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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논설위원 |
정부는 지난달 21일 당초 계획보다 원전 1기를 줄이고 태양광 비중을 확대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확정했다. 2024년부터 2038년까지의 발전설비 계획을 담은 제 11차 전기본이 올해 확정된 이유는 '원전 비중을 축소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은 늘려라'는 민주당의 요구를 반영하다 보니 늦어진 것이다.
11차 전기본은 2038년 전력 생산에서 원전 비중을 35.1%, 재생에너지 비중을 29.2%로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탄소가 배출되는 발전 비중을 낮추는 한편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균형을 시도하는 것이다. 작년 우리나라 발전에서 원전 비중은 32.5%인데 반해 수소 등 신에너지까지 포함한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6.9%에 불과하다. 11차 전기본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앞으로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더 많이 건설해야 한다. 11차 전기본에 2036년까지 경북 영양과 봉화에 양수발전소를 건립하겠다는 계획이 포함된 것도 그 연장선 상에 있다. 양수발전은 수력을 이용한 재생에너지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나라가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탈원전을 선언하며 재생에너지에 기댔던 이탈리아가 작년에 원전을 재도입하기로 결정한 것과 중동 산유국조차 엄청난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가동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우리나라에서 원자력과 재생에너지가 조화를 이루려면 에너지 정책을 정치적 관점이 아니라 경제적 시각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매우 이념화돼 있다. 문재인 정부 때 탈(脫)원전 정책을 펴면서, 원전의 장점은 사라지고 위험성만 부각됐다.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산업이 국내에서 외면받는 일이 벌어졌다. 대신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대폭 늘렸다. 이에 일부 보수 언론은 태양광이 설치된 산에서 산사태가 났을 때, 약한 지반과 부실 시공이 원인인데도 불구하고 태양광 때문에 산사태가 난 것처럼 보도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무너진 원전 생태계 복원에 힘을 쏟았다. 동시에 태양광 발전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실태조사로 비리를 적발해, 태양광을 '비리 카르텔'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재생에너지는 진보 정권, 원전은 보수 정권의 정책인 것처럼 각인됐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정책은 보수 정권에서 시작했고, 권장했던 사업이다. 이명박 정부 때 '녹색 성장'이란 이름으로 신재생에너지 육성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겠다는 게 국정 목표였다. 박근혜 정부 때는 우리나라의 많은 산을 활용해야 한다며, 산에 태양광 설치를 적극 권장했다.
게다가 우리는 지금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RE 100(Renewable Electricity 100· 2050년까지 기업이 사용하는 전기를 100% 재생에너지로 사용하겠다는 글로벌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는 국내외 대기업과 거래하려면 재생에너지를 써야만 하는 시대다. 머지않아 재생에너지가 생산되는 지역으로 공장을 옮기는 시대도 올 것이다. 경북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신재생에너지의 메카임을 자부해 왔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잘 조화시킨다면 경북으로 기업들이 알아서 찾아오는 날이 온다고 필자는 믿는다.
김진욱 논설위원

김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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