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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봄의 문턱 청라언덕에 가보자

2025-03-12

[문화산책] 봄의 문턱 청라언덕에 가보자
이정진 (법무법인 세영 변호사)

청라언덕에 가면 선교사 주택이 있다. 챔니스 주택, 블레어 주택, 스윗즈 주택 3채는 선교사들이 거주했던 집이다. 선교사 저택의 벽면은 푸른 담장이 덩굴로 덮여 있었다고 한다. 푸를 청(靑)에 담쟁이 라(蘿). 그래서 선교사 주택이 있는 언덕을 청라언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00년대 초 기독교 불모지였던 조선에 넘어온 미국인 선교사들은 청라언덕에 붉은 벽돌집을 짓고 선교활동을 했었다.

선교사 주택 아래쪽에는 햇살이 잘 비치는 은혜정원이 있다. 은혜정원에는 청라언덕에 살던 선교사들과 그들의 가족의 유해가 크기가 각기 다른 여러 비석들 아래 안장되어 있다.

해질녘에 바라본 은혜정원은 새로운 풍경으로 다가온다. 저녁 노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선교사들의 비석에 부딪혀 여기저기 굴절된다. 비석에는 선교사 또는 가족의 이름과 활동 내역, 생존연도가 기재되어 있다. 모두 수십년 또는 100년 전 음각으로 새겨진 것이다. 이곳엔 100년 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가끔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조선에 왔을까? 그리고 이곳을 선택했을까 생각한다. 사실 말도 통하지 않는 이곳에 와서 집까지 지으려면 어떻게 했을까. 그들도 처음에 대구에 왔을 때는 초가집에서 빈대와 싸우며 몸을 뉘지 않았을까.

그들의 선교활동이란 것은 말이 선교활동이지, 사실상 봉사활동을 겸하는 것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 노력은 이곳 대구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청라언덕에는 대구 최초의 사과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동산의료원 초대 병원장인 존슨 박사가 미국에 있는 사과나무를 들여왔다. 현재는 이 사과나무의 손자뻘인 3세목이 자라고 있다. 대구라고 하면 능금이 생각나고 능금아가씨를 떠올리게 하는 사과나무의 효시이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불과 1900년 이후로 일어난 일이다.

날이 풀리며 봄이 왔음을 느낀다. 잠시 청라언덕에 올라가 돌비를 보면, 선교사 저택을 보면, 은혜공원을 보면 100년 전을 여행하고 있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아래쪽 3·1 만세 운동길이 있다. 90계단을 내려오며 만세삼창을 하던 옛 선조들의 독립운동의 기운을 느낄 수도 있다.

봄이 온다. 청라언덕에 가보려 한다. 이번에도 100년 전으로 거슬러가는 타임머신을 타보려고 한다.

이정진〈법무법인 세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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