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부재의 시대, 한국형 정치철학을 묻다 〈3〉경북대 톰슨 벤자민 크리스토퍼 정치외교학과 교수
최근 경북대 대구캠퍼스 정치외교학과 강의실에서 톰슨 벤자민 크리스토퍼 교수가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진단하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
경북대 톰슨 벤자민 크리스토퍼 교수(사진·정치외교학과)는 미국 위스콘신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영국 엑시터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양정치사상과 민주주의론을 전공한 그는 계엄사태 이후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 상황에 대해 설명하면서 한국 정당이 지도자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했다.
톰슨 교수는 "과거 정치학 연구자들은 한국 정당을 특정 주요 지도자를 지지하는 모임처럼 묘사하곤 했다"며 "이는 정당이 더 제도화돼 있고, 지도자들이 임시적이며, 당내 다른 인물들과 더 강하게 협력해야 하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얼마나 사실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현재 양당이 법적 문제가 있는 지도자들에게 크게 의존하는 모습은 매우 이상하게 보인다"며 "윤석열 대통령과 주변의 경우 계엄사태 이전부터 이미 법적 위험성 문제를 안고 있었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마찬가지다. 정당이 지도자들에 의해 거의 '인질'로 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이어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특징은 쉽게 바뀌지 않을 듯하다"고 진단했다.
'보수의 심장' 대구경북의 정치적 정체성에 대해선 실용주의 관점에서 매우 좋지 않은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톰슨 교수는 "많은 보수 리더들이 대구경북 출신이다. 윤 대통령도 대구에서 잠깐 (검사로) 일했던 적 있다. 그래서 대구를 '보수의 심장'으로 보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실제 대구지역 각종 투표 결과 65~66% 정도가 보수층"이라면서 대구가 당파적인 도시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는 대구에 좋지 않다. 정치적 실용주의가 부족하다. 시민들이 다양한 선택지를 고려한다면 더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톰슨 교수는 대구의 약 34% 사람들이 보수적이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2025년 한국 민주주의는 전례 없는 시험대에 올라 있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모두 성취한 전 세계 유일한 나라로, 많은 개발도상국에 '민주주의 본보기'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 사태 후 두 달간 그 위상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깊어지는 갈등과 불신은 한국정치의 불안정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으며, 국제사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중차대한 정치적 변화를 외국인 전문가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과연 한국 민주주의는 이 위기를 극복하고, 정치적 불신을 해소하며 전진할 수 있을까. 경북대 톰슨 벤자민 크리스토퍼 교수(정치외교학과)에게 한국정치의 현주소에 관한 생각을 들어봤다.
▨ 톰슨 벤자민 크리스토퍼 교수= 1981년생. 미국 위스콘신 출신 △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 학사 △영국 엑시터대학교 석·박사
▶12·3 비상계엄 선포로 촉발된 일련의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최근의 정치 상황은 슬프고 우려스럽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은 조급함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있다. 정상적인 시스템을 통해 타협하거나 협상하려는 의지가 부족했을 수 있다. 탄핵 소추와 체포 절차에서는 즉흥적 조치들이 있는 것 같다. 계엄령이 정당했다고 볼 수 있는 증거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시민은 탄핵 소추의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다. 이는 문제다. 왜냐하면 계엄령은 엄청나게 위험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미덕과 인내심의 부족이 걱정된다. 헌법은 완벽하지 않다. 따라서 한국 헌법에 사각지대가 있다는 점은 정상적이다. 이런 사각지대를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정치지도자와 시민, 선출직 공무원이 갖춰야 할 정치적 미덕을 기대한다."
▶계엄령이 헌법적 절차와 정당성을 따랐다고 보나.
"계엄령이 합법적이려면 심각한 위협이 있어야 하지만 그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특히 계엄 조치의 실제 대상이 국회, 즉 국회가 행동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것이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는 결국 국내외적으로 (계엄령을 내려야 할 만큼) 실질적 위협이 없었음을 의미한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여론조사 결과 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오히려 상승세에 있다.
