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화업 51주년을 맞는 대구출신의 이강소 작가. <이강소 작가 제공> |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아트페어인 '키아프'가 지난달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다. 올해 키아프는 참여 작품의 퀄리티가 높고, 해외 컬렉터의 발길이 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수억원을 호가하는 여러 작품이 팔렸는데, 그중에는 박서보·유영국·이배 등 대구경북 출신 작가들도 다수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거침없는 붓질과 과감한 여백으로 캔버스에 '기운생동' 하는 한국적 미를 구현해온 이강소 작가의 작품 역시 올해 아트페어 기간 내내 언론과 컬렉터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경북고 미술반원으로 활동시절
육군에 전시장을 빌린 것부터
화랑에 단골막걸리집 탁자 등을
그림 대신 놓은 첫 개인전 '소멸'
1회 대구현대미술제 공동기획
파리비엔날레에 선뵌 닭 들고
佛 국영TV 9시뉴스 출연까지
삶도 작품도 '파격' '실험' 연속
내달 서울서 화업 50년 회고전
이어서 대구미술관 전시 예정
대구 출신의 이강소 작가는 올해로 화업 51주년을 맞는다. 거침없는 붓질과 과감한 여백으로 기운생동 하는 동양적 미를 캔버스에 담아 왔다. <이강소 작가 제공> |
◆첫 개인전 '소멸' 센세이셔널한 반응
경북고 미술반원으로 활동할 때였다. 친구들과 전시회를 열 장소를 물색했지만 도무지 마땅한 곳을 찾기 어려웠다. 지금은 전시 공간이 다양하게 마련돼 있지만, 당시만 해도 프로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러던 중 그의 눈에 현재의 콘서트하우스 자리에 있던 육군 공회당 건물이 들어왔다. 대구역 서편에 있던 공회당은 임시로 이전해온 국립중앙극장이 상주하며 대구 문화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래, 결심했어'를 외친 이강소는 친구들과 함께 곧바로 건물 소유권자인 육군을 찾아갔다.
"그때 군인 아저씨들의 황당해 하던 얼굴이 지금도 떠올라요. 우여곡절 끝에 전시장을 빌리는 데는 성공했는데, 1층 건물은 전기도 없고, 먼지만 수북이 쌓여 있어서 저희가 직접 전기를 연결하고 청소도 했지요. 어쨌든 그때 시장님, 도지사님이 기부금도 주면서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어요."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창조하는 진취적 성향은 작품활동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의 첫 개인전 '소멸'은 한국 미술계에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켰다. 작가는 자주 찾던 막걸리집의 탁자와 안주를 전시장으로 옮겨 왔다. 화랑에 그림 대신 낡은 나무 탁자와 마른 안주, 재떨이, 성냥갑 등을 내놓았다.
"어느 날 선배와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어요. 내가 보는 선배의 모습과 선배가 보는 자신의 모습이 달랐지요. 또 선배가 보는 나의 모습과 내가 보는 나의 모습도 달랐어요. 우리가 같이 있다, 본다, 존재한다고 하는 것들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어요. 이런 제 경험을 관객과 나누기 위해 포장마차의 실제 테이블을 전시장으로 갖고 왔지요."
◆"동서양 미술, 근원적으로 달라"
그의 삶은 끊임없는 '실험'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사물의 본질을 오랜 시간 관조하고, 사유하고, 거꾸로 뒤집어 보았다. 1975년 제9회 파리 비엔날레에서도 그의 서늘한 예술적 영감이 도드라져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당시 전시장에는 살아있는 닭이 놓여 졌다. 바닥에 뿌린 횟가루 위에서 닭이 움직인 이동 경로가 고스란히 흔적으로 남았다. 닭이 남긴 시간의 궤적을 전시장에서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동양의 한 젊은 작가가 보여준 실험적 작품에 파리 예술계는 충격을 받았다. 그가 프랑스 제2국영TV 9시 뉴스에 닭을 들고 출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서양과 동양의 미술은 근원적으로 차이가 있어요. 서양은 내가 먼저 있고 세계가 있다는 자기중심적 사상을 바탕에 두고 있어요. 반면 동양은 나와 너, 산 것과 죽은 것 등 만물이 함께 어우러져 공존하고 있다는 철학이 깔려 있습니다. 미술계에서는 한때 서구의 자기중심적 사상이 강력하게 전파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동양적 사상이 옳다는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어요."
1970년대 대구는 '현대미술의 메카'로 인정 받았다. 이런 평가를 받기까지에는 1974년 그가 지역의 젊은 작가들과 공동기획한 '제1회 대구현대미술제'가 있었다.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그가 당시 서울에서의 활동을 정리하고, 고향인 대구로 돌아와 동료 작가들과 함께 현대미술제를 개최했다. '서울현대미술제'가 이듬해 12월 발족했으니 대구가 서울보다 1년 앞서 시작된 셈이다.
"그 시절 서울과 대구의 화단 분위기는 사뭇 달랐어요. 서울은 작가들끼리 견제가 심했지만 대구는 반대로 화합이 잘되는 도시였지요. 전국의 청년 미술인들이 대구로 몰려들었고, 각자의 방식과 예술로 시대정신을 표현했어요. 작가들이 예술을 이야기하고, 신나게 먹고 마시며 하나가 되기에는 대구가 안성맞춤이었죠. 대구현대미술제는 학교와 출신지, 소속에 구분을 두지 않고 정치나 권력과 같은 외부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작가들이 오로지 예술정신으로 하나 된 축제였기에 더 잘 되지 않았나 싶어요."
◆화업 50주년 기념 대규모 회고전
파격과 실험의 예술을 펼쳤던 작가는 최근 경기도 안성의 화실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80대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전시회 요청도 밀려들고 있다. 최근에는 오스트리아계 유명 화랑인 타데우스 로팍이 작가와 소속계약을 맺고, 국제적으로 소개할 계획을 밝혔다. 타데우스 로팍은 1983년 오스트리아에서 시작했으며, 서울을 비롯해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지점을 두고 있다. 안젤름 키퍼, 게오르그 바젤리츠 등 세계적 작가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화랑 측은 내년 봄 서울에서 '이강소 개인전'을 열 계획이라고 전했다.
작가는 또 다음 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화업 50여 년을 정리하는 대규모 회고전도 앞두고 있다. 전시될 작품을 분류하고, 손질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짧다. 서울에서 전시를 마친 후에는 대구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회고전은 지난 50여 년간 대중과 소통한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의미 있는 자리에요. 요즘 젊은 신세대 기획자들과 작업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제 작업도 되돌아 볼 수 있으니 굉장히 즐겁습니다."
작가는 예술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 "미술뿐 아니라 음악, 연극, 무용 등 모든 예술이 마찬가지로 '일종의 언어'가 아닐까 생각한다"라며 "우리생활 속에 내재된 평범하고도 기본적인 예술의 언어가 서로를 소통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삶을 보다 풍요롭게 바꿔 나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김은경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