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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
수청목 이파리에 물든 남포적삼 말려 입고 물봉숭아 진홍에 물든 고의잠방이 입고 가면 만날 수 있을까 행화씨 돌에 갈아 구멍을 내고 보릿짚 대궁 꽂아 호들기를 불며 가면 만날 수 있을까 떠나간 예순 해 잘도 피던 철쭉꽃, 헤어진 만 리 길 뜨겁던 백일홍, 여울 가 목매기는 단소 소리로 울고 풀언덕 염소는 피리 소리로 우는데 버들가지 물올라 껍질 비틀면 어느덧 손가락엔 옛날 불던 초적 하나 음절도 장단도 없이 하늘로 띄우는 슬픔보단 기쁘고 아픔보단 애잔한 누누백 년 논밭에 심고 가꾼 메나리조 한 가락
이기철 '메나리조 한 가락'
낯익은 시인의 치열한 자기 갱신의 결과물과 마주칠 때, 당연히 읽는 사람마저 뭉클해진다. 필생이란 어휘가 알맞게 연상되기 때문이다. 이기철의 시집 '산산수수화화초초'가 그러하다. 이왕의 관습이 얼핏 보이지만 그마저 새로움을 떠받치는 꽃받침이 된다. 나제여조, 신라와 백제 그리고 고려와 조선조의 선인들의 생멸과 한숨이 시집 전체에 고스란히 철필로 각인된 시집이다. 메나리는 농부들의 노동요, 그 노래가 한과 다정의 귀엣말로 되풀이된다. 슬픔을 해쓱하도록 승화시켜온 옛 사람을 시는 잘 보여주고 있다. 메나리를 떠받치는 힘은 모국어에 대한 성찰이면서 리듬에 대한 세계관의 확장이면서 서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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