"한국의 진보·보수 분포는 수십 년간 매우 일정하다. 약 30%는 진보적이고, 또 30%는 보수적이다. 나머지 약 30~35%는 상대적으로 결정되지 않은 층이다. 계엄령이 발동된 순간에는 모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보수층조차 일시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반적인 분포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매우 적극적이고 열성적이다. 지난달 중순 일요일 아침 서울 한남동에 있었는데, 그들은 아침 일찍부터 지지 시위를 하고 있었다. 보수층이 자신감을 얻을 가능성은 더 커지는 것이다. 다만 지지율 상승을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로만 해석해선 안 된다. 보수를 지지한다는 대리 표현이지 윤 대통령 개인에 대한 지지는 아닐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일시적으로 보수가 몰락했던 상황을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심리도 작용했을 것이다."
▶계엄 사태가 한국 정치체제와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2024년 12월3일, 한국 민주주의에 가해진 위협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물론 탄핵 심판을 지켜보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겠지만, 그런 계획을 실행에 옮긴 행위자가 있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이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매우 빠르게 행동에 나섰다는 점은 아주 고무적이다. 시민 덕분에 국회의원들이 모여 투표할 수 있었고, 계엄령은 효과를 잃었다. 다양한 방향에서 시민사회 활동이 활발하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개인적으로 윤 대통령과 그 세력을 지지하진 않지만, 사회에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의 장기적 안정성에 미칠 영향은 우려스럽다. 민주주의가 후퇴한 다른 국가의 사례를 보면 극단적인 일이 발생한 뒤 '덜' 극단적인 일은 '정상화'되는 경우가 있다. 민주주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작은 규모의 행위들이 눈에 띄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가능해진다."
▶탄핵정국에서 한국 국회의 대응은.
"대통령의 행동과 의도의 정당성에 대해 극단적인 의문이 제기됐을 때, 탄핵은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이런 이유로 헌법에 탄핵 제도가 존재한다. 그러나 절차적으로 올바르게 진행돼야 한다. 현재 국회가 여러 공직자를 탄핵하는 방식에는 의문점이 남는다. 그리고 확실히 민주당은 꽤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 같은 비판만으로도 절차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줄어들 수 있다."
▶대통령 체포영장의 공개 집행이 국가 품위를 손상시킨다는 의견과 특별 대우가 오히려 국가 품위를 손상시킨다는 의견이 있다.
"법치주의 문제다. 한국에서 (임기 중) 대통령의 형사 기소를 막는 시효가 없다면, 현직 대통령을 기소하는 것은 문제가 매우 중대하거나 극단적일 경우를 제외하고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지금은 매우 중대하거나 극단적인 상황이라 생각한다. 대통령이 법 위에 있을 수는 없다. 만약 대통령이 법 위에 있다면, 법치주의에 근본적인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법치주의에 대한 엄밀한 해석으론 체포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체포영장을 집행할 수 있는 주체나 절차가 올바르게 준수됐는지 등의 다른 질문도 나올 수 있다."
▶실제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과정이 거의 생중계되다시피했다. 어떻게 봤는가.
"이번 체포는 탄핵의 심각성과 윤 대통령이 이전에 소환 조사를 거부했던 점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불가피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거나, 공수처가 체포 권한이 없다거나, 혹은 잘못된 법원이 영장을 발부했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중앙지법이 이러한 주장들을 (체포적부심사에서) 기각한 것은 윤 대통령 측이 제기한 법적 주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번 사건의 법적 지위에 관한 상황이 대중의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현재 많은 사람이 이번 사건을 특정한 시각에서 고정적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는 최근 사건에서 한국의 각 정파와 지지자들이 각자 진영 논리에 기반한 왜곡된 정보나 선택적 사실을 기반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이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으로, 현대 정치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번 여파로 한국 정당 구조와 국제사회에서의 정치적 신뢰에 미칠 장단기적 영향은.
