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간송미술관 개관전 흥행
지역 문화예술 저변 확대 계기
미술에 대한 지역민 관심 높아
대구미술관 역할 재조명 눈길
지역 문화분권 실현 첫 단추로
임훈 문화부 차장 |
얼마 전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 아들녀석이 다짜고짜 "나도 신윤복의 미인도 알아요"라는 말을 해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아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니 아들아…"라고 물었더니 "대구간송미술관에 다녀온 친구가 신윤복의 미인도를 봤다며 자랑하길래 나도 안다고 그랬어. 나도 간송미술관 잘 알아"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이의 대답이 참 황당하면서도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아이가 유치원생이던 시절 잠시 미술학원을 다니기는 했지만, 한글 익히는 데도 힘겨워했던 개구쟁이 녀석의 입에서 조선 후기 대표적 풍속화가인 신윤복의 이름이 나오다니 웃음마저 나왔다.
아들과의 짧은 대화 후 홀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둘째 아들이 친구 앞에서 그렇게도 당당했던 이유는 아버지인 기자의 영향이 작용한 듯했다. 기자는 지난 9월3일 시작된 대구간송미술관 개관기념 국보·보물전 '여세동보-세상 함께 보배 삼아'를 취재차 여러 차례 관람했고, 이 사실을 자녀들도 알고 있었다. 여기에다 신윤복의 미인도가 그려진 마우스 패드 등 대구간송미술관 굿즈까지 구입해 집에 가져갔으니, 아이들도 대구간송미술관과 전시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생겨난 듯했다.
올해 대구 미술계의 가장 큰 이슈를 꼽자면 단연 대구간송미술관 개관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대구간송미술관 개관전은 12월1일 끝났지만, 그 여운은 한참 동안 가시지 않을 것 같다. 앞서 언급한 아들과의 대화처럼 대구간송미술관의 등장 이후 미술에 대한 지역민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고미술(古美術) 문화유산이라는 시대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2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대구간송미술관을 찾은 것도 매우 고무적이다.
대구간송미술관 개관전 전시 첫날의 취재 상황도 떠오른다. 혹여나 '밤새 미술관 입장을 기다린 텐트족들이 있을까' 상상하며 개관 당일 오전 7시 미술관 앞에 도착했지만, 실망스럽게도 단 한 사람의 대기 관람객은 물론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는 듯한 적막만 감돌았다. '설마 이렇게 흥행에 실패하는 것인가' 하고 우려하던 중 기자의 걱정은 쓸데없는 기우(杞憂)였음을 확인했다. 이날 대구간송미술관 입구는 전시 오픈 1시간 15분 전인 오전 8시45분부터 대기 줄이 생기기 시작했고, 발권을 위해 입장할 때는 이미 관람객 대기 줄이 한참 길어진 상황이었다. 개관 첫날 미인도를 보려는 관람객들로 인해 미술관 로비가 꽉 찰 정도로 북적이는 모습을 보며 말로만 듣던 '지역문화 분권 실현'이 있다면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대구간송미술관 개관과 더불어 대구미술관의 역할이 재조명 받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대구 수성구 삼덕동에 자리한 두 미술관 사이의 거리는 100m 남짓이다. 특히 두 미술관 사이를 오가는 계단에 적힌 '시대를 넘나드는 예술-ART THAT TRANSCENDS TIME'이라는 문구는 양 미술관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고전의 향기를 품은 대구간송미술관과 최첨단의 현대미술을 영위하는 대구미술관이 협력체계 구축까지 선언하면서 두 미술관은 지역민의 문화 향유 확대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개관전을 마친 대구간송미술관은 잠깐의 휴식기를 가지고 상설전시 준비에 나선다. 대구간송미술관 상설전에는 꼭 둘째 아들과 함께 미술관 나들이에 나서야겠다. 당연히 대구미술관도 방문할 것이다.
임훈 문화부 차장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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