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첫 소설집을 발표한 표창원 범죄심리전문가는 방송인, 대학교수, 국회의원 등 다양한 직업 중에서도 소설가의 경험이 가장 짜릿하고, 전율적이라고 말했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제공〉 |
포항 출신의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은 버라이어티한 인생의 주인공이다. 해병대 부사관이던 아버지의 두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고분고분한 성격은 아니어서 툭하면 싸움을 벌이고, 반항적 기질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두뇌가 명석해 '전국 1등'에 오르고, 희망하던 경찰대에도 합격했다.
'셜록 홈즈'의 '찐팬'인 그는 홈즈가 탄생한 영국에서 유학했으며, 대한민국 1세대 프로파일러로 자리를 굳혔다. 틈틈이 방송인·강연자 활동을 한 것에 이어 2016년에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다. 최근에는 한국의 셜록 홈즈를 표방한 '이맥'을 주인공으로 첫 장편 추리소설 '카스트라토'를 상재했다.
"중대범죄자 행동패턴 분석, 범인 잡는게 아닌 수사 보조 역할
상대적 박탈감서 온 범죄 많아…개인적 동기 많은 서양과 대조
직접 경험한 현실정치 실망감…어릴때 쓴 반성문 문장력 키워"
◆ 대한민국 1세대 프로파일러
'유영철, 강호순, 이춘재'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한 중대 범죄자들이다. 이들의 수사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범죄 현장에 남겨진 증거나 범행패턴을 분석해 범죄자의 의도나 행동방식을 유추하는 '프로파일러'가 투입됐다는 것이다. '프로파일러 표창원'이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것은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서 프로파일링 활동이 소개되면서다. 냉철한 시각과 빈틈이라곤 없어 보이는 수사기법을 동원해 범죄 현장을 풀어가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표 소장은 "프로파일러의 역할이 방송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갖게 됐는데, 조금은 과장된 측면도 있다"며 "원칙적으로 프로파일러는 범인을 직접 잡는 것이 아니라 수사가 원활히 전개될 수 있도록 돕는 보조적 역할자"라고 밝혔다.
◆ 한국은 범죄에 안전한 나라일까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안전보고서 2023'을 보면 한국의 범죄 발생률은 코로나19 때 잠시 줄었다가 다시 증가추세로 돌아섰다. 특히 강력 범죄 발생이 늘어났는데, 성폭력 범죄의 증가가 두드러졌다.
"한국과 서양의 범죄유형을 살펴보면 조금 다른 점이 있어요. 흔히 '묻지마 범죄'라고 부르는,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을 보면 외국은 주로 개인적인 이유에서 발생한 경우가 많아요. 해고당한 사람이 전 직장을 찾아가거나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한 학생이 학교를 찾아가 총기 난사를 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한국에서 '묻지마 범죄'는 사회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범죄를 벌인 경우가 많아요."
대표적인 사례가 1988년 공주교도소로 이감 중 동료들과 집단탈주를 시도한 지강현이다. 당시 서울시 내로 잠입해 인질극을 벌인 그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남기고 경찰에 사살됐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는 '공정성'이 화두로 떠올랐다.
"한국 사회는 한 두 다리만 건너면 다 알 정도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따라서 남들은 더 잘 사는 것 같고, 우리 부모는 힘없고 가난한 데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이 바탕이 된 범죄가 많아요. 서양처럼 개인이 이상한 망상에 빠져 범행을 저지르는 것, 반대로 사회에 분노해서 그릇된 불만을 표출하는 것 중에서 누가 더 건강한 지는 말하기 어려워요. 관점의 차이니까요."
◆ "정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많지 않아"
프로파일러 활동의 정점에 있던 2016년 그는 갑자기 선거판으로 자리를 옮겼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됐지만 3년 후인 2019년에는 불출마를 선언했다.
"법, 예산, 정책 등 사회를 바꾸는 모든 것이 결국 정치로 귀결되더군요. 희망을 품고 정치판으로 갔는데, 정작 정치권 내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었어요."