"한국 정당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을 거라 본다. 한국 국회와 대통령 선거는 기본적으로 승자독식 모델을 따른다. 이런 시스템에선 수학적으로 두 개의 주요 정당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다만 한국 정당들은 분열과 재조직이 잦다. 한때 새누리당이 분열했듯 국민의힘도 이름만 바꾸고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만 아마 실제로는 같을 것이다. (국제사회에선) 경제적 상호작용에서 불확실성이 이미 반영되고 있다. 원화 가치 하락도 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과장돼선 안 된다. 한국과 미국은 최근 핵물질 수출 관련 중요 MOU를 체결했다. 한국은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의 중국 견제, 북한 문제 등으로 지역적 중요성도 여전히 크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트럼프의 새로운 참모 중 일부는 한국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같지만 트럼프는 예측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외국인 교수로서 느낀 한국 정치 특징은.
"한국 정당은 지도자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과거 연구자들은 한국 정당을 특정 주요 지도자를 지지하는 모임처럼 묘사하곤 했다. 이는 정당이 더 제도화돼 있고, 지도자들이 임시적이며, 당내 다른 인물들과 더 강하게 협력해야 하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과 다른 점이다. 얼마나 사실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현재 양당이 법적 문제가 있는 지도자들에게 크게 의존하는 모습은 저에게 매우 이상하게 보인다. 윤 대통령과 주변의 경우 계엄령 이전부터 이미 법적 위험성 문제를 안고 있었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마찬가지다. 정당이 지도자들에 의해 거의 '인질'로 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특징은 쉽게 바뀌지 않을 듯하다."
▶'보수의 심장' 대구경북 지역의 정치적 정체성을 평가한다면.
"많은 보수 리더들이 대구경북 출신이다. 윤 대통령도 대구에서 잠깐 (검사로) 일했던 적 있지 않나. 그래서 대구를 '보수의 심장'으로 보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대구는 꽤 당파적인 도시이다. 대구지역 투표의 65~66% 정도가 보수층이다. 이는 대구에 좋지 않다. 정치적 실용주의가 부족하다. 시민들이 다양한 선택지를 고려한다면 더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약 34%의 사람들은 보수적이지 않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광주는 대구보다 훨씬 더 당파적인 경향이 있다."
▶여야 불소통의 본질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한국정치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미국에서 나타난 극단적 당파성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협상과 타협을 회피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는 환경이 조성됐다면 이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정당 간 타협이 선거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면, 정치적 교착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재선에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협상하지 않으려는 선거적 유인이 있다면, 이 현상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그렇다면 양극화를 일으킨 요인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점점 더 양극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 엘리트들이 점점 양극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념을 오른쪽과 왼쪽, 단순한 스펙트럼으로 본다. 하지만 이념은 매우 다양한 차원을 가지고 있다. 승자독식 선거 시스템인 이상 2개의 거대 정당을 가질 것이고, 이들 간의 대립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정쟁만 있고 협치는 없는 이 현상이 정치철학의 빈곤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역사 혹은 철학을 통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까.
"이 주제에 대해 매우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정치 철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그렇다. 더 많은 정치 철학과 역사를 통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꼭 그렇다고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주목할 것은 정치철학의 과거보다는 미래일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적 양극화는 소셜미디어(SNS) 참여 현상과 관련이 깊다. 소셜미디어는 좋은 정보를 분별하는 능력을 떨어뜨린다. 정치 철학자들 역시 지난 10년 동안 이러한 문제를 새롭게 접하고 있어 아직 이를 해결할 방법이나 제도를 재설계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미래 정치철학자들이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정치불신 현상을 해소하고 한국형 정치철학을 정립하려면.
"한국식 정치철학은 이미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철학은 우리가 정치적 현실을 훨씬 더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정치적 불신을 해결하는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질문이다. 만약 우리가 소셜미디어와 선택적으로 고른 정보원에게만 의존한다면, 불신은 계속될 것이다. 보수는 '민주당이 계속해서 공직자들을 탄핵하려 하는데, 뭔가 수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진보는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의 탄핵에 필요한 조치를 계속 막고 있다. 다른 공직자들도 직무를 다하지 않으니 탄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사건을 보고도 완전히 다른 해석이 존재하게 된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사람들이 대면해 상호작용하고 토론하면 타협을 잘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예상보다 더 희망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서민지
디지털콘텐츠팀 서민지 기자입니다.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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