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렁이는 정국, 개헌론 등장
5년 임기의 합리적 근거는
지방자치, 헌법 근거의 빈약
숱한 개헌 약속은 안개처럼
이번에도 5일장 개헌론 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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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부장판사 지귀연)의 구속 취소 결정은 탄핵정국을 다시 울렁이게 한다. 결정 취지로 보면 절차적 흠결을 지적한 만큼 '탄핵의 본질'을 바꾸지는 않겠지만, 대한민국은 연이어 큰 산을 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12·3 비상계엄의 대혼돈은 개헌론에도 불을 붙였다. 구금됐던 윤 대통령마저 제기했다.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최후 진술에서 "탄핵이 기각돼 다시 돌아가면 남은 임기에 연연하지 않고 '87체제'를 극복하는 개헌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느닷없는 계엄령을 선포해 구치소를 왔다 갔다 하는 처지의 대통령 개헌론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는 회의적이지만, 개헌 이슈는 그만큼 '상품성'을 갖고 있다.
흔히 '87체제'로 불리는 대한민국 제6공화국 헌법은 몇 가지 결함을 갖고 있다. 먼저 '정치공학적·기계적 결함'이다. 대표적인 것이 대통령제 5년 단임이다. 5란 숫자가 어떤 합리적 근거를 담고 있느냐는 의심이다. 전두환 정권의 5공화국 대통령은 간접선거에 7년 단임제였다. 7년이 길다는데 합의가 됐고, 6년을 거론하다 5년 단임제로 낙착됐다. 홀수 5년은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장 4년 임기와 뒤죽박죽돼 정치일정을 무질서로 몰아넣었다. 어떤 해는 선거를 두 번 하고, 또 다른 해는 선거가 없다. 미국의 경우 4년제로 2년마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것과 다르다.
현행 헌법의 또 다른 치명적 결함은 지방자치 분야이다. 헌법 117조 118조는 지방자치 규정을 두고 있지만, 무성의함 그 자체다. 구체적 내용은 모조리 법률에 위임해 버렸다. 심지어 '지방정부'를 일개 시민단체인양 '지방자치단체'로 격하했다. 지방의 대표권을 보장할 헌법적 근거도 없다. 미국의 상원처럼 각 주(州)의 이익을 똑같이 보장할 장치를 말한다. 현재 서울특별시는 무려 48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지만, 그 보다 몇 배 면적의 시·군, 예를 들면 '동해시-태백시-삼척시-정선군'처럼 4개 시·군이 합쳐야 한 명의 국회의원을 뽑을 수 있다. 그 파장은 무섭다. 서울 수도권을 제외한 대한민국 지방은 인구절벽에 말라 비틀어가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알아차린 것도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이면에는 황제적 국회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국회 다수당은 과반수만 넘으면 장관, 검사, 판사를 무한 탄핵해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다. 단 한 줄의 정부 발의 법률도 무력화할 수 있다. 3분의 2가 넘으면 대통령 탄핵도 성사된다. 반대로 국회를 제어할 장치는 대통령의 법률 거부권 정도다. 헌법을 개정해 '국회해산권'을 대통령에게 줘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는 이유다.
전직 국회의장, 총리를 비롯한 정치원로들은 물론 대선 유력 후보들도 개헌론을 들고 나온다. 정국이 어수선할 때, 대통령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했던 장면이다. 이번에는 될까? 지방분권 개헌론만 해도 수십년 동안 숱한 대선 후보들이 약속했지만, 집권하고선 흐지부지 됐다. 4년 중임제(重任) 개헌도 대통령 취임 이후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안개처럼 사라졌다. 나(대통령)의 권력이 중요하지, 미래의 대한민국 헌법체계는 고려 대상이 아닌 것이다. 만약 국회가 자신들의 현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해야 한다면 개헌에 찬성할 것인가? 그래서 하나마나한 개헌론이 5일장처럼 반복돼 왔다. 이번에도 그럴 것 같다는 예감이 있다. 양 극단으로 치닫는 우리 정치수준이나 처지에 비춰보면, 가치 중립적 태도에서 정치철학을 담아 헌법을 설계할 능력이 안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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