정치초년병 표 소장이 직접 경험한 현실정치는 실망스러웠다. 정의를 위해 열심히 정진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정치판으로 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정당 간 싸움은 살벌해지고, 이 과정에서 도대체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알 수 없었다는 것. 불안과 두려움이 반복되면서 '아,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하는 확신이 커졌다고 했다. 결국 정치판에서 자신이 할 역할은 다했다고 판단해 스스로 걸어 나온 이후 정치를 쳐다보지 않는다고 했다.
"의원들은 자신의 정치 생명 연장이 걸린 만큼 행동이 자유롭지 않더군요. 하지만 저는 경찰 재직 때부터 남에게 보여지는 것들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대한민국에서 정치는 특별한 영역이고, 정치인은 뭔가 특권인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정치가 제대로 굴러가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정치 안에서가 아니라 바깥에서 제가 가장 잘 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 첫 소설 발간 "한국의 셜록 홈즈 만들겠다"
표 소장은 올해 특별한 도전을 했다. 수년 전부터 벼르던 소설책을 선보였다. 그의 첫 장편 '카스트라토'는 연말 분위기로 떠들썩한 도심 한복판에서 절단된 남성 신체의 일부가 발견되면서 시작하는 추리소설이다. 돈과 권력을 위해 양심과 정의는 쉽게 저버리는 오늘날 한국 사회와 '오버랩' 되면서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소설교육을 정식으로 받지 않은 표 소장은 "어린 시절 반복해서 썼던 반성문의 경험이 쌓여 문장력을 키웠다"며 웃었다.
"처음에는 정식으로 소설을 배우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게 너무 오만하지 않을까 고민했어요. 하지만 만화를 보고 요리를 배웠다는 '흑백요리사'의 셰프를 보면서 '아, 내가 하려는 일이 그리 무모한 것은 아니었구나' '꼭 훈련받은 엘리트 작가만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니야' 라며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국회의원, 경찰관, 대학교수, 프로파일러, 방송인 등 다양한 경험 끝에 얻은 '소설가' 타이틀은 왠지 모르게 가슴을 뜨겁게 한다. 표 소장은 "소설가는 왠지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고통스럽고 외롭고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그만큼 재밌고, 희열이 넘치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표 소장은 지방소멸의 화두를 풀어갈 해법으로 지역 언론 생태계 개선을 제안하기도 했다.
"영남일보를 비롯한 지역 언론의 역할과 환경이 매우 중요합니다. 미국은 '시카고 트리뷴' 같은 지역 매체의 파워가 엄청납니다. 주민들이 지역 매체를 보면서 지역의 정체성을 떠올리고, 지역의 시선으로 현안을 바라봅니다. 우리처럼 모든 뉴스가 중앙 위주로 가서는 곤란하겠죠. 정부의 관심과 변화의 노력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상대적 박탈감서 온 범죄 많아…개인적 동기 많은 서양과 대조
직접 경험한 현실정치 실망감…어릴때 쓴 반성문 문장력 키워"
◆ 대한민국 1세대 프로파일러
'유영철, 강호순, 이춘재'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한 중대 범죄자들이다. 이들의 수사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범죄 현장에 남겨진 증거나 범행패턴을 분석해 범죄자의 의도나 행동방식을 유추하는 '프로파일러'가 투입됐다는 것이다. '프로파일러 표창원'이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것은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서 프로파일링 활동이 소개되면서다. 냉철한 시각과 빈틈이라곤 없어 보이는 수사기법을 동원해 범죄 현장을 풀어가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표 소장은 "프로파일러의 역할이 방송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갖게 됐는데, 조금은 과장된 측면도 있다"며 "원칙적으로 프로파일러는 범인을 직접 잡는 것이 아니라 수사가 원활히 전개될 수 있도록 돕는 보조적 역할자"라고 밝혔다.
◆ 한국은 범죄에 안전한 나라일까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안전보고서 2023'을 보면 한국의 범죄 발생률은 코로나19 때 잠시 줄었다가 다시 증가추세로 돌아섰다. 특히 강력 범죄 발생이 늘어났는데, 성폭력 범죄의 증가가 두드러졌다.
