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판매액지수 전년비 2.1% 하락…21년만에 감소폭 최대
설 연휴가 시작되면서 27일 대구 북구 산업용재관 일부 가게는 휴무 안내문을 고지하고 명절 연휴에 돌입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
#1. 경북 경산 진량면에서 판촉물 도매업체를 운영하는 곽경진(54·가명)씨는 창고에 쌓여있는 선물세트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가을 성수기를 놓친 탓에 설 선물세트로 만회하기 위해 지난해보다 두 배 정도 준비해 놨는데, 매출은 작년의 절반 정도에 그쳤기 때문이다. 곽씨는 "경기가 어렵다고 해도 '살 사람은 산다'라는 게 유통업계 정설이었는데, 올해는 그마저도 안 됐다"면서 "연휴 기간에 선물 포장을 풀어 일반제품으로 재포장해야 하는데 돈이 안 되는 일이라 힘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2. 대구 성서공단에서 플라스틱 압연공장을 운영하는 허진석(64·가명) 사장은 이번 설 연휴기간 휴무를 결정했다. 공장 특성상 지속적으로 대형 롤러를 가열해야 하지만 쌓여만 가는 재고 물량을 더 이상 보관할 공간이 없어 지난 25일부터 휴무에 들어간 것. 허 사장은 "생산라인을 멈췄다가 재가동하려면 6시간 이상을 예열해야 하고 전기료 부담도 커지만, 재고가 6천평짜리 창고를 대부분 채운 상태"라면서 "연휴 동안 올해 생산물량에 대한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민족 최대의 명절임에도 소상공인들의 얼굴이 펴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 팬더믹이 끝나면서 살아날 것으로 보였던 경기가 채 데워지기도 전에 식어버렸다. 금리인상과 이에 따른 부동산시장 침체, 그리고 대내외 리스크 등이 한꺼번에 불거진 탓이다. 식어버린 경기는 가장 먼저 소비심리에 직격탄을 던졌다. 지난해부터 심화하고 있는 내수침체 상황은 역대급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소매판매액 지수는 101.3으로 2023년 대비 2.1% 감소했다. 이는 2003년(-3.1%) 이후 최대 감소 폭이다. 또 이달 소상공인 경기전망(BSI)은 75.5로, 한 달 새 3.8포인트나 빠졌다. 실제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해 설 선물세트는 1만~2만원대의 저가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가공육·참치 같은 고가의 선물세트를 찾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장기적인 불황 국면에서 소비를 줄이려는 가계와 기업의 상황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내수침체에 따른 불경기 한파는 세뱃돈이나 상여금 등의 자금 흐름에도 타격을 줬다. 허진석 사장은 "매년 100%의 설 상여금을 줬지만, 올해는 연휴를 늘리고 상여금은 30만원의 떡값으로 대신했다"면서 "서운해하는 직원들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설을 앞두고 발행된 신권 규모도 최근 5년 중 최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설 전 10영업일 기간 신권 발행액은 2조5천684억원이다. 2022년 4조1천857억원으로 증가했던 신권 발행액은 지난해 2조9천673억원으로 감소한 데 이어 올해는 그보다 4천억원 이상 더 줄었다. 특히 대구경북은 지난해보다 41.3%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얼어붙은 경기와 이에 따른 내수침체는 필연적으로 가계 신용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대구 신천동에서 휴대폰가게를 중인 A씨는 최근 알뜰폰업체로부터 80만원 이상의 지원금 환급 통보를 받았다. 약정을 못 지킨 사용자가 잇따라 나오면서 해당 기간에 해당하는 금액을 환불하라는 것. 그는 "2만~3만원 하는 휴대폰 요금을 못 내 연체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기자와 이야기하는 도중 들어온 한 손님은 요금을 못 내 휴대폰이 정지됐다며 선불폰 요금 5천원을 선결제하고 돌아갔다.
빚을 갚기 어려워 상환기간을 연장하거나 이자율을 조정하는 등 채무조정을 받은 사람도 지난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채무조정 확정자 수는 17만4천841명이었다. 2020~2022년 11만~12만명 수준을 유지하던 채무조정 확정자는 2023년 16만명대로 급증한 뒤 지난해 17만명대로 늘어났다. 대구 북구 유통단지 인근에서 생활용품 인쇄업을 하는 전모(49)씨는 "금리가 올라가면서 대출 이자 부담이 늘어난 데다 매출 자체가 줄면서 적자 운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곳이 많다"며 "주위에서도 이미 (사업을) 포기했다는 업체들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고 심각성을 전했다.
홍석천기자 hongsc@yeongnam.com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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