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민 설연휴 어떻게 보낼까
마트·시장 찾은 201명 설문조사
지난 21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시민이 영남일보 '설 명절 차례 문화' 설문조사에 응하고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
민족 최대 명절 설이 성큼 다가왔다. 설은 남녀노소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인식의 차이는 크다. 즐거울 수도, 힘들 수도, 반가울 수도,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을 주도적으로 지내야 하는 연령대 사이에서는 매년 빠지지 않는 농담이 있다. "조상 덕 본 사람들은 명절에 해외여행 간다더라." 특히 올해는 하루 연차를 내면 최장 9일간 이어지는 긴 연휴 덕에 국내·외 여행 수요가 급증할 전망이다. 최근 실시된 한국교통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20.2%는 이번 설 연휴 기간 여행을 계획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명절을 대하는 전통적인 인식에 큰 변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분위기와는 별개로 대구에 거주하는 김현지(여·34)씨네는 여전히 분주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차례상 준비와 함께 다양한 미션들이 기다린다. 귀성길 교통 체증은 시작에 불과하다. 전(煎) 부치기를 비롯해 많은 제수(祭需) 만들기에서부터 가족 간 갈등을 예방하는 일까지. 매년 반복되는 숙제다. 김씨는 "명절 풍경이 바뀌고 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이게 정말 현실이긴 한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많은 대구시민들은 이번 설을 과연 어떻게 보낼까. 영남일보는 지난 20~21일 대구지역 한 이마트와 서문시장에서 시민 201명을 대상으로 설 명절 계획을 조사했다.
지난 20일 대구시내 한 이마트를 찾은 남성고객이 영남일보 '설 명절 차례 문화' 설문조사에 응하고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
◆전통 차례상 '1위'…휴식·여행, 간소화도
먼저 '올해 설 명절 차례를 어떻게 지낼 예정인지'에 대해 물었다. 201명(이마트 101명·서문시장 100명)에게 답을 들어봤다. 그 결과 '전통 차례상을 준비하겠다'는 응답이 35.8%(이마트 42표·서문시장 30표)로 가장 많았다. 이어 △휴식 및 여행 24.9%(이마트 22표·서문시장 28표) △간소화된 차례상 20.4%(이마트 17표·서문시장 24표) △기타 17.9%(이마트 19표·서문시장 17표) △배달 및 전문업체 1%(이마트 1표·서문시장 1표) 등의 순이었다. 특히 서문시장에서는 연령대가 상대적으로 높은 시민 사이에서도 간소화와 휴식·여행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 눈길을 끌었다.
전통차례상을 준비하는 시민들의 의견은 다양했다. 김건희(여·60)씨는 "내 선에서 끝낼 일이다. 며느리 대에는 안 넘길 것"이라며 "나도 솔직히 쉬고 싶지만, 아직 건강이 괜찮다"며 '대물림'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김춘효(84)씨는 "차례는 이제 '산 사람의 친목회'의 의미가 짙다고 본다. 더 이상 형식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며 간소화를 희망했다. 반면, 조영우(58)씨는 "전통 문화를 없애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정성스럽게 차례상을 준비하고 나눠 먹으면서 가족 간 대화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휴식·여행을 선택한 시민은 연령대를 불문하고 여러 이유를 댔다. 서화연(여·88)씨는 "자식들이 다 해외에 있어 설에 오지 못해 미리 고향에 다녀왔다"며 "설은 그냥 집에서 쉴 예정"이라고 했다. 이모(45)씨는 "어른 연세가 많으셔서 4~5년 전 차례를 없앴다"며 "올해는 긴 연휴에 국내·해외 여행을 모두 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권모(여·65)씨는 "어머니 돌아가신 후, 설에는 명태전과 수육을 먹을 만큼만 준비해 가족끼리 나눠 먹는다"며 "다가올 추석에는 돈을 모아서 베트남 푸꾸옥에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고 들려줬다.
간소화 흐름을 실감케 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쇠선(여·75)씨는 "요즘은 거의 다 간소화하는 추세"라며 "돈도 돈이지만, 차례 음식 먹을 사람이 없다. 애들도 별로 안 좋아하는 눈치"라고 말했다. 장모(여·76)씨는 "이젠 명절엔 차례 안 지낸다. 자식들에게 (차례를) 물려줬는데, 애들이 하기 싫다는데 어쩌겠나"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상인 박모(여·62)씨는 "옛날에야 못 살아서 명절에 음식 잔뜩 해서 나눠 먹었지, 이제는 다 잘 먹고 사는데 굳이 차례가 필요하냐"는 반응을 보였다.
〈게티이미지뱅크〉 |
"차례음식 만들어도 먹을 사람 없어"
일부 간소화 추세 따르겠다는 응답
가장 줄이고 싶은 음식 '전' 압도적
손 많이 가고 건강에 좋지않다 인식
"줄이지 말고 정성을 다해야" 의견도
◆간소화시 '전'부터…"뺄 게 없어" 응답도
'차례상을 간소화한다면 가장 줄이거나 제외하고 싶은 음식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 정도가 '전'을 꼽았다. 총 200명(이마트 100명·서문시장 100명)이 답한 결과를 보면 △전 48.5%(이마트 49표·서문시장 48표) △기타 21.5%(이마트 19표·서문시장 24표) △생선 14%(이마트 16표·서문시장 12표) △과일 7.5%(이마트 8표·서문시장 7표) △나물 6%(이마트 5표·서문시장 7표) △탕(국) 2.5%(이마트 3표·서문시장 2표) 등 순으로 나타났다.
전을 꼽은 이유로는 '손이 많이 간다'라는 답변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기름져서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 '식으면 먹는 사람이 없다'라는 답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최모(여·55)씨는 "가족 문화로 전통차례상을 차릴 수밖에 없는데, 내 담당이 손 많이 가는 전 굽기다. 전 만큼은 간소화했으면 좋겠다"며 울상을 지었다.
뜻밖에도 '기타'가 두 번째로 많은 선택을 받았다. 조사 첫날에는 '기타' 항목을 따로 두지 않았지만, '줄이거나 뺄 음식이 없다'라는 시민들의 요청에 조사 둘째 날 항목을 신설했다. 간소화 차례상을 선택한 시민 중에서도 "여기선 도저히 뺄 게 없다"는 의견이 적잖았다. 장모(여·76)씨는 "제사 지내려면 제대로 지내야지, 뭘 줄이거나 덜 하면 안된다"며 "쉴 거면 아예 쉬고 할 거면 정성을 다 담아 해야지"라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종교적 의례를 지내 잘 모르겠다'는 사유도 있었다.
생선을 선택한 시민들은 비싼 가격과 생선 특유의 비린내를 이유로 들었다. 과일과 관련해서는 '평소에 많이 먹는다' '비싸서 한두 가지 줄여도 된다' 등의 응답이 나왔다. 백모(65)씨는 "과일은 하나만 올리면 된다. 이제 먹을 가족도 별로 없는데, 굳이 형식 갖출 필요 없다"고 현실적인 이유를 들었다.
나물과 탕(국)을 선택한 시민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비교적 손이 덜 가고, 재료비 부담이 크지 않아서'라는 이유에서였다. '제사에 국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다수였다. 엄마와 함께 마트에 장 보러 온 한 초등학생은 "나물을 싫어한다"며 솔직한 한 표를 행사해 눈길을 끌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서민지
디지털콘텐츠팀 서민지 기자입니다.박지현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