"한국과 서양의 범죄유형을 살펴보면 조금 다른 점이 있어요. 흔히 '묻지마 범죄'라고 부르는,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을 보면 외국은 주로 개인적인 이유에서 발생한 경우가 많아요. 해고당한 사람이 전 직장을 찾아가거나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한 학생이 학교를 찾아가 총기 난사를 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한국에서 '묻지마 범죄'는 사회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범죄를 벌인 경우가 많아요."
대표적인 사례가 1988년 공주교도소로 이감 중 동료들과 집단탈주를 시도한 지강현이다. 당시 서울시 내로 잠입해 인질극을 벌인 그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남기고 경찰에 사살됐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는 '공정성'이 화두로 떠올랐다.
"한국 사회는 한 두 다리만 건너면 다 알 정도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따라서 남들은 더 잘 사는 것 같고, 우리 부모는 힘없고 가난한 데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이 바탕이 된 범죄가 많아요. 서양처럼 개인이 이상한 망상에 빠져 범행을 저지르는 것, 반대로 사회에 분노해서 그릇된 불만을 표출하는 것 중에서 누가 더 건강한 지는 말하기 어려워요. 관점의 차이니까요."
◆ "정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많지 않아"
프로파일러 활동의 정점에 있던 2016년 그는 갑자기 선거판으로 자리를 옮겼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됐지만 3년 후인 2019년에는 불출마를 선언했다.
"법, 예산, 정책 등 사회를 바꾸는 모든 것이 결국 정치로 귀결되더군요. 희망을 품고 정치판으로 갔는데, 정작 정치권 내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었어요."
정치초년병 표 소장이 직접 경험한 현실정치는 실망스러웠다. 정의를 위해 열심히 정진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정치판으로 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정당 간 싸움은 살벌해지고, 이 과정에서 도대체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알 수 없었다는 것. 불안과 두려움이 반복되면서 '아,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하는 확신이 커졌다고 했다. 결국 정치판에서 자신이 할 역할은 다했다고 판단해 스스로 걸어 나온 이후 정치를 쳐다보지 않는다고 했다.
"의원들은 자신의 정치 생명 연장이 걸린 만큼 행동이 자유롭지 않더군요. 하지만 저는 경찰 재직 때부터 남에게 보여지는 것들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대한민국에서 정치는 특별한 영역이고, 정치인은 뭔가 특권인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정치가 제대로 굴러가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정치 안에서가 아니라 바깥에서 제가 가장 잘 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 첫 소설 발간 "한국의 셜록 홈즈 만들겠다"
표 소장은 올해 특별한 도전을 했다. 수년 전부터 벼르던 소설책을 선보였다. 그의 첫 장편 '카스트라토'는 연말 분위기로 떠들썩한 도심 한복판에서 절단된 남성 신체의 일부가 발견되면서 시작하는 추리소설이다. 돈과 권력을 위해 양심과 정의는 쉽게 저버리는 오늘날 한국 사회와 '오버랩' 되면서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소설교육을 정식으로 받지 않은 표 소장은 "어린 시절 반복해서 썼던 반성문의 경험이 쌓여 문장력을 키웠다"며 웃었다.
"처음에는 정식으로 소설을 배우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게 너무 오만하지 않을까 고민했어요. 하지만 만화를 보고 요리를 배웠다는 '흑백요리사'의 셰프를 보면서 '아, 내가 하려는 일이 그리 무모한 것은 아니었구나' '꼭 훈련받은 엘리트 작가만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니야' 라며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국회의원, 경찰관, 대학교수, 프로파일러, 방송인 등 다양한 경험 끝에 얻은 '소설가' 타이틀은 왠지 모르게 가슴을 뜨겁게 한다. 표 소장은 "소설가는 왠지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고통스럽고 외롭고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그만큼 재밌고, 희열이 넘치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표 소장은 지방소멸의 화두를 풀어갈 해법으로 지역 언론 생태계 개선을 제안하기도 했다.
"영남일보를 비롯한 지역 언론의 역할과 환경이 매우 중요합니다. 미국은 '시카고 트리뷴' 같은 지역 매체의 파워가 엄청납니다. 주민들이 지역 매체를 보면서 지역의 정체성을 떠올리고, 지역의 시선으로 현안을 바라봅니다. 우리처럼 모든 뉴스가 중앙 위주로 가서는 곤란하겠죠. 정부의 관심과 변화의 노력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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