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충격에 이어 러·우전쟁 등
팬데믹과 전쟁이 잇따르는 현시대
역사적 맥락서 위기·위기관리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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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병사가 군사작전 중 랩톱 컴퓨터를 이용해 드론을 조종하고 있다. '역병, 전쟁, 위기의 세계사'는 팬데믹과 전쟁이 잇따르는 현시대의 위기를 진단하고 삶의 길을 찾으려는 시도 중 하나다.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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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구 지음/믹스커피/288쪽/2만원 |
영국 명문 리즈대에서 매년 열리는 중세사 학술대회의 올해 대주제는 '위기'였다. 국제적 학술대회의 주요 키워드가 위기라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코로나19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이 잇따라 일어나고 대량학살, 난민, 기아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등 다양한 위기가 상호작용하는 형국이다.
이 책은 팬데믹과 전쟁이 잇따르는 현시대의 위기를 진단하고 삶의 길을 찾으려는 시도 중 하나다. 위기를 피하기 힘들다면 오히려 적극적인 자세로 받아들이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나아가 위기에 대비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위기와 위기관리를 역사적 맥락에서 조망해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이고 있다.
위기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은 존재하기 어렵겠지만 역사적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수는 있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위기에 대처했는지, 심각한 위험을 어떻게 피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위기관리를 시행했는지 등을 배울 수 있다. 또한 저자는 위기를 해결하려면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다 현 위기를 초래한 관습적 인식과 기준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위기 극복의 열쇠는 단지 염원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라는 것이 그 이유다.
'위기(危機)'는 한자어 '위험'과 '기회'가 합쳐진 말로 부정적 혹은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고비를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병세가 악화하거나 회복하는 상태로 넘어가는 전환점을 '위기'라고 불렀다. 즉 위기는 더 나빠지거나 더 좋아지는 분기점이나 변곡점 같은 결정적 순간을 말한다.
일찍이 독일의 마르틴 루터는 그릇된 관습이나 잘못된 종교적 교리를 바로잡고 믿음의 근원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며 '종교개혁'을 이룩했다. 하지만 16세기 초반 당시의 유럽은 질병과 전쟁, 기근과 기후 변화로 암울하기 이를 데 없었고, 재난의 시대를 살아간 민중은 불건전하고 극단적이며 과도한 신앙적 행위로 점철되었다. 이런 이유로 루터의 위기의식 투철한 개혁은 힘을 받기 힘들었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으로 최악의 사이가 된 독일과 폴란드는 1960년대 극적인 사죄, 용서, 화해를 이어가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환경위기 속에서 돌파구를 찾은 역사를 들여다본다. 2~3세기 감염병 위기의 시대에 그리스도교의 위기 대응 자세와 능력, 소빙기 시대에 일어난 자연재해와 사회적 복원력,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핵 참사에 대한 국가 간의 상이한 대응책 등 환경위기 극복을 위한 역사적 사례들을 고찰했다. 2부에서는 정치위기 속에서 길을 찾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러 전쟁들이 글로벌 위기를 가중시키는 와중에 현명한 정책적 판단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3부는 성찰과 교류의 역사가 만든 기회를 엿본다. 이웃 국가 간의 적의와 증오 감정은 초경계적 상호 교섭과 연대의 역사적 경험 공유, 미래지향적 화해와 치유에 무게를 두는 회복적 접근으로 해결할 수 있다. 나아가 개인·사회·국가 간 각자도생의 생존 논리가 앞서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성찰과 교류의 역사를 엿보며 우리의 인식과 태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 차용구는 서양사 전공자로 현재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서양의 접경을 연구하는 중앙대·한국외대 HK+ 접경인문학연구단 단장을 역임했고, 한국서양중세사학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는 '중세 접경을 걷다' '국경의 역사' '중세유럽 여성의 발견' 등이 있으며 40여 편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한 바 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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