가 당뇨 쇼크로 쓰러졌다는 지인 전화를 받았다. 대학병원 응급실로 들이밀고 가라고 하니, '응급실 이용을 자제하라고 정부가 엄포를 놓았는데'라는 대꾸가 들려왔다. 그러면서 '집안에 의사가 없어 물어볼 데도 없고' 한다.

추석맞이로 한 잔 하던 선배가 '의사들이 질 이유가 없다'고 조목조목 설명한다. 평생 살면서 판검사 만날 일은 잘 없지만, 의사는 아프면 시도 때도 없이 만나야 한다는 다 아는 얘기인데 새삼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긴 우리가 법을 위반할 미래를 대비해 변호사 비용으로 적금이나 보험을 들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운전자보험의 형사비용 정도다. 의료는 그게 아니다. 암보험, 치매보험, 간병인 보험에다 실손의료보험까지 숱한 보장으로 방어막을 친다. 선배는 '의사들은 벌써 많은 걸 얻었다'고 부연했다. 의과대 교육인프라 확충, 의대 교수 증원, 전공의 수련체계 개선, 필수의료 연구에 5조원을 투입하겠다고 정부가 발표했다. 전공의들? 그들은 의사면허 받은 이들이라 답답할 게 없고, 정부와의 장기전에 돌입할 경제적 환경이 있다고도 했다.

사실 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을 2천명 늘려서 5천여 명 뽑는다고 했을 때 다들 긴가민가 했을 것이다. 2천명? 그게 협상을 염두에 둔 수치이지 돌에 새겨진 숫자는 아닌 것으로 짐작했다. 밀고 당기기를 거치면 대략 500~1천명 선에서 안착하겠지, 문재인 정부는 500 명 꺼냈다가 본전도 못찾고 손들었는데 그 정도면 대성공 아닐까 여겼다. 내년 입시 1천500명 증원이 결정되자 윤 대통령은 "의료 개혁이 마무리됐다"고 스스로 승리를 선언했지만, 사태는 더 커지고 있는 중이다. 정부의 협상 전략이 빈약했다는 것만 증명됐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제안한 여·야·의·정 협의체도 난항이다. 의사단체는 의대증원 백지화가 없다면 마주할 수 없다고 버틴다.

현대 의학기술은 냉정하게 보면 서양의 산물이다. 세균과 바이러스를 발견했고, 인류 생존을 위협하던 전염병을 차단했다. 소아마비를 알약 하나로 제거하고, 마취제를 발명해 이전에는 꿈도 못꾼 대수술을 가능케 했다. 제국주의 시대, 선교사와 함께 의사들이 동진(東進)한 배경은 서양문명의 충격을 극대화할 무기가 의술이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인요한 의원의 가계(家系)가 '의사· 선교사 집안'이었던 사실을 상기해보면 짐작된다. 서양 의술을 받은 한국의 종합병원들이 세계 10위권 의술 목록에 줄줄이 이름을 올리는 것은 그래서 경이롭다. 우리가 한국 의사를 존경하는 이유다.

작금의 의정갈등은 결국 해결될 것이다. 모든 사안은 시간이 흐르면 풀이 죽고, 형해화 되기 때문이다. 근데 약간의 걱정을 난 갖고 있다. 의사 선생님을 향한 존경심 부분이다. 배타적 지식을 보유한 전문가 집단은 '권위와 존경'을 먹고 산다. 응급실 폭력이 종종 횡행하지만, 의사 앞의 환자나 가족은 얌전하지 않고 득될 게 없다. 우린 그래서 의사를 '선생님'으로 부른다.

대부분의 전문가 집단은 해체되고 있다. 내 직업 기자만 해도 존중받던 시대는 사라졌다. 기레기(기자+쓰레기)라고 댓글에 단다. 집안에 기자가 있다고 자랑하면 웃음거리다. 의사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난 의사 선생님들이 대화의 장에 나서주길 고대한다. 이긴다 하더라도 쌓아온 권위와 존경이 사라진다면 결국 지는 것이다. 의술은 인술이다. 의사 집안은 존중돼야 한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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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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