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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타워] 세상의 모든 어머니

2025-02-06

[영남타워] 세상의 모든 어머니
백승운 콘텐츠·사회공헌 에디터

올해 설 연휴는 유난히 길었다. 임시공휴일(27일)을 포함해 하루 연차(31일)를 내면 '최장 9일'이었다.

하지만 신문기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대부분 3일만 쉬었다. 임시공휴일인 27일과 31일 신문을 발행해야 해서 연휴가 남들보다 짧았다. 올해뿐만 아니다. 명절 연휴는 물론 '빨간 날'은 거의 쉬지를 못한다. 신문발행 특성 때문이다.

올해로 28년차 기자지만 여전히 적응이 안된다. 필자뿐만이 아니다. 필자의 노모 역시 아들의 '짧은 연휴'를 낯설어 하신다. 그 낯섦에는 아쉬움과 서운함이 늘 깃든다.

"하루만 더 자고 가면 좋겠구만…"

설날 늦은 저녁, 경주집을 나서는 막내 아들을 바라보며 노모는 또 서운한 표정을 짓는다. 하루라도 더 보고싶은 마음이 역력하다. 그 서운함은 내내 이어지면서 어느 순간 탄식처럼 들려온다.

"또 올게요"

아들의 짧은 위로에도 노모의 서운함은 쉬 가시질 않는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아직도 내성이 생기질 않는 모양이다.

필자의 노모는 20여년 전 경주에 터를 잡았다. 여느 부모처럼 자식 뒷바라지를 하시면서 한평생을 살았다. 여든을 앞둔 지금도 노인 일자리 사업을 신청해 일을 다니신다. '일 좀 그만하시라'는 자식들의 성화에도 아랑곳없다. 행여 일을 못 나가실까 걱정이시다. 그렇게 한푼 두푼 모은 돈은 손주들 용돈으로 내놓으신다.

주말을 맞아 가끔 경주에 간다고 하면 노모는 며칠 전부터 분주하다.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 시장을 몇 차례 다녀오신다. 손주에게 줄 용돈을 찾으려 먼 거리의 은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잠깐만 기다려 보거라"

설날 저녁, 그날도 어머니는 아들이 좋아하는 고구마를 박스 채 내놓으신다. 남의 텃밭을 빌려 농사지은 것들이다. 차례상에 올렸던 과일이며, 손수 만든 반찬거리가 한 가득이다. 이웃집에서 수확한 쌀을 언제 구했는지 두 포대나 된다. 전날 야식으로 먹고 남은 빵까지 가방에 넣으신다. 그리고, 꼬깃꼬깃 접은 지폐 한 뭉치를 손주들 주머니에 쑥 집어 넣는다.

그런 노모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낡은 주름이 깊다. 슬리퍼 사이로 삐져나온 갈라 터진 발꿈치가 한없이 서글프다. 자식 걱정에 새우잠 자며 굽은 허리는 그저 먹먹하다. 이 모든 것이 자식의 고통과 슬픔과 피로와 분노와 상실마저 대신 앓아준 증표들로 보인다. 이쯤에서 뉘우침과 통증이 스멀거린다.

"시간 내서 꼭 다시 올게요"

다짐을 하고 나서야 겨우 발길이 떨어진다. 그제서야 노모도 손을 흔든다.

경주의 노모는 그날 이후 또 텃밭에 걸터앉을 것이다. 봄에 심을 씨앗이라며 이랑을 만지작거릴 것이고, 굽은 허리를 세울 새도 없이 또 비지땀을 흘릴 것이다. 당신곁에 서성거리는 외로움을 혼자 고스란히 감당할 것이다. 그리고, '꼭 다시 오겠다'는 아들을 무심히 기다릴 것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처럼….
백승운 콘텐츠·사회공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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